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enaissance Aug 05. 2024

골프를 치지 않는 이유

불혹이 되고 나니 주변에 골프를 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사람은 끼리끼리 논다고, 나에게 먼저 연락을 해주는 몇 안 되는 친구들은 모두 골프를 치지 않는다. 나이 때문인지 직업때문인지 점점 더 내향적인 면이 강해지는 터라 아무에게도 연락을 하지 않는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연락을 해주는 몇 친구가 매우 고마운 상황이다. 살갑지도 않고, 잘 나가지도 않고, 매사에 비판 분석만 하는 그런 까칠한 인간에게 계속 연락을 해주는 소중한 존재들이다. 운이 좋게도, 그 소중한 존재들은 사회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이렇게 사람들을 잘 챙겨서 성공한 것일수도. 여튼 하고 싶은 말은, 그렇게 사회적으로 성공한 동년배 남자들임에도 골프를 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끼리끼리 논다고, 내가 볼(ball) 스포츠를 안 좋아해서 친구들도 그런가 보다 하고 생각했는데, 최근에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에게만 충격일 수도 있다. 내가 골프에 아예 관심이 없어서 나만 몰랐을 수 있다. 골프는 네 명이 모이지 않으면 칠 수 없다는 거, 다들 알고 있었나? 필드에 나가려면 반드시 네 명이 예약을 해야하고, 이 네 명을 모으기가 어렵기 때문에 북킹을 해주는 사람을 따로 둔다고. 나이트의 부킹이라는 용어가 골프에서 온 것인지, 골프의 부킹이 나이트에서 온 것인지. 여튼 마작도 아니고 네 명이 모이지 않으면 칠 수 없다니, 도대체 왜지? 마작은 동서남북이 있어야 칠 수 있는 룰이라서 네 명이 모이지 않으면 칠 수 없다는 걸 이해한다. 근데 도대체 골프는 왜? 18개 홀에 공을 넣으면 되는 스포츠잖아. 네 명이 왜 필요하지? 나는 어렸을때 유럽국가에 살았고, 골프를 일찍 접했다. 부모님은 외국에 나온 김에 내가 골프와 승마를 배우기를 원하셨다. 외국에 나와보니 잘 사는 집안 사람들은 자녀들에게 골프와 승마를 꼭 가르쳤고, 신분상승의 꿈에 부푼 부모님은 나도 그런 취미를 익혀 잘 사는 집안 자제들과 어울리길 원하셨다. 하지만 나의 성향상 내가 흥미가 있어서 하는게 아니라 해야해서 하는것을 잘 못한다. 불혹의 나이에 역도를 하고 있는 지금을 보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너무 잘 드러나지 않나. 그래도 무조건 안 한다고 할 수는 없기에 골프도, 승마도 조금씩 배우기는 했다. 승마가 골프보단 재밌었지만 말에서 한번 떨어진 이후에 그만뒀다. 서핑, 스쿠버다이빙 같은 스포츠는 죽을 위기를 겪고도 그날 바로 극복할 정도로 대단한 정신력을 가졌지만, 그건 내가 하고싶은 것에만 발휘되는 거다. 서핑 입문하고 두번째 서핑하러 간 날 하필 폭풍이 몰아쳤고, 정말로 죽을뻔 했지만 여기서 꺾이면 다신 서핑을 안 한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스쿠버다이빙도 배운지 두번째날 상승기류를 만나 귀가 터질뻔 했고 트라우마로 숨이 안 쉬어졌지만 같은 이유로 그냥 들어갔다. 숨이 막혀 죽을것 같으면 내가 숨을 쉬겠지 라는 말도 안되는 정신력을 발휘했다. 정말 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런 것인지, 승마는 한 번 떨어지니 바로 기세가 꺾였다. 골프는 꽤나 잘 했는데 재미가 없었다. 이 재미없는걸 왜들 그렇게 좋아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땀이 나지 않으면 운동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성향이라서 그런가? 그렇게 따지면 스쿠버다이빙도 땀이 나지 않는데. 그냥 공놀이를 싫어하는 것 같다. 축구, 농구도 안 좋아하니 말 다 했지 뭐. 어렸을때 골프를 배울때 필드에 '혼자' 나가서 쳤다. 그리고 골프장에 온 대부분의 사람들이 '혼자' 온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유럽 특유의 문화상 서로 마주치면 자연스럽게 인사를 했고, 실력이 뛰어난 사람이 있으면 먼저 치시라고 양보했다. 그게 너무나 당연한 문화였다. 혼자 온 사람들끼리 서로 인사하고 먼저 치라고 하고 담소를 나누는 것이. 나처럼 못 치는 사람이 고민하면서 스윙 한번 휘두르는데 온갖 신경을 쓰면 뒤에 사람은 한도 끝도 없이 기다려야 하니, 초보는 바로 앞 홀 까지 사람이 쫓아오면 양보하는게 일이었다. 그렇게 골프를 배웠던 내가 네 명이 모이지 않으면 골프를 치지 못한다는 말에 받았을 충격을 상상해보라. 혼자 할 수 있는 스포츠를 버디 시스템의 두 명도 아니고 무려 네 명을 모여야만 칠 수 있다는 한국 골프장의 시스템을 내 논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생각해보면 한국에 와서 그렇게 변형된 것들은 얼마든지 많다. 인터넷으로 아무리 전세계가 연결되어도 육로가 끊긴 섬나라, 그 중에도 고유의 언어를 쓰는 섬나라는 특유의 문화가 세고, 어떤 것이 들어와도 고유의 문화로 발전되는 경우가 많다. 예시는 너무 많아서, 거의 모든 것이 그러해서 굳이 한 가지를 안 들어도 될 것 같다. 혼자하는 시간이 점점 많아지고, 혼자 하는 스포츠만 하게 되는 나같은 인간은 결국 끝끝내 골프를 치지 않을 것이다. 내 가까운 친구들이 골프를 치지 않는 이유는 제각각의 이유가 있겠지만, 이 특유의 북킹 문화가 한 몫 했으리라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다. 새로운 지식을 배우길 좋아하고, 새로운 정보를 공유해주면 고맙다고 하기 전에 그게 맞는 것인지 논리적으로 비판하고 씹고 맛보고 즐기는 나같은 인간에게 게의치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정보를 주는 그들의 성향을 고려한다면, 골프를 좋아할 수가 없다. 땀이 나지 않는 스포츠를 네 명이서 하면서 할 것은 이야기밖에 없을 것이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그 스포츠를 할 리가 없다. 골프를 치면서 새로운 지식을 공유하고 그 지식의 적합성을 검증하면서 정반합을 찾는다면, 나야말로 누구보다 먼저 골프를 치겠지. 코로나로 반짝했던 골프의 인기가 시들어가고 골프장들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에, 아마 모든 골프장이 망해도 북킹 문화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들어 쓰는 글. 대부분 그렇거든. 끝내 그 산업이 망하는 이유를 고치지 않고 망하는 길을 택하더라고. 영화도 그렇고. 

작가의 이전글 균형 맞추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