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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하나 Oct 11. 2023

1. 그 소녀는


아버지는 요즘 말로 '꼰대'였다. 딱 그 단어로 정의하기 쉬운 사람.


강원도 산골짜기 마을에서 소 여물을 먹이던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소년은 윗 형제들이 하나 둘 도시로 나가는 것을 보며 꿈을 키웠다. 나도 자라서 성인이 되면 도시로 가서 돈을 벌겠다고.


어머니는 공주였다. 할머니가 아끼는 막내 딸, 하고 싶은 것 맘껏 하는 막내 딸.


부산 엄궁동 일대 땅을 음식 장사로 벌었다는 여사의 막내 딸인 소녀는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공부를 하지 않아도 잔소리하는 사람 하나 없었고, 꼭 하나 꼽자면 롤러장이나 가고 싶었다.


소년은 청년이 되어 부산으로 무작정 떠났고, 먼저 그 동네에 자리잡은 형제들이 하는 중국집에서 배달기사로 일을 시작했다. 하루하루가 바빴으나 적어도 소 여물 먹일 때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소는 먹여봤자 돈을 받을 수 없었고, 짜장면은 배달하면 돈을 받았으니까.


소녀는 나이를 먹었어도 자신이 어리게 느껴졌다. 성인이 됐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었고, 여전히 사랑스러운 막내였다. 적당히 예쁘게 꾸미고, 친구 집에 놀러가서 짜장면이나 시켜먹고, 질리도록 수다를 떨다가 동네를 한 바퀴 돌고, 그렇게 집에 돌아왔다.


청년은 그 날도 일이 바빴다. '짜장면 배달이요!'. 얼른 일을 끝마치고 집에 가서 지금껏 모은 돈이 얼마인지나 세어볼 요량이었다. 그리고 문이 열린 순간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소녀는 짜증이 났다. 배달왔으면 짜장면이나 놓고 갈 것이지, 어물쩍대며 시간을 끄는 배달기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시뻘개진 얼굴로 철가방을 꽉 쥔 배달기사에게 '짜장면 언제 줄 건데요?'하고 툭 쏘아붙이자 배달기사는 황급히 철가방을 내려 놓았다.


청년은 첫눈에 반했다는 말을 체감하는 날이 오게 될 줄 꿈에도 몰랐다. 도시에는 예쁜 여자들이 수두룩하다더니, 그 말이 틀림이 없었다. 그 날 이후로 청년은 그 집 배달을 꼭 자기가 가겠다고 졸랐고, 이내 그 소녀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


"저번에 그 배달기사 있다이가, 또 오는 거 아니가?"

"아우, 짜증나죽겠다. 올 때마다 꼭 말 붙이고."

"왜? 그 정도면 잘 생겼다이가."

소녀는 키득거리는 친구를 흘겨보았다. 그런 비리비리하고 근육도 없어보이는 남자는 딱 질색이었다. 근처에 맛있는 중국집은 그 곳뿐이라 친구집에 놀러오면 항상 시키는데, 그 때마다 그 남자가 와서 한 마디라도 나누려고 애쓰는 것이 귀찮기만 했다.

"니는 눈도 낮다. 그래 비실한 걸 어따 써 먹노?"

"그래도 일도 열심히 다니고 성실하다이가."

그 말은 또 맞는 말이라 소녀는 입을 꾹 닫았다. 지금이야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모두 남부럽지 않게 한다지만 이전에는 꿈도 못 꾸는 일이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소녀의 아버지는 다들 입을 모아 말할 정도로 한량이었다. 종일 술을 마시다 곯아 떨어지고, 또 일어나면 술을 찾는 사람이었다. 지금 소녀가 누리는 모든 것은 젊은 시절의 어머니가 새벽같이 일어나 국을 끓이고, 어린 자식들을 등에 업은 채로 시장에 나가며 이뤄놓은 것이었다.


청년은 지극정성이었다. 제 형제들에게 좋아하는 여자가 누군지 말했을 때 다들 '너같은 녀석은 감히 꿈도 못 꿀 사람이니 포기해라'는 말을 들었음에도 마음은 변치 않았다.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여자의 아버지가 어디서 술을 마시는지, 또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알아냈다. 인사불성이 되어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여자의 아버지를 들쳐 업고 댁에 모셔다 드리며 얼굴도장을 찍고, 열심히 모은 월급으로 이것저것 사다 드리며 호감을 샀다. 백 번 찍어 넘어가지 않는 나무는 백 한 번을 찍으면 될 일이었다.


