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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naissance Aug 22. 2024

통제적인 성향이라고 들어는 봤나

우연히 보게되었다. 누군가 인터넷에 써놓은 글을. 너무 내 얘기라 할 말을 잃었다. 규칙적인 삶을 살면서 딱히 사람을 많이 만나는 것도 아닌데 스트레스에 가득 차 있어서 정신과를 갔다고 한다. 정신과 의사가 검사를 해본 후 통제적인 성향이 강한 연유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진단을 내렸다. 그게 어떤 건지 예시를 들어줬는데 내 마음을 후벼팠다. 지하철에서 사람이 내릴때 어떤 사람이 중간에서 핸드폰을 보고 있어서 흐름을 방해하면 스트레스를 받는단다. 운전 하는데 신호가 바뀌고 나서 늦게 출발하는 차를 보거나 끼어들기 금지 구간에 끼어드는 차를 보면 스트레스를 받는단다. 그게 나야. 


정도의 차이는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저 예시를 보면서 누구나 저럴 때는 화가 나는거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피곤하게 산다고 생각할 것이다. 나는 저런 상황에서 매우 화를 많이 삭히는 편이다. 내 지인이 나보고 맨날 하는 얘기가 '내가 바꿀 수 없는 일에, 내가 할 수 있는게 없는 일에 스트레스를 받지 말라'는 것이다. 이 말이 곧 통제적인 성향을 내려놓으라는 말이었음을 오늘 깨달았다. 난 모든걸 통제하려고 하는구나. 


계획이 어긋나서 짜증나는건 뭐 그러려니 했는데, 길거리에서 핸드폰 보고 걷는 사람보고도 스트레스가 쌓이면 그건 문제가 있는거다. 심지어 내가 헬스장을 그만두게 된 계기가 스트레스였다. 랙이 두개 밖에 없는 헬스장을 다녔는데, 사람들이 많이 오지 않는 시간에 다녔음에도 랙을 차지하기 위한 눈치게임을 해야했다. 누군가 랙을 쓰고 있으면 다른 머신을 하던가 맨몸 스트레칭을 하면서 기다렸는데, 언제부터인가 랙 하나를 한시간 넘게 차지하고 운동을 하는 것이 비매너가 아닌게 되어버렸나 보다. 한번 랙을 차지한 사람은 떠날 기색이 없었다. 헬스가 대중화되면서 헬스 중급자들의 수가 늘어나고, 중급자들은 스쿼트와 데드, 밀프 등 랙을 사용하는 운동을 선호한다. 그럼 중급자가 되기까지 매너도 같이 배웠어야 맞는 것 같은데, 스쿼트가 끝나고 아무 거리낌 없이, 한 종목이 끝났으니 남에게 양보하려는 생각은 1도 없이 곧바로 데드를 하는 모습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머신은 중급자들보다 초급자들이 많이 쓰니 더 스트레스 받는다. 세트간 휴식시간의 개념이 없는 단계이기 때문에, 한 세트하고 핸드폰을 보며 한도 끝도없이 앉아있는 모습을 보면 열이 받았다. 그래서 헬스 말고 다른 운동을 해야겠다 마음을 먹었고, 지금은 신나게 역도를 하고 있다. 왔다갔다 두시간이 걸려도 스트레스를 덜 받는게 좋다. 이 에피소드만 읽어봐도 내가 얼마나 통제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인지 알 수 있지 않나? 


엘리베이터에서 버튼 앞에 서 있는 사람이 열림 버튼과 닫힘 버튼을 올바로 사용하지 않으면 열받는다. 길거리에서 반대편에서 오는 사람이 핸드폰을 보고 걸어오면 열받는다. 횡단보도에서 자전거와 오토바이를 탄 사람이 내리지 않고 건너면 열받는다. 인도에서 자전거 주행을 하는 사람을 보면, 그런 사람이 특히 사람을 향해 경적을 울리는 것을 보면 엄청나게 열받는다.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려는데 차가 서지 않으면 열받고, 운전하다 보행자를 발견하고 멈췄을 경우 건널 생각은 않고 핸드폰만 보고 있으면 열받는다. 분리수거일에 잘못 버려진 분리수거 용품을 보면 열받고, 음식물 쓰레기에 닭뼈나 조개껍질을 발견하면 열받는다. 심지어 한 집에서 너무 많은 배달용기를 버리는 것도 열받고, 마트에서 별것도 아닌 것에 플라스틱 포장을 해놓는 것도 열받는다. 지금 쓰고 있는 이런 예시들 한도 끝도 없이 쓸 수 있다. 내 스트레스 지수는 검사를 해보면 아마 최고점일 것이다. 왜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을 통제하려고 하는가. 나는 언제부터 이랬나. 


생각해보면 어렸을땐 이런 성향이 아니었다.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부터, 뭔가 대단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부터 이런 성향이 강해진 것 같다. 학교 성적을 올리면서, 운동도 하고, 취미생활도 하고, 연애도 하고, 알바도 하는 말도 안 되는 스케쥴을 소화해내겠다고 결심하면서 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1분 1초를 아껴서 썼다. 그래서 하루의 모든 스케쥴이 정해져있었다. 하나라도 어긋나면 큰일났다. 그런 생활을 통해서 내가 하고픈 것을 모두 이루면서 이 성향이 고착화된 것 같다. 이렇게 살아야만 성공한다는 착각. 나 스스로를 갉아먹으며 점점 정신적으로 피폐해질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내 자신을 너무 몰아붙였다. 그 결과가 지금의 나다. 불면증과 우울증 환자.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스트레스 받지 말자. 맨날 말만 할게 아니라 진짜로 노력하자. 내가 영화계를 살릴 수 없고, 상업 영화의 공식을 바꿀 수 없다. 내가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세상은 못 바꾸지만 나는 바꿀 수 있다. 바꿔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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