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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지가시니 Jul 15. 2023

울면 지는 것이 아니라고?

|호주 워킹홀리데이 시리즈 | 완벽주의 탈출기|

“울면 안 돼 울면 안 돼 산타 할아버지는 우는 아이에겐 선물을 안 주신대”

“울면 지는 거야”



우리는 이 말들을 어렸을 때부터 학습하다시피 들어왔다.



보통 우리는 언제 눈물을 흘릴까? 눈물을 흘리게 되는 원인은 다양하다. 기뻐서, 슬퍼서, 억울해서, 답답해서, 자존심이 상해서, 서운해서, 감동적이어서, 아파서, 너무 놀라서, 행복해서, 미안해서, 불쌍해서, 상처받아서...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눈물을 흘리면, 나의 눈물이 긍정적으로 수용되는 경험을 하기 어렵다.  “우냐?”라는 말을 쉽게 듣는다거나, 나의 눈물은 주변에 당혹감을 주곤 한다.



호주 워홀기간 동안 아일랜드 룸메이트였던 제인과 함께 지내며 즐거운 마음과 힘든 마음이 공존하였다.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제인과 지내면서 나의 영어실력 상승에 도움도 받았고, 불합리한 대응을 하는 콜센터 직원에게 제인의 영어 실력으로 해결을 본 적이 있다. 또한 제인은 나보다 기상시간이 1시간은 일렀기 때문에 내가 자고 있는 시간에는 출근 준비를 방에서 하지 않으며, 내가 곤히 자고 있는 방에서는 발꿈치를 들고 다니는 배려도 보여줬다. 뿐만 아니라 아침에 독특한 브런치를 차려주거나, 쉬는 날 빈티지 스토어에 데려가주어 나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물해 주었다.


 하지만 제인은 감정기복이 심해서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나에게 감정적으로 구는 날들이 있었다. 한 날은 한 때 우리의 하우스메이트였던 친구의 집에 함께 놀러 가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옷을 고르는 시간만 20분을 넘게 보내며, 약속 시간을 넘기고 있었다. 보다 못한 나는 “제인, 우리 약속 시간 늦은 것 같아.”라고 넌지시 말했다. 그 순간 제인은 “너 왜 나한테 스트레스를 주냐!!”라고 소리를 질렀다. 아마 yell보다는 shout의 느낌이라고 말하는 것이 정확할 것 같다. 너무 놀랐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친구집에는 다녀왔지만 내가 그 일을 따로 언급하거나, 제인에게 사과를 받은 일은 없었다. 나는 단지 제인과 함께 살고 있는 집을 떠날 생각을 했다. ‘제인이랑은 같이 못살겠어. 너무 힘들어.’ 생각을 하였지만 표면적으로는 잘 지냈다. 그러고 이렇게 당혹스럽게 소리치는 일이 2번 정도 더 있었다. 나는 상처만 받을 뿐, 내가 이런 일들로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는 전하지 않았다.


 소리치는 일 외에도 한 날 제인은 나에게 “내가 설거지를 할 테니 넌 쓰레기를 버리고 와.”라며 명령을 하였다. 평소에 쓰레기를 버리는 것도 나였고, 아침에 설거지를 하지 않고 출근한 제인의 그릇들을 설거지하는 것도 나였다. 여태껏 쌓였던 일들로 몹시 기분이 상한 나는 말없이 집을 나가서 벨기에 친구인 가브리엘을 만났다. 제인을 모르는 그 친구에게 룸메이트 얘기를 털어놓았다. 그리고는 이사를 갈 결심을 했다고 전했다. 가브리엘은 “너가 가고 싶으면 이사 가는 거지. 그런데 너의 솔직한 감정에 대해서 얘기는 해봤어?”라고 물었다. 나는 묵혀뒀던 심정을 전했다. “말을 해도 제인은 바뀔 것 같지도 않고, 감정이 격양되면 걔가 강한 아이리쉬 사투리를 써서 내가 못 알아듣는 경우가 생긴다거나,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영어로 떠올리지 못하는 일이 생겨서 대화가 잘 이루어지지도 않을 것 같아. 솔직히 자신이 없어. 제일 두려운 것은 말을 하다가 속상했던 감정이 터져서 눈물이 날 것 같다는 것이야.” 하지만 가브리엘은 “울면 어때?”라는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 “눈물이 나면 흘려보내. 그것은 너의 감정이야. 눈물을 숨길 필요가 없어. 하고 싶은 말을 빠르게 하지 못해도, 너가 룸메이트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한다고 해도 괜찮아. 하지만 너가 너의 마음을 말하지 않고 이사 가는 것은 안돼. 결과가 어떻게 되었든 간에, 일단 너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너가 속상했던 일을 꼭 말해봐. 또 혹시 몰라? 일이 잘 풀려서 관계가 회복될지.”



그리고 나는 돌팔매질하는 마음을 부여잡고 제인에게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해야 하나 고민하며 집으로 올라왔다. 집에는 제인이 외출을 했는지 없었는데, 오히려 다행이라고 한숨을 돌렸다. 그리고 제인에게 소리친 일들로 인해 마음이 불편할 때가 있었다는 내용을 담아서 부드러운 말투로 DM을 했다. 제인은 내가 전한 메세지에 어이없다는 뉘앙스를 풍기면서 오히려 자신이 섭섭했던 내용을 얘기했다. 매일 접시를 닦아서 넣어두는 것은 자신이며, 나보다 자신이 청소를 더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접시를 닦아달라고도, 넣어달라고도 한 적이 없었고, 신발을 신고 침실까지 들어가는 집에서 늘 더러운 바닥을 보면, 제인이 열심히 청소한 것이 티가 날 리가 없었다. 문화 차이로 인해 나는 전혀 알지 못했던 섭섭함을 제인은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비로소 제인의 감정에 대해서 알게 되어서 놀라움을 느꼈다. 뿐만 아니라 내가 전하려고 했던 논점이었던 소리치는 것에 관해서는, 제인이 소리치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DM을 마무리하고 제인은 저녁 늦게 집에 들어왔고 우리는 만나자마자 포옹을 했다.



내가 여태껏 가지고 있었던 강박은 ‘내 감정은 수용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 감정이 수용될 것 같지 않은 상황은 단순히 회피하려 했었다. 그렇기에 벨기에 친구 가브리엘이 해주었던 ‘눈물이 나면 흘려보내. 그것은 그냥 너의 감정일 뿐, 지는 것이 아니야.’라는 말이 내가 감정과 삶을 누리는 태도가 되었다.



나의 에너지 소모가 있더라도, 상황의 결과가 주는 감정에만 충실한 것이 아니라, 과정에서 느끼는 감정에 귀 기울이는 용기.  

나의 감정이 수용되지 않더라도, 진심과 함께 속상했던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용기.

눈물을 무기나 약점으로 여기지 않는 용기.


나의 용기가 모여서 풍성한 관계를 만들고, 더 단단하고 행복한 나를 만들 테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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