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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naissance Aug 31. 2024

꿈꾸는 삶은 꿈에만 존재할수도 있다

인간은 꿈을 가지고 살아간다. 미래의 무언가를 위해 현재의 욕망을 참는 존재는 인간이 유일하다. 눈 앞의 욕구를 참아내는 것은 그만큼 힘든 일이다. 반려견은 밥을 먹고 난 이후에도 눈 앞에 음식물이 있을때 참지 못한다. 인간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눈 앞에서 미친 향을 풍기고 있어도 여름에 입을 수영복을 위해, 혹은 건강을 지켜 오래 살기 위해 먹지 않을 의지를 가졌다. 미래의 무언가가 그만큼 강력한 힘을 가졌다. 그렇기에 미래의 무언가가 없는 사람은 불행하다. 목적과 목표가 없는 인간은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않을 공산이 크다. '희망이 없다'라는 것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진 표현인지 생각해보라. '절망적이다' 보다 더 부정적인 용어를 찾을 수 있을까. 그만큼 희망은, 꿈은, 목적은 중요하다. 이 희망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보통 희망은 명확하지가 않다. 목표를 명확하게 세우라는 의미의 그 명확이 아니라, Tangible 하지 않다는 뜻이다. 아무리 자세하게 희망사항을 쓰고 그려도 그것은 모호한 상태일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시나리오를 명확하게 쓰고, 콘티를 세세하게 그려도, 스태프와 배우가 모두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경우는 허다하다. 언리얼 엔진을 써서 자신이 생각하는 미래를 온전하게 구현한다고 치자. 그럼 명확하다고 할 수 있을까? 자신의 꿈, 목적을 설정할 때 생각하는 변수는 고작해야 손가락으로 셀 수 있는 만큼밖에 없다. 하고싶은 일, 살고싶은 집, 타고싶은 차, 가족의 형태, 취미생활, 다른 사람들의 대우 등 나의 행복에 중요 변수들을 최대한 밝고 긍정적으로 상상한다. 나에게 생겨날 적, 새로운 고민거리들, 세금문제, 완전히 달라질 애인이나 배우자와의 관계 등 나의 불행에 일조할 변수들은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쿨하게 회사를 그만둔 나에게 퇴사 고민상담을 했던 수많은 친구들은 '안정'때문에 그만두지 못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 '안정'이 의미하는게 도대체 무엇인지 설명을 요구하면 아무도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경제적 부도 마찬가지다. 악착같이 돈을 모은 친구들에게 이유를 물으면 경제적 부를 얻게된 이후의 유토피아에 대해 말한다. 그 유토피아에는 일은 하지 않고 취미생활만 하고 살아가는 로봇만 존재한다. 전 세계를 여행하고 다닐거야, 라고 하지만 전세계를 여행하고 다니면서 무엇을 할 지에 대해 세세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현재의 모든 욕망을 억누르고 악착같이 돈을 모으는 그들이 생각하는 것은 고작 일등석 비행기를 타고 파리에 가서 오성급 호텔에 묵으며 푸아그라를 먹는 일이다. 호텔에서 무엇을 할지, 푸아그라를 먹은 후에 무엇을 할 지에 대한 계획은 없다. 희망은 이토록 모호하다. 


손익분기를 넘긴 블락버스터 영화를 찍은 감독이 7년째 놀고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전전긍긍하고 있다고 한다. 상업영화만 찍으면 끊이지 않고 일을 계속 할 수 있을거라는 나의 막연한 희망이 얼마나 속없는 생각이었는지 깨달았다. 상업영화를 하기 위해 폭주기관차처럼 쉬지 않고 달려오다가 일이 끊겼다. 내가 그렇게 달릴 수 있었던 이유는 '희망이 모호해서'였기 때무인 것을 깨달았다. 상업영화만 하면 경제적으로 안정된 상태에서 작품활동을 계속할 수 있을 거라는 모호한 희망이 나를 달리게 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면 행복할 거라는 생각으로 영화에 뛰어들고, 영화감독이 되었다. 나는 행복한가? 새로운 목표가 생겨났을 뿐이다. 장편영화만 찍으면 영화감독으로 인정받고 계속 일을 할 수 있을거라는 생각으로 모든 것을 포기해가며 장편에 매달렸다. 장편영화를 찍고나니 '독립이라서', '크게 성공하지 못해서' 나는 상업영화를 찍어야 내가 목표한 삶을 살 수 있을거라며 너무나 자연스럽게, 무의식적으로 꿈을 바꿨다. 상업영화를 찍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모호한 꿈은 내가 단기간에 목표한 바를 이루는 데에 크게 일조한 것은 맞으나, 나의 행복도에는 기여한 바가 없다. 정신적으로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내가 원하는 삶을 구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지키고 싶은 가치, 내가 누리고 싶은 일상에 대한 생각을 구체화해야 한다. 


나는 현재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고, 건강하며, 매일 하고 있는 즐거운 취미가 있고, 내가 쓰고 싶은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하지만 현재 계약된 작품이 없기 때문에, 들어올 돈이 없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힘들다고 생각한다. 진행되고 있는 작품이 없기 때문에 경력이 박살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상업영화를 못했기 때문에 내가 가지지 못한 취미가 있나? 상업영화를 해야만 내가 누릴 수 있는 삶이 있나? 상업영화를 한다고 갑자기 내가 대단한 사람이 되고 사람들의 인정을 받게 되나? 지금도 영화감독 명함을 가지고 인정을 다 받고 있는데 왜 그게 부족하다고 느끼지? 드라마틱하게 달라질 건 없다. 내가 드라마를 꿈꾸는 것 뿐이다. 헛된 희망을 걸러내고, 현실적인 희망을 그리자. 난 꽤나 괜찮을 삶을 살고있다. 뭘 해야 더 재밌게 살 수 있는지를 고민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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