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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naissance Apr 05. 2024

나이들면 오지랖 넓어진다고 누가 그랬어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다. 어디선가 대사로 나왔던 것 같기도 하고, 실제로 그런 말을 한 주변 어른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나이들면 오지랖만 넓어져가지고. 좀 이해해줘' 라는 식의 이야기. 나이가 들다보니 내가 먼저 거쳐온 인생이 있고, 거기서 쌓인 노하우가 있으니 주변에서 잘못된 길을 가려는 젊은 사람들을 보면 한마디 얹어주고 싶기는 하다. 물론, 내가 점점 더 내성적이 되어가기 때문에 속으로만 생각한다. 


나이가 들면 낯이 두꺼워지고 오지랖이 넓어지는 건 줄 알았다. 어렸을땐 오지랖 부리는 선생님들이 싫었고 그래서 나이가 들면 절대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라고 생각했다. 나이가 조금 들고보니 어르신들이 서스럼없이 낯선 이들에게 말을 거는 것이 부럽다고 느껴졌다. 지금은 비록 내가 내성의 끝을 달리고 있지만 나이가 더 들면 낯이 두꺼워지겠지? 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나는 점점 더 내성적이 되어간다. 


나이가 들고 내성적이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느냐. 내가 전에 쓴 글에서 평생 존중받기 위해 노력했는데 나이가 들면 저절로 존중을 받게 된다고, 나이의 이점에 대해서 언급한 적이 있다. 이게 실제 존중을 떠나서 나이가 들면 사람들이 어려워하는걸 비틀어본건데, 사람들이 어려워해서 다가오질 않는데 나는 점점 더 내성적이 되어가서 아무에게도 말 한마디 걸지 않으니, 말 그대로 살아있는 상태로 고립되는 기분이다. 내가 이걸 왜 느꼈느냐. 


오랜만에 혼자 해외여행을 왔다. 6년? 7년 만인 것 같다. 어렸을땐 혼자 해외여행도 자주 다녔는데, 영화를 하면서 점점 안 하게 되었다. 혼자 해외여행을 해도 재밌었던게, 나는 영어를 잘 하고, 랜덤한 사람들이 말을 걸어주니, 랜덤한 대화를 하는게 좋았다. 그게 예전엔 그랬다. 이번에 해외여행을 오니, 아무도 말을 걸지 않는다. 정말 아무도. 내 외모는 큰 차이가 없다. 피부와 입술이 얇아지고 눈꺼풀과 피부가 내려오는 노화 빼고는 스타일이 크게 바뀐 것이 없다. 내가 갑자기 눈이 사나워졌다던가, 머리를 드레드락 스타일로 해서 사람들이 다가오기 힘들게 한 것이 아니다. 내 스타일은 똑같고, 나이만 먹었다. 놀랍게도 아무도 말을 걸지 않는다. 심지어 하루짜리 단체 투어에 갔는데, 나처럼 혼자 온 서양 아저씨가 있었고, 바로 앞 뒤 자리에 앉았음에도, 그는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물론 나는 말을 걸지 않길 바랬다. 하지만 말을 걸면 최대한 친절하게 응대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끝내 말을 걸지 않았고, 나는 그게 깨달음으로 다가왔다. 이제 내가 먼저 다가가지 않으면 아무도 나에게 다가오지 않겠구나. 


나이가 들면 오지랖이 자동으로 넒어지는게 아니다. 무릇 나이가 든 사람은 국적을 불문하고 모두 어려워하게 되어있다. 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교류를 하기 우해 어른들은 먼저 말을 거는 것이다. 그걸 나이를 먹고서야 깨닫는다. 역시 인간은 겪어봐야 안다.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혼자 글이나 쓰고 있는 나.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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