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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naissance Feb 12. 2024

발전이라는 착각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 종교에 귀의해 수도원이나 절에서 평생 산다던지, 뼈를 깎는 고통을 견디어 내든지, 한 평생 잊지 못할 강한 충격을 겪는 등 매우 제한적인 경우에만 변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걸 해낸 사람들을 우린 성인이나 영웅이라고 부른다. 변하는 것이 너무 힘들기 때문에 우린 영화를 보며 대리 만족을 한다. 주인공은 영화 내에서 반드시 한 번 변화하니까. 그래서 우린 모두 영화 주인공처럼 살길 원한다. 그만큼,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 


내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바꾸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했다. 내 인생 전체가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투쟁이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살을 10키로 넘게 뺐고, 몸을 근육질로 만들었으며, 지방 국립대도 가지 못할 거라는 예상을 뒤엎고 서울 명문대에 갔다.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 해내지 못할 것이라 예상하는 것을 항상 깨부수며 살았다. 영화를 해본 적이 없으면서 갑자기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했을때, 누가 내가 장편을 찍게 될 거라 예상했겠나. 나는 내가 발전의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고, 더 발전할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찾고자 한다. 여전히 내 지식은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아직 발견되지 않은 재능이 있을 거라고 믿는다. 우울증과 불면증이라는 크나큰 장애물이 있어도 발전하고자 하는 내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명절이라 본가에 내려갔다. 이젠 노인이 되어버린 내 부모님은 힘은 없으시지만 여전히 잘 다투신다. 다투는 것이 그들의 삶을 지탱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될 정도다. 그래서 둘 중 한 분이 돌아가시면 큰일 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아무것도 버리고 싶어하지 않는 아버지와, 모든 걸 버리고 싶어하는 어머니는 이번에도 아들 찬스를 쓰신다. 둘이 합의가 안 되니 내가 온 김에 해결하려는 것이다. 나는 합리적으로 삼자의 입장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솔로몬이라도 되는 것처럼 한 쪽의 편을 든다. 그래서 어머니 편을 들었다. 나도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지만, 아버지는 해도해도 너무하신다. 많이 버린 것도 아니고, 책장 앞을 차지하고 있는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오디오 장식장을 버리는 일이었다. 안에 오디오 대신 아버지의 짐이 잔뜩 있었는데, 죽을 때까지 쓰지 않을 네임팬, 수첩, 어학사전, 은퇴 하시기 전 현업때 자료들이었다. 아버지도 어학사전을 쓰지 않을 것이고, 나도 쓰지 않을 것이다. 아포칼립스가 와서 인터넷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면 어학사전이 필요하게 될 지도 모르겠지만, 아포칼립스가 왔는데 누가 어학사전을 보고 있겠나? 그래서 내가 내려간 김에 세 상자 정도 짐을 버렸고, 장식장도 내놓았다. 그러고나니 안 보이던 책장 밑 칸이 보이게 되었고, 거기서 발견해버렸다. 중학교 시절 나의 다이어리를. 유치하기 찬란한 내용은 충격적이지 않았다. 나는 내가 얼마나 심한 사춘기를 보냈는지 잘 알고 있으니까. 2차 성징이 얼마나 세게 왔던지 외모 자체가 바뀌었다. 내가 내 중학교때 사진을 봐도 내 자신인지 의심할 정도다. 그래서 당시 다이어리에 썼던 시라던가, 짝사랑에게 보낸 편지같은 건 충격적이지 않았다. 내가 충격을 받은 것은, 내 글씨체였다. 


고등학교를 외국으로 갔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모든 숙제와 시험이 에세이였다는 사실도 언급했다. 그래서 글씨체를 바꿔야만 했다. 글씨를 못 써도 상관이 없던 교육과정에서, 글씨를 못 쓰면 성적을 받지 못하는 교육과정으로 간 거니까. 글씨체를 알아보지 못하면 뭐라고 썼냐고 물어보는게 아니라 성적이 깎였다. 적어도 채점자가 알아볼 정도로는 글씨를 써야했다. 그래서 글씨체를 바꿨다. 대학교에 가서도 내 글씨체가 마음에 들지 않아 한번 바꾼 적이 있다. 광고회사를 다닐 때에는 메인 카피가 손글씨, 캘리그라피로 들어가는게 유행이던 시절이라 친한 CD님에게 캘리를 원포인트로 배워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내 글씨체가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했다. 모두 착각이었다. 지금 내 글씨체는 내 중학교 때 글씨체와 거의 다르지 않다. ㄹ을 흘려쓰느냐 안 흘려 쓰느냐 정도의 차이만 존재한다. 정말 놀라울 정도로 똑같다. 그게 충격이었다. 과연, 글씨체만 안 바뀌었을까? 


나는 지금껏 내가 많이 발전했다고 생각했다. 내가 변했다고 생각했다. 소심하고 의기소침한 소아비만 아이에서, 자신감있고 당당한 성인으로 자랐다고 생각했다. 정말일까? 내가 정말 변한 게 맞을까?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내 글씨체처럼 사실 나는 여전히 소심하게 좋아한다는 편지도 부치지 못한 의기소침한 아이가 아닐까?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는 명제로 수많은 작품을 쓰고 있는 내가 스스로는 변했다고 생각하다니. 인간이 변하지 않는다는 말엔 당연히 나 자신도 포함된 것인데, 왜 나는 내가 발전했다고 착각을 했을까. 


노화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신체적 전성기가 지났고, 뇌도 발전할 가능성보다 퇴화할 가능성이 높다. 내 몸은 죽어가는 세포의 수가 생산되는 세포의 수보다 많다. 지금까지 이룩한 것으로 남은 인생을 살아야 한다. 젊었을 때는 내 자신에게 부족한 점을 발견하면 언제든지 노력해서 바꿀 수 있을거라 생각하고 살아왔다면, 노화는 더이상 그걸 바꿀 에너지와 능력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과정이다. 내가 상업영화를 찍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히 코로나라는 상황과 운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그만한 능력이 안 되어서 일 수도 있다. 그걸 깨달아가는 입장에서, 중학교 때의 내 글씨체는 또다른 뒷통수 모먼트를 선사했다. 그래, 난 변하지 않았어. 난 영화 주인공이 아니야. 남은 인생은 그냥 나로 살아가자. 뭐 어떠냐. 나는 영화를 살고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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