소녀는 끝없는 청년의 공세에 결국 백기를 들었다. 얼굴은 좀 못생겼지만, 제 아버지처럼 무기력하고 성실하지 못 한 사람은 아닌 것 같으니 그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장장 6년의 연애를 하며 결혼을 차일피일 미루었으나, 청년은 싫은 기색없이 곧은 마음을 보여주었다. 무관심이 관심으로, 관심이 호감으로, 호감이 사랑으로 바뀐 날, 둘은 결혼을 했다.


*


시간이 흘렀고, 많은 변화가 있었다. 여자의 집안은 두 번 다시 없을 정도로 불행을 맞이했다. 막내 아들이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여자의 어머니는 딸만 줄줄이 있던 집안에 딱 하나 있는 아들이 야속했고, 안타까웠다. 몇 달치 월급을 '돈이 없다'는 말로 미루기만 하던 사장에게 앙심을 품은 아들이 친구의 꼬드김에 넘어가 야밤에 몰래 사무실로 숨어든 것이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법한 일이었지만, 법은 설득할 수 없었다. 여자의 어머니는 아들을 감옥에 보내지 않기 위해 변호사를 선임했다. 수중에 있던 돈을 다 써가며 변호해도 아들의 죄는 사라지지 않았고, 아들을 위한 마음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놓게 했다. 그렇게 하나 둘, 엄궁동 땅들의 주인은 바뀌어갔다. 세월이 가득한 손에 쥐어진 것들이 사라진 후에도 아들은 여전히 쇠고랑을 찬 채 죄책감 가득한 눈으로 어미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여자는 다시 가난해졌다.


남자는 그 모든 것을 지켜보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여자를 사랑하느냐 묻는다면 글쎄, 모르겠다. 부잣집 딸을 사랑한 것인지, 오롯이 그 소녀를 사랑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지금 자신은 아내와 딸을 가진 가장이었고, 남자가 알기로 가장은 일을 해서 가족을 먹여 살려야 했다. 그 무거운 의무를 짊어진 남자는 묵묵히 일하기로 했다. 어차피 가진 것 하나 없이 집을 떠나왔으니, 별반 달라진 것도 없었다. 가진 기술이 없었던 남자는 공장에 취직했고, 그나마 타고난 손재주로 요령있게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1초의 방심으로 손가락 하나쯤 잃는 것은 대수롭지 않은 일터에서 남자는 끈질기게 버텼다. 술을 배웠고, 욕을 배웠고, 인내를 배웠고, 포기를 배웠다. 남자는 전과 미묘하게 달라진 자신을 눈치챘지만, 가장은 그런 것이다.


여자는 어리숙했다. 아이를 가질 생각도 없었다. 복잡한 생각할 것도 없이 하굣길에 오빠가 따다주는 달달한 뽕나무 열매나 먹던 그 때가 그리웠다. 친구와 유행하는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어깨를 들썩이며 어설프게 춤을 따라 추다가 깔깔 웃던 그 때가 그리웠다. 입가에 짜장 국물을 묻혀가며 짜장면을 먹다 새로 생긴 옷 가게에 예쁜 옷이 있더라 하는 시시콜콜한 얘기를 하던 그 때가 그리웠다. 제 배가 부른 것이 낯설었고, 잘만 먹던 음식을 보기만 해도 구역질하는 것이 낯설었고, 홀쭉해진 배에 남은 흉터가 낯설었고, 제 남편을 쏙 빼닮은 아기가 낯설었다. 하나하나 주변에 전화해서 물어보며 아기를 돌보는 것에 지쳐갔다. 이렇게 눕혀야 하고, 이렇게 먹여야 하고, 이렇게 씻겨야 하고. 여자가 모르는 것 투성이였다. 첫 애가 딸인 것에도 눈치를 봐야 했다. 성별만으로 죄스러워야 했다. 여자는 지쳤다.


남자는 그 모든 것을 몰랐다. 자신이 가장의 의무를 다 하듯, 여자도 어머니로써의 의무를 다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여자가 아이를 낳을 때, 급한 일이 있어 자리에 있어주지 못 했던 것은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니 이해해주리라 생각했다. 은근히 첫 아이는 아들이었으면 하고 바랐지만, 딸을 낳은 것에 큰 실망도 없었다. 이윽고 남자는 둘째를 보게 되었다. 집안에서 그토록 바라던 아들이었고, 연년생으로 태어나 들어가는 돈이 배로 늘게 되었다. 돈, 돈, 돈. 의무가 한 층 무거워진 남자의 주요 관심사는 '어떻게 해야 승진을 할 수 있을지'였고, 나아가 자신이 공장을 차리는 것에도 욕심이 있었다. 윗사람의 비위를 맞추려 회식에도 빠짐없이 나가 듣기 좋은 말을 했고, 듣기 싫은 말을 들었다. 그렇게 쌓인 피곤함은 어느 날 여자에게 쏟아내게 됐다. 


