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워킹홀리데이를 가기 전, 영어권 나라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다들 자유로운 복장을 하고 다니며,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는 것. 그리고 나도 그들 중 한 명이 될 수 있다는 로망.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던 내가, 타인의 시선은 전혀 의식하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며 즐길 수 있었을까? 그렇지 않았다. 한국에서보다 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그러한 자신을 인지하지 못하고 자신감 없이 지내는 경우가 있다.
옷에 관해서 나는 화려한 복장을 좋아한다. 큰 퍼프에 화려한 패턴들과 색감을 사용한 옷. 그리고 큰 귀걸이, 목걸이와 같은 악세사리들. 하지만 당시 대학생 신분이었던 내가, 이런 복장을 입고 한국 대학교 캠퍼스 입구를 들어간다면 모두들 쳐다볼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MBTI E라고 말은 하고 다녔지만, 패션 디자인과도 아닌 초등교육과에서 이러한 패션을 쳐다보는 시선을 즐기지 못할 나인 것을 알았다. 그렇기에 그저 소심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손잡이 모양의 큰 귀걸이뿐이었다.
호주에는 겨울에 도착해서 여름으로 넘어가며, 사람들의 의상도 가벼워지고 있었다. 예상했던 대로 사람들이 자유로운 의상을 하고 다니는 것은 사실이었다. 여자들은 나이와 관계없이 상하의 노출이 많은 옷을 다들 입고 다니고, 심지어 남자들은 웃통을 벗고 다니는 경우도 몇 번 보았다. 그리고 그 누구도 노출 부위에 불편한 눈길을 주지 않았다. 이 모습이 나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시선이 불편함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라고 느껴졌다.
하지만 나의 예상과는 달리, 대낮에 길거리에서 화려한 옷을 입는 사람은 물론 화장을 한 사람조차도 매우 드물었다. 마치 대학 캠퍼스에서 화려한 옷을 입으면 튀는 사람이 되는 것과 같이, 멜버른의 평일 낮도 비슷한 풍경이 되어버렸다. 만약 내가 여행자였다면 어깨에는 퍼프가 있고 색감은 화려한 옷들을 입고 다니며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었을 것 같다.
하지만 나름의 멜버른 거주자이자 호주에 살고 있는 친구들을 만나는 상황 속에서는 화려한 옷을 입을 수도 살 수도 없었다. 그들 중 일부가 되는 느낌보다는 나 혼자 튀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의 이런 마음을 반영한 듯 어깨, 허리, 등 부분이 트인 옷을 파는 곳은 많아도 화려하게 덧대진 옷은 파는 곳도 드물었다.
한 날은 친구집에서 홈파티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오프숄더 검정 티셔츠에 핫핑크 롱치마를 입고 갔다. 이 날 나는 가장 신경 써서 옷을 입고 온 사람이 되어버렸다. 마치 파티에 처음 가본 것을 티 내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신나게 놀면서도 옷을 나 혼자 화려하게 입었다는 사실이 마음 한편을 불편하게 했다. 그래서 늘 옷을 고를 때, 살 때 고민이 많았다. 오죽했으면 내가 입고 싶은 대로 입자고 일기장에 적을 정도였다.
아쉽게도 호주 워홀 기간 동안은 ‘나에게 어울리는 스타일대로 입기’에 실패했다. 조금만 꾸미고 언어 교환 모임에 가도 ‘You look like a princess’라고 하는 말들이 너무 부담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본 티셔츠를 입고 가면 어려 보일 내 모습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나 자신이 그저 답답하기만 했다.
내적으로는 갈등하며 가장 나답게 옷을 입고 싶다고 마음속에서 말을 하면서도, 한편으로 나는 민소매에 반바지를 입는 그들의 스타일에 적응을 하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다. 굳이 튀는 사람이 되지 않는 것이 내 마음이 가장 편할 것 같은 길이었다. 그래서 이런 나의 마음을 반영하여 흰 민소매에 초록 바지를 입고 브라이튼 비치에 갔다.
같이 바다를 보러 갔던 30대 중반정도의 프랑스 친구 이름은 멜리사였다. 브라이튼 비치의 포토 스팟을 뒤로하고 사진을 찍을 때, 난 나의 옷이 오늘 마음에 들지 않다고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멜리사는 그것이 못마땅했던 모양이다. 그러고는 아시아인들은 왜 그러냐고 다짜고짜 화를 냈다. 그리고 바닷가에서 발을 담그며 연출 사진을 내고 있던 다른 아시아 사람을 가리키고 나를 보며, 완벽한 사진, 완벽한 옷을 원하는 아시아 사람이 이해가 안 된다고 말을 했다. 참고로 멜리사는 H&M에서 산 5불(약 4000원) 짜리 하늘색 티셔츠를 주 6일 입고 다니는 친구이다. 또한 평소 나에게 워낙 배려를 많이 해주며 무거운 과일 상자를 40도가 넘어가는 날에 마켓에서부터 집까지 들고 와 주었던 멜리사였기에 인종차별 발언보다는 정말 이해가 안 되어서 한 말로 느껴졌다.
나는 이 말을 꽤나 오랜 기간 곱씹어보며 생각했다. 정말 나는 왜 화려한 옷을 좋아하지? 평범한 옷을 입으면 내가 평범하게 느껴져서 그런가? 화려해 보이는 것을 싫어하면서, 화려하지 않은 나의 모습을 견디지 못하는 것일까? 한국 사람들의 옷 문화일까? 나는 언제부터 이런 것일까?
하지만 내가 찾은 결론은, 나는 화려한 옷이 잘 어울린다는 것이었다. 20대이지만 옷을 편하게 입은 날이면 중학생으로 오해하며 대우하는 경우를 많이 접하며 나름의 고충이 있었다. 그래서 누군가 동안이라거나, 어려 보인다고 하면 기분 좋았던 경우보다는 성숙해 보이고자 했던 마음이 더 컸다. 그러다 보니 10대와는 다른 옷을 입고자 했다. 좁은 어깨를 가진 나의 체형을 보완해 주는 퍼프 옷 등을 접하며 나는 나와 정말 잘 어울리는 옷을 찾은 것이다.
타인의 시선이 나의 스타일을 결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내가 깨달은 것은, 나는 ‘자기 확신’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이 옷이 정말 좋다.’라는 감정이나 ‘이 옷이 나에게 어울린다.’라는 확신이 있었다면 타인의 시선과는 관계없이 내가 원하는 스타일대로 옷을 입고 다녔을 것이다. 하지만 나조차도 ‘좀 과한가?’라는 생각이 들기에 타인의 시선이 궁금해지며 신경을 쓰게 되었던 것이다.
타인의 시선에서 내가 어떻게 보일지 생각하기 이전에, 내가 나의 스타일이 어떤지 먼저 생각하고 판단을 내리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스스로 판단을 내리며 나의 감정에 집중해본 경험이 적은 경우에는 판단의 기준을 나의 외부에 둔다. 옷 스타일은 정말 단편적인 것이고, 가치관, 취향 등으로 확대해도 적용되는 이야기이다.
생각은 연습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지금 당장도 직장에 출근하기 전, 눈에 띄는 옷을 입고자하는 날이면 타인의 시선이 먼저 떠오를 때가 있다. 하지만 고집이 아닌, 자기 확신을 가지는 연습을 하는 과정에서 건강한 자신감을 가지는 중이다. 여기서부터 나오는 자신감은 나를 더 당당하게 만들고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는 것이 아닌, 타인의 시선을 즐기는 사람으로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