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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naissance Aug 08. 2024

새로운 시도. 나름의.

나이가 들면서 새로운 도전에 인색하게 된다. 새로운 경험을 해보는 것에 몸을 사리게 된다. 귀찮다는 이유로, 겁이 난다는 이유로, 온갖 핑계를 대가면서 하지 않게 된다. 총체적 에너지가 줄어들기 때문에, 이 줄어든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아서 그럴 것인데, 맨날 똑같은 것만 하는게 오히려 에너지 낭비가 아닐까. 새로 시나리오를 썼는데, 처음으로 비장르 시나리오를 써봤다. 익히 해왔던 시나리오 쓰기지만, 나름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고 노력 한 거다. 그렇지만 그 이유는 그리 밝지 않다. 내 글들이 모두 어둡듯이. 


생각하면 할 수록 영화에 대한 나의 집착은 사랑에 가깝다. 그것도 짝사랑. 뼈아픈 짝사랑 다들 한번씩 해보지 않나. 짝사랑 하는 상대의 사랑을 얻기 위해 별의별 짓을 다 했고. 상대방이 냉정하고 단호하게 싫은 의사표현을 하지 않은 경우, 혹은 마음을 줄 것 같은데 진지한 관계로의 발전은 꺼리는 경우 짝사랑 기간은 길어지게 된다. 그런 경우는 정말 온갖 것들을 다 하게 되는데, 내가 지금 딱 상황이 그렇다. 기간이 너무 오래 되다보니, 이젠 포기하기도 쉽지 않게 되어버렸다. 하지만 모든 짝사랑이 그러하듯, 해피엔딩은 기다리고 있지 않다. 


한 번에 끊어내지 못할 것 같아서 이별을 준비하는 중이다. 이전 글에도 천천히 이별을 준비하는 중이라고 했는데, 두 개의 시나리오를 더 쓰고 시라니오 열 개를 채우고 그만두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열 개의 영화를 찍고 은퇴를 한다는 계획을 공공연하게 밝혀왔고, 이제 마지막 영화 한 편만 남은 상황인데, 나는 시나리오만 열 개 쓰고 은퇴하게 생겼다. 이런 경우 은퇴라고 부르지도 않지. 내 경력은 독립장편영화 각본, 감독, 상업영화 각색 두 편, 그 중 한편은 개봉을 했지만 제작자가 내 이름을 빼버렸고, 나머지 한편은 캐스팅에 실패했다. 따라서 크레딧으로만 따지면 내 경력은 그냥 독립장편 영화 한 편 뿐이다. 그러니 은퇴라고 부르기도 애매하고, 그냥 노력하다가 그만둔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새로 쓴 시나리오는 비장르 영화, 흔히 말하는 예술영화 시나리오를 썼는데, 어려웠지만 재밌었다. 새로운 시도여서 방황하기도 했지만, 결국엔 끝냈다. 시원하기 보다 섭섭하다.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별로 없다. 그냥 혼자 좋아서 쓴 기분이다. 물론 동료 감독들에겐 보여줬고, 한번 고치고 돌려보자고 하는데, 별로 기대하지 않는다. 그저 쓰는게 좋았고, 그래서 끝난게 아쉽다. 예술영화는 사실 장르의 구조를 따라가지 않기 때문에 시작과 끝이 명확하지가 않다. 그래서 원한다면 한도 끝도 없이 쓸 수 있다. 그걸 알기에 적당한 선에서 끝냈으나, 어차피 만들어지지도 않을 영화 계속 재미로 쓸까 하다가, 이게 무슨 소용이냐며 그만뒀다. 나이들수록 강박과 집착만 심해지는 것 같다. 예술영화 하시는 분 중에 실제로 장편소설 두께만큼 시나리오를 쓰는 분들이 있다는데, 왜 그렇게 되는지 실제로 해보니 이해가 된다. 주인공이 계속 인생을 살게끔 해주고 싶다. 시나리오가 끝나면서 주인공의 인생이 끝나버린 느낌이랄까. 경력을 끝내기 위해 준비중이라 그런지,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이런 식으로 나타나는 건가. 


이렇게 조그마한 거라도 계속 시도하자. 뭐라도 하자. 매일 하루씩 죽어가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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