여자는 쉼없이 울었다. 남자의 손찌검이 생각보다 아팠고, 생각보다 서러웠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은 우는 여자를 따라 같이 높은 소리로 울어댔다. 술에 취한 남자는 제 짜증에 언성을 높이다 물건을 던졌고, 연이어 여자를 밀치고 때렸다. 여자는 왜 자신이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고, 왜 이런 상황에 놓여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남자가 술기운으로 잠이 든 사이, 여자는 아이들을 데리고 근처 싸구려 모텔로 도망쳤다. 잠이 덜 깬 아이들은 장소가 낯설어 울었고, 여자는 상황이 낯설어 울었다. 부모에게도 맞은 적이 없었는데, 자길 사랑한다 말하던 남자에게 맞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여자는 아직 어린 제 딸과 아들을 보며 눈물을 닦아냈다. 일이 많이 힘들었겠지. 평소에는 좋은 사람이니까. 괜찮을거야. 여자는 스스로를 위로했다.


남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리 자신이 술에 취해 좀 손을 댔기로서니 아이들을 데리고 집을 쏙 나가버린 아내가 미웠다. 미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가족을 위해 밤낮 가리지 않고 등골이 휘어지도록 일하는 남자에게 아침밥도 차려주지 않고 밖에 나가 있는 아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체 집에서 뭘 한단 말인가. 아이를 돌본다는 명목으로 집안일 좀 하고 내도록 쉬고 있을텐데. 하다 못해 나가기 전에 데워먹을 아침이라도 미리 차려놓을 수도 있었지 않은가. 남자의 이런 불만은 뺨 한 쪽이 퉁퉁 부은 아내 앞에서 차마 나오지 않았고, 깊은 뱃 속에 차곡차곡 쌓였다. 축 쳐져 있는 아내를 보니 앞으로는 손을 대지 않겠노라 맹세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쉬웠다. 남자는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여자는 모든 게 어려웠다. 아이들은 툭하면 울어댔고, 남자는 여전히 손찌검을 했다. 살아생전 용돈기입장도 써 본 적 없는 자신이 살림을 하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아이가 없을 때는 그나마 나았으나, 아이가 둘이 되니 남자에게 받는 생활비의 반 이상이 아이들에게 쓰였다. 집은 점점 아이들 물건으로 채워졌다. 여자의 물건은 없다. 아이들이 쓰는 펜은 문방구에서 산 알록달록한 펜이었지만, 자신이 쓰는 펜은 길에서 전단지와 같이 받은 펜이었다. 아이들이 쓰는 공책은 예쁜 그림이 그려진 공책이었지만, 자신이 쓰는 공책은 학원 홍보 문구가 적힌 촌스러운 공책이었다. 여자는 딸이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쯤 모든 것을 포기했다. 자신은 더 이상 사랑스러운 막내 딸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엄마였다. 누군가의 아내였다. 자신이 보고 들은 '엄마'는 모든 상황에서 굳건했고, 모든 상황에서 아이들을 최우선으로 하는 사람이었기에 여자는 따라하기로 했다. 더 이상 부산 엄궁동의 공주는 없었다.


소녀는 부모님이 무서웠다. 툭하면 술냄새를 풍기고 들어오는 아버지와 야밤에 대뜸 소녀와 남동생을 데리고 도망치듯 모텔로 데려가는 어머니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집은 마치 놀이터에 있는 시소처럼 좋았다가, 싫었다가 매일이 달랐다. 어떤 날은 낮에는 좋았다가, 밤에는 싫었다. 거실에서 잘 놀다가도 부모님의 언성이 높아지면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서 남동생의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이전에 멋모르고 둘을 말리다 아버지에게 맞고 나서 생긴 눈치였다. 남동생은 아직 어머니의 체벌 외에는 아버지에게 맞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 소녀를 불편해했다. 나가서 말려야 하는데 왜 그러질 않느냐고, 그런 남동생의 질문에 소녀는 조용히 있으라고 밖에 답할 수 없었다. 소녀가 아는 '아버지'라는 사람들은 모두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인데, 자신의 아버지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남자는 정 붙일 곳이 없었다. 직장 상사들이랑 터 놓고 얘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남은 건 가족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내는 어느 시점부터 자신과 아이들 얘기 말고는 대화를 피했고, 아이들도 왠지 눈치를 보거나 피하는 것 같았다. 딸이 자라면서 생각보다 자신을 많이 닮은 듯 해 어쩐지 정이 갔으나, 정작 딸은 적당히 묻는 말에 대답만 할 뿐 그 이상으로 애교를 부린다던지 관심을 주지 않았다. 아들은 애교가 많았지만 외모도 성격도 자신과 닮은 점이 무엇 하나 없어서인지 눈길이 가지 않았다. 점점 남자는 자신이 돈 벌어오는 기계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들어 화가 늘었다. 이혼 서류가 오고 가고, 폭력의 강도가 더해지고, 욕이 늘고, 집안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그렇게 남자는 서서히 고립되었다.


