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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naissance Jun 23. 2024

K-착각

K-something 으로 대변되는 한국의 문화컨텐츠를 까대리려는 글이 아니다. 


K-무비와 K-드라마가 세계를 휩쓸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한국에서 제작된 한국어 컨텐츠가 전세계 OTT 시청횟수 1위를 하는 경우는 이제 흔하다. 한국에서 반응이 완전 바닥이었는데 해외에서는 시청률 1위를 기록해서 의아해하는 경우 또한 흔해졌다. 스윗트홈 시즌2, DP 시즌2, 영화 황야 등 한국에서는 아무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시즌2가 나왔었어?' 수준으로 묻혀버렸지만, 해외에서는 1위를 찍었다. 하지만 이면에는 불편한 사실이 숨겨져 있다. 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홍콩 영화가 아시아를 휩쓸었을때, 퀄리티와 재미 측면에서 뛰어난 작품만 나왔던 것은 당연히 아니다. 느와르가 흥하니 공장 양산 찍어내기식 느와르 작품이 쏟아져나왔다. 주윤발만 캐스팅하면 시나리오가 이상해도 퀄리티가 낮아도 다 볼 것이라는 가정을 했는지, 주윤발 캐스팅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잘못되어있는 영화들이 부지기수로 나왔다. 그래서 주윤발 선생님(거장, 옹, 마스터, 장인 등 어떤 수식어를 붙여도 부족한)의 필모에는 흑역사가 많다. 더 심했던 장르는 느와르가 아닌 무협이었는데, 캐릭터 이름만 바뀌었을 뿐 스토리가 똑같은 영화가 많았다. 김용의 무협지에서 파생된 장르였기에 심지어 주인공이 쓰는 무공의 이름도 똑같았다. 이연걸의 몸은 하나였기에, 당시 홍콩의 배우들은 무술을 배웠는지의 여부와 관련없이 모두 무협영화에 출연했고, 주연 배우의 기량 부족으로 도저히 봐줄 수가 없는 퀄리티가 많았다. 당시는 기술이 뛰어나지 않았기에 스턴트 배우를 쓴 후 뒷모습을 촬영하는 식으로밖에 해결할 수가 없어서, 유명 배우의 무협영화를 보러가서 뒷모습만 보다가 나오는 경우도 흔했다. 그런 경험이 쌓이면 어떻게 되느냐. 영화를 매우 깐깐하게 고르게 된다. 홍콩영화라고 다 보지 않게 되는 것이다. 당분간은 홍콩영화라는 브랜드를 믿고 본다. 그래서 퀄리티가 형편 없음에도 흥행에 성공한다. 하지만 관객들이 내상을 입는 경우가 하나둘 쌓이다 보면 브랜드의 가치가 떨어지게 되고, 결국 발길을 끊는다. '어차피 똑같은 영화겠지 뭐'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그 브랜드는 끝이다. 홍콩 영화는 그렇게 망했다. 


한국 영화와 시리즈는 똑같은 코스를 밟고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심하게 욕한 컨텐츠가 해외에서 1위를 했다고 해서 의아해할 필요가 없다. 아무리 수준 낮은 홍콩영화가 나와도 열광했던 사람들은 많았다. 나도 그중에 한명이었다. 그런 사람들을 마니아라고 부르는 이유는 자명하다. 소수의 열광팬이기 때문이다. 방점은 '소수'에 찍힌다. 마니아라는 명칭에는 소수라는 전제가 붙어있다. 다수가 좋아하면 대중의 취향이지 마니아 취향이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상하게 본 컨텐츠라면 해외 팬들도 똑같이 느꼈을 확률이 크다. 마니아들이 호의적인 댓글을 달고 리액션 영상을 만들었다고 해서 우리나라 팬들과 해외 팬들의 컨턴츠를 보는 시각이 다르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할리우드 영화의 흥행성적을 보면 놀랍도록 전세계가 비슷하다. 미국에서는 폭발적인 흥행을 했지만 전세계적으로 망한 영화라던가, 미국에서는 완전 망했지만 전세계적으로는 흥행을 한 영화라던가, 다른 모든 나라에서는 망했는데 한국에서만 잘 된 헐리우드 영화는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적다. 통계에서는 이런 케이스들을 아웃라이어라고 부르고 무시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별로라고 생각하는 컨텐츠는, 아무리 홍보사가 해외에서는 각광받았다고 기사를 뿌려봤자, 해외의 팬들도 실망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런 내상들이 쌓이고 있다. 


