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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지가시니 May 25. 2023

호주 워홀 중 오만과 편견 벗어나기

|호주 워킹홀리데이 시리즈 | 완벽주의 탈출기|

우리는 뭐든지 학습된다. 오만과 편견도, 오만과 편견을 가지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조차도. 나에게 강하게 학습되었던 쪽은 오만과 편견이었을까, 오만과 편견을 가지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었을까?


호주에서 9월의 겨울을 청산하며, 10월에서 11월로 넘어가는 여름이 찾아오고 있었다. 호주 워홀 전까지 북반구를 벗어나보지 못했던 나는, 남반구에서 누릴 수 있는 유일한 특권인 한 여름의 크리스마스 시즌을 해변에서 보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어울려 지냈던 지인도, 일 할 수 있는 가게도 이전에 살던 시티지역보다는 적었지만, 새로운 삶을 꿈꾸며 해변 근처로 이사를 왔다. 이사 온 집 역시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외국인 쉐어하우스였고, 이 당시 나의 룸메는 아일랜드인 제인과 독일인 엘리였다. 아일랜드인 제인은 콜센터에서 일을 했고 독일인 엘리는 카페에서 웨이트리스로 일을 했다.

엘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호주에 왔기에 나이도 10대이고, 외적으로 보이는 면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게다가 잘 씻지 않고, 하루 종일 잠만 자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꽤 조건이 좋은 카페에서 웨이트리스로 일을 했다.


엘리가 인성이 나쁜 것도 아니었고, 화통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으며 오히려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모습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알아차리지 못했던 무의식에서는 ‘나는 나이도 더 많고 더 열심히 공부했고, 잘하는 점들이 더 많은 것 같은데, 쟤가 나보다 더 쉽게 일을 구해서 편하게 일을 하고 있네?’라는 마음이 있었다. 돌이켜 생각하면, 너무 유치하고 드라마에서 질투하는 서브여주를 볼 때와 같이 혀를 끌끌 차고 싶은 마음인데 말이다.

엘리가 웨이트리스로 잡을 구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렇다. 서비스직에서 호주 워홀러로 일을 하기 위한 가장 큰 요인은 ‘영어 실력’이기 때문이다. 너무 당연한 것이지만 말이다. 네가 어떤 학교를 졸업했는지, 최종 학력은 무엇인지, 외모는 어떤지, 인종은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가게 오너는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것에 어려움이 없으며, 성실하게 일을 하는지 외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다. (물론 이 외의  부수적인 요소들이 있을 수는 있다.) 한국도 물론 서빙으로 생각한다면 이와 마찬가지인 경우가 대부분이겠지만, 최저시급이 약$19인 호주였기에 나보다 조건 좋은 잡을 구한 사람은 나보다 여러모로 나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시급은 한국의 약 2배였지만, 호주 워홀에서 잡을 구할 때는 존 롤스가 말한 ‘무지의 베일’처럼 우리가 늘 중요하게 생각하는 타인의 신분, 능력, 사회적 지위, 부, 가치관 등은 중요하지 않았다.

독일인 엘리를 몇 초만에 판단했던 나는, 아이러니하게 보이는 조건들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을 증오하던 사람이었다. 한국에서 자주 가던 별다방에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이 잘 알지도 않는 누구네 예비 사위, 자주 마주치지도 않는 이웃을 큰 목소리로 평가하는 것에 진절머리를 느낀적이 있었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문화에 푹 젖어있었던 것일까?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판단으로 나의 룸메이트를 ‘조건 좋은 카페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기에 아주 적절하지는 않아.’라는 생각을 한 것이었다.


나는 나의 편견과 오만함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나는 여태껏 사회에서 정해준 ‘우월한 조건, 가치’라는 틀에 나를 끼워 넣으며 만족함을 누렸던 것일까? 그렇다면 이 만족함의 실체는 무엇일까? 상대와의 비교였을까? 나는 절대 아니라고 생각했겠지만 결국 타인과의 비교에서 오는 것들이었다.


오만한 사람은 절대 행복해질 수 없다. 단지 비교하고 내가 낫다고 생각하면 외부에서 나를 소위 말하는 재수 없는 사람으로 보기 때문이 아니다. 내가 남보다 우위에 있지 못하면 그것이 주는 괴로움은 나를 심하게 갉아먹게 되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는, 자신이 가진 가치를 큰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어려운 벽을 만났을 때 이겨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준다. 하지만 모순적으로 내가 가진 가치가 큰 것이라고 생각할 때 오만함을 가지기 쉽다.

 

하지만 뭐든지 균형을 맞추는 것이 어렵다고 했던가. 오만함에서 벗어난다고 무조건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의 나는 그들의 개인적, 사회적 배경을 모르는 것처럼 사람들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이 조건과 가치들이 사회에서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여기며 사람을 대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을 넘어서, 내가 이뤄놓은 것들에 중요한 가치를 두지 않게 되었다. 나는 공부할 시기에 착실히 공부하고, 노는 것이 허용되는 시기에는 다양한 취미활동을 하며 꽤 보여줄 것들이 있다. 그러나 오만하면 안 된다는 생각, 겸손해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강하게 지배하기 때문인지, 오히려 나의 성취들을 외면하고 있다. 내가 요새 느꼈던 무기력함은 나의 성취와 노력하고, 노력했던 과정들을 내가 알아주지 않았던 것에서 온 것이 있다.


정답을 찾는 여정에서 한 발씩 앞으로 나아가는 중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타인과의 비교로부터 나의 가치를 세우는 것을 멈춰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노력했던 과정들, 타인에게 미쳤던 좋은 영향력들에 집중하면 오만과 무기력 사이에서 저울질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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