여자는 지긋지긋했다. 이쯤 되니 맞는 것은 예삿일도 아니었다. 부부싸움으로 재판에 선 이들의 이야기를 재연하는 TV 프로그램을 보니 자신처럼 사는 사람들은 널리고 널렸음을 깨달았다. 단지 그들과 자신의 차이점은 이혼을 했냐, 하지 않았느냐 뿐. 물론 그런 일 없이 행복하게, 화목하게 사는 가정도 그만큼 많을 것이란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그게 쉬운 일은 아니었고 그런 가정을 상상한다고 해서 자신에게 득될 일은 없었다. 여자는 빠르게 그 '행복한 가정'에 대한 생각을 지워버렸고, 그렇게 폭력은 당연한 일이 되어갔다. 아이들이 성장한 만큼, 여자는 부담을 내려놓았다. 제 앞가림을 할 나이가 되어가니 더 이상 모텔에 데리고 가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물론 그렇게 두고 가면 자신 대신 아이들이 맞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나, 여자는 거기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자신은 충분히 '엄마'로써의 의무를 다 하고 있다.


소녀는 부모님이 한심했다. 아버지는 틈만 나면 '어릴 때의 아내가 얼마나 예쁘고 애교가 많았는지'에 대해 떠들어댔고, '자신이 얼마나 가장의 의무를 힘들게 다 하고 있는지'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초등학생이라는 어린 나이에도 그런 아버지는 전혀 존경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는 때마다 부부 재판에 대한 TV 프로그램을 챙겨보는 열혈 시청자였고, 그들의 이야기에 화를 내고 공감하며 욕을 해도 정작 자신의 상황은 외면했다. 초등학생 고학년은 '이혼'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고, 그런 선택을 하지 않는 부모님을 이해할 수 없었다. 동시에 이런 환경에서 자란 자신이 따돌림을 당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생각했다. 매번 눈치보며 자란 어린이가 학교라는 작은 사회 안에서 숫기없이 행동하고 의기소침한 성격을 가진다면 왕따가 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나 다름없었다.


소녀는 틀에 박힌 일상이 흘러가는 것을 견딜 수 없었다. 일어나고, 학교에 가고, 소외된 하루를 보내고, 학원에 가고, 또 소외되고, 집에 오고, 또 소외되고. 긴 앞머리는 눈을 가렸으며 굽은 등은 펴지는 법을 몰랐다. 하늘이 아닌 땅을 보고 걷고, 앞머리로 가려진 작은 시야 안의 세상이 곧 소녀의 세상이었다. 같이 소외된 친구 한 둘은 있었으나, 말만 몇 마디 나눌 뿐 깊은 교류는 없었다. 소녀는 그림을 그렸고, 그 그림 속에서 소녀는 행복했다. 그 행복이 채워진 연습장이 다섯 권 정도를 넘어가자, 소녀는 죽음을 꿈꾸기 시작했다. 생각 외로 커터칼을 구하는 건 쉬웠다. 그리고 생각 외로 죽는 것은 어려웠다. 고작 해야 보드라운 손목에 빨간 줄 몇 개가 그이는 정도로 끝났고, 소녀는 그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소녀의 삶은 조금씩 변화했다. 학교에서 누군가 밀어 계단을 구른 후로 악몽을 꾼다는 것 외에는 견딜 만 했다. 무미건조한 일상 속에서 소녀는 그림을 그리며 만화를 동경하게 되었다. 밝고 사랑스러운 주인공, 그런 주인공을 아껴주는 친구들, 한없이 자상하고 주인공을 지지해주는 가족들, 여러 고난과 역경에 부딪히지만 늘 이겨내고 행복해지는 결말까지. 소녀는 그런 완벽한 삶을 꿈꾸며 앞머리를 잘랐다. 마침 전학도 가게 되었으니, 그 학교에서는 다르게 살아야겠다. 그렇게 소녀는 밝은 척 연기하기 시작했다. 친구가 늘었고, 불안도 늘었다. 지금은 무슨 말을 해야 하지? 내 말에 기분이 나쁜 건 아닐까? 내가 뭘 잘못한 거지? 어떤 점을 고쳐야 하지? 그런 물음표가 늘어날 수록 소녀의 손목에도 붉은 줄이 늘어났다.