한국 컨텐츠가 전세계적으로 각광받고 있고 미래가 밝다면 투자하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다. 우리나라 영화, 시리즈 중에 해외에서 투자받아 만들어지는 케이스는 넷플릭스와 디즈니가 유일하다. 워너 브라더스는 한국을 떠난지 오래고, 유니버설이나 파라마운트 미라맥스 같은 미국 영화 배급사들은 한국에 투자할 생각이 1도 없다. 디즈니는 심지어 한국 컨텐츠 투자규모를 축소했다. 오로지 넷플릭스만 투자하고 있는 형국이다. 현재 우리나라 영화계가 겪는 위기는 제한적인 투자처 때문이다.  우리나라 영화는 CJ, 롯데, 쇼박스, NEW 4대 메이저 배급사가 만들어왔고, 극장을 소유하지 않은 쇼박스와 NEW는 완전히 쪼그라들었다. 극장 수익이라는 든든한 주머니가 있는 CJ와 롯데만 믿고 버텨왔는데, 그 두 배급사가 올해 투자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4대 메이저 배급사가 투자를 안 하니 영화가 안 만들어진다. 이게 정상인 시스템이라고 볼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각광을 받는다더니, 씨제이와 롯데가 투자를 안 하면 영화 한 편 안 만들어지는 시장이라니. 그렇다면 왜 이렇게 투자처가 제한적일까? 


우리나라 영화 제작사들이 다양한 투자 루트를 발굴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던 것도 크다. 섬나라 특성상 자국에서만 모든 것을 하려는 경향. 교통만 막혀있는 것이 아니라 사고도 막혀있다. 섬 밖에서 뭔가를 하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이유는 언어다. 전 세계에서 한국어를 사용하는 곳은 한반도 밖에 없다. 전세계에서 딱 두 나라인데 그 중 한 나라는 전체주의 국가로 경제가 고립되어 있으니 나라라고 볼 수 없는 수준이다. 따라서 한국어로 컨텐츠를 만들면 자막이나 더빙 없이 볼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제한적이다. 유아와 노인을 제외하고, 컨텐츠를 보지 않는 사람들까지 제외한다고 치면 많이 잡아봐야 3천만 정도의 시장이다. 영어로 컨텐츠를 제작하면 적게 잡아도 40억 정도가 대상이다. 내가 투자자라도 영어 컨텐츠에 투자하지 한국어 컨텐츠에 투자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플레이어들이 발벗고 뛰는 수밖에 없다. 지금을 기회라고 생각하고 투자처를 다변화시켜야 한다. 한국 영화에 투자하면 수익을 낼 수 있다고 전세계 투자자를 상대로 영업을 해야한다. 하지만 내가 만나본 영화 제작자 중 영어로 대화가 가능했던 사람은 한 명 정도고, 그 한 명 마저도 영어를 잘 하는 척 하는 정도, 일상 대화를 하는 정도이지 비니지스 영어가 가능한 사람이 아니었다. 애초에 영화 제작업이라는 것이 영어가 필요한 직업이 아니니까. 


프랑스 감독들을 만났을때 한국 감독들과 달리 영어를 잘 하는 것이 놀라웠고, 왜 그러냐는 질문을 했다고 글에 쓴 적이 있다. 프랑스는 영화를 하려면 영어를 잘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나라였다. 감독 뿐만이 아니고 음향, 촬영, 배우, VFX 등 모든 분야의 사람들이 영어를 잘 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취직을 하려면 영어를 잘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나는 영어를 잘 한다. 영어를 잘해서 영화계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얘기는 '나중에 성공해서 미국가면 되겠네'와 '영화계에서는 쓸데 없는 능력인데 다른 일을 해보는게 어때'였다. 우리나라 영화계에서는 영어가 '쓸데없는 능력' 취급을 받거나 '다른 나라에서 쓸 능력' 취급을 받는다. 투자처가 다변화 되지 않는 이유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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