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enaissance Jul 04. 2024

재미로 시작한일, 언제까지 재미로 할 수 있을까

아직 유튜브의 기술로 알고리즘이 내 취향을 잘 파악하지 못해서, 알고리즘 추천 영상을 잘 보지 않는다. 나는 한번 관심이 생기면 그 채널의 영상만 주로 보고 관심이 없어지면 구독을 끊는다. 그런 식으로 유튜브를 보다보니 점점 채널이 줄어서 요새는 세 개의 채널 정도만 보는 중이다. 공중파 채널이 세 개가 넘는 것을 감안하면 거의 안 보는 거나 다름이 없다. 그래서 몰랐던 미스터 비스트. 뉴스를 통해 이름을 접한 적은 있는데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가 그가 무려 5년 간 아무도 보지 않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했다느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사실에 크게 감화되었다.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유튜브 채널을 운영한게 대단한게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별다른 피드백이 성장의 증거 없이 어떤 일을 5년간 하는 일은 지독하게 어려운 일이다. 프리랜서를 해본 사람이라면 무슨 말인지 바로 알 것이다. 당장 수익이 1년만 없어도 대부분 그만 두는게 현실. 1년을 버티는 것도 잘 버틴 거다. 하지만 미스터 비스트는 5년을 버텼다. 아무도 보지 않는 유튜브 영상을 5년 동안 꾸준히 올렸다. 대단하다는 말 말고는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자신에 대한 엄청난 자기 확신이 있어서, 나는 분명히 성공할테니 계속 이 일을 하자 라는 경우와, 남들이 보든 보지 않든 그냥 재밌으니까 계속 올려야지, 이 두개 중 하나일 것이다. 둘 다 일수도 있다. 자신에 대한 그 정도 자기 확신이 있는사람은 극히 드무니, 후자쪽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한다. 유튜브 영상을 만드는 것이 재밌어서, 자기 채널을 꾸려가는 것이 재밌기 때문에 수익이 없고 구독자가 없어도 계속 한 것이지, 언젠가 제가 세계 1등의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될 것이니 지금은 거기에 가는 단계에 불과하다면서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런저런 알바로 근근히 먹고사는 감독들이랑 항상 하는 말이 있다. '내가 언젠가 상업영화를 찍게 된다는 보장만 있다면 정말 즐겁게 지금을 살아갈텐데'라고. 그런 자기확신을 가진 감독을 나는 본 적이 없다. '나는 나중에 칸 황금종려상을 받게 될 거야. 그러니 지금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상관업성'라고 말하는 감독을 본 적이 있는가? 가장 가까운 케이스를 찾는다면 안태진 감독일 것이다. 안태진 감독은 지천명에 올빼미로 데뷔해 성공적인 상업 데뷔를 했다. 그는 10년이 넘는 세월을 버텼다. 2005년 왕의남자 조감독을 했으니, 그 전부터 상업영화 판에서 스태프로 뛰었을 것이다. 거의 20년을 버텼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왕의남자 조감독 말고 크레딧이 없다. 간간히 각색을 한다던가, 각본을 파는 등 피드백을 받을만한 일도 없었다. 감독님을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가 아니라 어떻게 버틴 건지 물어볼 기회는 없지만, 언젠가는 물어보고 싶다. 자기 확신이었냐, 재밌어서 그냥 한 거냐. 


작년에 각색을 한 이후 계약이 끊겼다. 아무런 계약도 없이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갔다. 내가 스스로 영화인이라고 할 수 있을지, 자각이 안 되는 수준이 되었다. 고작 1년만에 이런 지경이 되는데, 어떻게 5년을 그냥 했을가. 어떻게 20년을 그냥 했을까. 물론 시나리오를 쓰는건 재밌다. 이걸 내가 찍을 생각을 하고 시나리오를 쓰는건 재밌기 때문에 독립장편 시나리오 한 편을 빼고는 시나리오를 팔아본 적이 없지만 계속 오리지널을 쓰고 있다. 열개 쓰기 전에 상업 찍겠지 했는데 이제 얼마 남지가 않았다. 난 계속 재미로 이 일을 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기회가 닿아 다른 프로젝트를 각색을 하던가, 각본 의뢰를 받던가 등 내가 영화인으로서 자각할 수 있는 피드백이 있어서 지금까지 버텼던 것 같다. 피드백이 없어진지 1년, 나는 벌써 이직을 생각하고 있다. 나는 영화가 그정도까지는 재미가 없는 것일까.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드는 미스터 비스트의 일화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K-착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