소녀는 중학생이 되었다. 버스로 10분 내외의 거리인 여중으로 진학했고, 시금치 색의 못생긴 교복을 입게 되었다. 소녀는 지금껏 한 것처럼 남들의 눈치를 보면서 잘 하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공부에도 제법 재미를 붙였고, 그 중에서도 국어가 제일 재밌었다. 1학년을 적당히 마무리하고 2학년이 되었을 때, 소녀는 절망했다. 여중에서 꽤나 귀한 대접을 받는, 젊고 잘생긴 남교사가 등굣길에 자신의 손목을 잡았기 때문이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소녀는 교사가 자신의 머리를 때린 것을 이해할 수 없었고, 그 수업만 불참했는데 마침 소녀의 담임 교사가 그 젊은 남교사였던 것이다. 초임이라 열정이 남달랐던 남교사는 자신의 설득으로 소녀가 다시 수업을 잘 듣는 바람직한 학생이 되리라 생각했으나 결과는 암담했다. 소녀의 핸드폰에는 발신자 표시제한의 비난 가득한 문자가 쏟아졌고, 소녀는 화장실에서 토하다 실신했다.


소녀는 학교 밖 청소년이 되었다. 존재조차 몰랐던 청소년증이 학생증을 대신했고, 검정고시 학원에서 열의 가득한 중년들과 같이 수업을 들었다. 중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던 소녀에게 검정고시 수업은 너무 쉬웠다. 수업 시간에 미리 진도를 체크하고, 어느 정도 읽었다 싶으면 말없이 교실을 나갔다. 그 교실에 있는 누구와도 친해지고 싶지 않았다. 소녀는 아직도 자퇴하던 날 짐을 가지러 간 교실에서 친구라고 믿었던 아이들이 제 그림 공책을 찢으며 웃던 소리를 잊지 못 했다. 날카로워졌고, 예민해졌다. 그럼에도 사람을 믿고 싶고 사랑받고 싶었다. 만화 속 주인공처럼은 아니어도, 행복해지고 싶었다. 누군가 자신의 손목에 있는 상처를 알아채고 위로해주었으면 했다. 그래서, 다시 학교를 갔다.


소녀는 다시 교복을 입었다. 이전에 다니던 중학교와는 조금 먼 곳으로 정했다. 여기면 아는 사람을 마주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시작은 제법 괜찮았다. 웃고 떠들며 농담을 했고, 용돈을 아끼지 않고 쓰며 호감을 샀다. 하지만 1년이 채 가기도 전에, 소녀는 다시 따돌림을 당했다. 발이 넓은 아이에게 미움을 샀다는 이유였다. 누군지도 모를 옆 반 아이들까지 몰려 와서 소녀를 둘러싸고 한 마디씩 욕을 뱉었다. 한 사람의 한 마디는 수 십 수 백 마디가 되어 여러 목소리로 소녀의 마음을 할퀴었다. 소녀는 울음을 삼키며 다시 17살의 학교 밖 청소년이 되었다.


소녀는 결국 터져버렸다. 다시 찾아간 검정고시 학원에서 질 나쁜 언니와 어울렸고, 담배를 배우고, 술을 배웠다. 외박 한 번 한 적 없던 소녀는 며칠씩 집에 들어가지 않았고, 가족을 미워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1년 가까이 되는대로 쏟아내다 보니 손목의 상처는 아물었다. 상처는 아물었으나, 마음의 흉은 그대로였다. 그런 소모적인 관계로 채워지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소녀는 대학을 준비했다. 그림을 반대하는 부모님을 설득했고, 타협해서 원하는 대학에 원서를 넣었다. 어릴 때부터 동경하던 만화를 만들 수 있는 대학이었다. 멀리 돌고 돌았지만, 전부터 원하는 것을 할 수 있겠구나. 이제 남은 건, 평범하고 행복한 일상뿐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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