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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naissance May 29. 2024

분노할 대상에서 예술은 좀 빼라

바야흐로 분노의 시대다. 모두가 화가 나 있다. 사회적 공분을 사는 행동을 한 연예인을 전국민이 씹는 것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지만, 이제는 그 정도가 도를 넘었다. 한달 간격으로 새로운 타겟을 언론이 정해주면 분노에 가득한 사람들이 몰려가 본인의 화를 푸는 일종의 패턴이 되어버렸다. 내 말이 과장처럼 느껴지면 지난 한 해 동안 사회적 공분을 산 연예인, 유튜버, 컨텐츠를 찾아보라. 많으면 한달이 채 걸리지 않아 새로운 대상으로 분노가 옮겨갔다. 정도가 점점 심해져 이제는 한번에 여러 대상에게 분노를 쏟아낸다. 한달 전에는 민희진과 하이브였고, 현재는 김호중, 피식대학, 강형욱이다. 할 말은 많으나 나는 피식대학에 대해서만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내가 주구장창 얘기하는게 예술은 예술로서만 보라는 거다. 유교적 엄숙주의와 완전무결한 도덕성을 예술에 들이대지 말라는 거다. Cancel culture가 처음 시작된 미국도 더이상 끌어내릴 사람이 없어지자 10년 전 SNS 발언까지 들춰가며 대중이 분노를 쏟아야 할 타겟을 정했고, 그런 식으로 따지면 걸려들지 않을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컨텐츠 크리에이터들은 더이상 사과를 하지 않기 시작했다. 해당 발언을 했던 시대와 맥락을 봐야한다는 주장에 대중이 동조하기 시작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제임스 건이다. 제임스 건은 아주 오래전 트위터에 소아성애에 대한 농담을 올린 적이 있는데 이것을 문제삼아 대중은 마블에 제임스 건을 해임하라는 온라인 운동을 펼쳤다. PC주의의 첨병인 디즈니는 이것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았고, 제임스 건과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3편 연출/각본 계약을 해지했다. 하지만 제임스 건 발언이 농담일 뿐이었고, 오래 전에 했던 발언까지 들고와서 문제를 삼다보면 끝이 없다는 주장이 힘을 받기 시작했고, 워너브로스는 재빠르게 DC 영화의 새 수장으로 제임스건을 전격 기용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주연 배우들이 제임스 건이 떠난 영화에는 흥미가 없다며 하차 의사를 통보하자 디즈니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모양새 사납게 제임스 건에게 읍소하여 다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3의 연출을 맡아달라고 부탁했고, 그 결과는 '이 정도면 얼마든지 더 무릎을 꿇을 수 있다'였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3는 마블이 내리막길로 들어선 이후 개봉한 영화임에도 시리즈 역대 최대 흥행성적을 거뒀다. 


한발 더 나아가 보자. 미투 운동이 일어난 이후 수많은 영화인들이 말에도 담지 못할 파렴치한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이 폭로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와인스타인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사건으로 기소될 정도로 정말 수많은 성범죄를 저질렀다. 그가 끔찍한 성범죄자인 것에 반박할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그가 제작한 영화들까지 모두 보이콧 해야할까? 그가 제작했던 영화의 예술성이 그의 성범죄로 인해 깎이거나 없어지는 것일까? 참고로 쿠엔틴 타란티노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를 빼고 모든 필모를 그가 제작했다. 저수지의 개들는 성범죄자가 제작한 영화니까 보지 말아야 할까? 펄프 픽션은 영화사에서 묻어버려야 할 작품일까? 한발짝 더 나아가보자. 로만 폴란스키는 미성년자 강간으로 미국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냥 강간도 아니고 미성년자 강간이다. 천하의 파렴치한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피아니스트'는 강간범이 만들었으니 더이상 위대한 영화가 아니게 되는 걸까? 피아니스트를 보고 눈물을 흘린다면 나 또한 강간에 동조하게 되는 것일까? 사람마다 다른 가치판단을 내릴 수 있는 질문이다. 나는 그렇지 않다는 주장을 하고 싶은 거다. 


피식대학이 유튜브 채널에 올린 영상이 식당을 비하하고, 지역을 비하했다고 모두 분노를 쏟아내는 중이다. 지금까지 올린 모든 컨텐츠의 발언 하나하나를 문제삼기 시작했다. 나는 예술은 예술로만 보아야 한다는 주의인데 코미디는 특히 더 그렇다. 미국의 코미디언들은 코미디에 성역이 존재하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코미디계에도 당연히 미투운동이 있었고, 많은 코미디언들이 매장당했다. 한창 미투운동이 활발하던 시기에 미국 코미디계는 '페미니즘에 반하는 코미디를 하면 안 되나'는 주제로 불타올랐다. 페미니즘에 조금이라도 반하는 코멘트를 하면 매장되는 분위기였던 때임을 감안하면 코미디에 성역을 두면 안 된다는 그들의 믿음이 얼마나 확고한지 알 수 있다. 결국 성역이 존재하면 안 된다는 주장이 이겼다. 미투에 대한 풍자도 당연히 했고, 페미니스트에 대한 풍자도 마음껏 했다. PC주의자들과 페미니스트들의 맹렬한 비난을 받았고, 주류 언론도 미투를 개그 소재로 사용하는 코미디언 들에 대해 냉혹한 비판 기사를 쏟아낸다. 하지만 코미디언들은 굴하지 않았다. 페미니즘에 반하는 코미디를 했던 자들은 TV와 라디오 방송에서 퇴출됐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들은 자신의 팟캐스트를 운영했고, 스탠드업 코미디 쇼를 열어 돈을 벌었다. 그 결과가 어땠을 것 같나. 미국 주류 방송사의 코미디 프로 시청률이 곤두박질쳤다. 민감한 이슈에 대한 코미디가 사라진 미국 TV 프로들이, 성역 없이 까대는 스탠드업 코미디와 유튜브 컨텐츠에 비해 재밌을 수가 없다. 우리나라 TV 예능의 몰락과 비슷하지 않나? 그렇게 TV에서 멀어진 이들이 유튜브에서 대박을 치고, 더이상 TV에서 코미디 프로라고 할만한 것이 없어지자 이제는 유튜브까지 쫓아가 엄숙주의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유튜버들이 그러했듯, 피식대학은 죽지 않을 것이다. 사회의 분위기가 어떻든, 주류 언론이 비판을 하든 말든, 보고 싶어하는 사람은 볼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주류 언론들과 분노를 쏟아낸 사람들의 주장이 옳다면, 피식대학은 아무도 보지 않아서 망할 것이다. 결국 예술은 즐기는 사람들이 판단할 문제다. 즐길만 하면 즐기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안 보면 되는 것이다. 거기에 도덕적 엄숙주의 잣대를 대고 '옳지 않으니 보면 안 된다'라고 주장하기 시작하면, 세상에 도덕적으로 완벽한 컨텐츠가 있는지 반문하고 싶다. 


이런 일이 있을때마다 항상 보이는 주장이 있다. '남을 까내리고 비하하는 개그 좀 안 봤으면 좋겠다. 그걸 안 해도 충분히 웃길 수 있잖아.' 그런가? 그런 코미디가 있으면 당신이 마음껏 즐겨라. 근데 그런 코미디는 없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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