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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naissance Sep 26. 2024

새로운, 신선한 영화의 의미

모든 사람들이 새로운 영화를 원한다. 이전에 보지 못했던, 신선한 영화. 관객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제작사와 투자사에서도 그런 영화를 원한다. 문제는 시나리오 단에서 그걸 알아볼 눈을 가진 사람이 있는지, 아니면 감독이 그런 비전을 알아볼 수 있도록 시나리오를 쓰는게 가능한지 이다. 


이전에 보지못했던 새로운 영화 시나리오를 쓰는건 쉽다. 장르의 구조를 비틀고, 전형성을 탈피하면 된다. 새로운 걸 쓰면서 재밌게 만드는게 어려울 뿐이다. 장르 영화가 사랑받는 이유에 대해 말할때 '관객은 익숙한 걸 좋아한다'고 말한다. 로맨틱코미디는 남녀 주인공이 티격태격 하다가 결국 사랑에 빠지고 관계의 위기에 직면하지만 결국 돌파해낸다는 장르의 구조를 절대 벗어나지 않는다. 장르는 관객과의 약속과도 같다. 약속된 구조를 벗어나면 관객은 싫어한다. 약속된 구조 안에서 비틀어야 한다. 약속을 어길거면 어긴 만큼 재미를 줘야한다. 그렇다면 약속을 어겼는데도 재밌는 시나리오를 썼을때, 어떻게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는지의 문제가 남는다. 


기생충은 장르가 두 개다. 가족 범죄 블랙코미디에서 시작해 영화 중간점부터 스릴러로 바뀐다. 시종일관 밝은 분위기를 일관하던 영화가 중간점부터 아예 톤이 바뀐 어두운 예술영화가 되어버린다. 이 시나리오를 신인이 썼다고 가정하자. 과연 제작사를 설득시킬 수 있을까? 이에 대해 봉준호 감독은 아니라고 답했다. 자신이 썼기에 제작이 된 것인지 자신이 아니었다면 팔 수 없는 시나리오라고 못 박았다. 새로운 시도는 성공한 사람만 할 수 있는 것이 된지 오래되었다. 한국 영화의 성공공식이 먹히지 않게 된지 오래되었다. 작년부터 성공공식을 탈피한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제작자들의 반응은 한결같다. '이건 잘 보관하고 있다가 첫번째 영화를 성공시키고 난 후에 해라'. 신인은 신선한거 하지 말라는 거다. 장르의 구조를 비틀어 재밌는 시나리오를 써내도,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모두가 아는데도, '너가 신인이라' 투자가 안 된다고 한다. 이걸 풀어서 설명하면 '이게 영화로 만들면 재밌는 영화가 될 것임을 알지만, 그게 성공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고, 나는 그런 모험을 하고 싶지 않으나, 만약 다른 사람이랑 만들어서 크게 성공하면, 나는 분명히 재밌다고 피드백 했던 것을 기억해라'이다. 


그래서 예술영화를 써봤다. 아예 비장르 영화 시나리오를 쓰면 '상업적인 가능성'이 잣대가 되지 않을테니. 하지만 놀랍게도 시나리오를 돌려봤더니 피드백이 '상업적으로 가치'가 떨어진다는 반응이었다. 예술영화를 썼는데 왜 상업적인 가치를 운운하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영화제용 영화에 대한 투자자 수요는 존재한다. 마치 제조회사에서 R&D로 새로운 유형의 제품을 만들어 보는 것과 비슷하다. 영화제에 가면 좋겠지만, 못 갈 확률도 존재한다. 투자사 입장에서는 이 확률을 높이고 싶어한다. 그래서 예술영화 시나리오에서 시나리오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감독'이다. 단편영화로 해외영화제를 가본 적이 있는 감독, 독립장편으로 해외에서 상을 탄 감독이 유리하다. 나는 그런 경험이 없다. 코로나 때문에 못 간 것이지만 그런 사정은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는다. 


글 자체로 사람을 설득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지는 오래되었다. 읽는 사람마다 재밌다고 하지만 제작으로 이어지지 못한 작품이 있었다. 내기만 하면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에 선정되어 시나리오 만으로 꽤 많은 돈을 벌었다. 결국 문제는 '나'라는 것을 깨달았지만, 그럼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방법은 여전히 찾지 못하고 있다. 열번째 시나리오를 쓰고있다. 아직 아홉번째 시나리오는 보여줄 사람도 많지 않아서 몇몇 제작자에게 돌렸을 뿐인데 한두명을 제외하고는 아직도 피드백이 없다. 아마 그들의 피드백이 오기 전에 열번째 시나리오는 완성될 것이다. 그 후의 얘기는 나도 모르겠다. 2024년이 끝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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