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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류학자 Sep 03. 2023

미국에서 생태 연구하기 (3)

어느샌가 타지의 연구스테이션에 익숙해졌다. 밤이면 촬영물을 컴퓨터에 옮기고, 수첩 기록을 살펴 빼먹은 정보가 있는지 확인했다. 다음 날 실험을 위해 무전기와 카메라를 충전시키고, 실험에 사용할 땅콩과 식빵을 적당하게 나눠 담았다.


주요 일정은 멕시칸제이를 연구하는 것이었지만, 교수님은 남는 시간을 이용해 다른 생물도 살펴보고자 하셨다. 일단 운이 좋게도 다양한 동물 표본이 보관된 방을 구경할 수 있었다. 대형 포유류부터 작은 벌새의 표본까지 매우 다양했다. 시기가 맞지 않아 볼 수 없는 새들을 표본으로나마 볼 수 있었다. 그중 Painted Redstart 새의 표본이 가장 반가웠다. 진행 중인 연구에서 다루는 피식자를 놀라게 해 숨어있는 장소에서 도망치게 하여 잡아먹는 flush-pursue 사냥 전략을 사용하는 대표적인 종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새의 표본

Painted Redstart Identification, All About Birds, Cornell Lab of Ornithology




또, 우리나라에 서식하지 않는 소금쟁이 종들을 보고자 했다. 중간 다리에 부채처럼 펴진 털구조를 가진 Rhagovelia속의 종을 찾는 것이 목표였다. 


Rhagovelia - Wikipedia


다행히 교수님께서 스테이션 주변의 환경에 익숙하셨고, 어디에 물이 흐르는지 알고 계셨다. 하지만 해당 소금쟁이는 그 크기가 상대적으로 작아 찾기 어려울 것이라 예상됐다. 처음에는 계곡의 상류로 올라갔다. 어디서 퓨마나 곰이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곳이었다. 물은 생물에게 필수적이기에 물가 주변에서 야생동물을 마주칠 확률이 높다 :)


원하는 종은 아니지만 소금쟁이는 바로 찾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종과 생김새가 매우 유사했다. 희망을 갖고 상류를 전반적으로 살펴보았지만 원하는 종은 없었다.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 길, 교수님께서는 노트 기록을 잘하고 있는지 물어보셨다. 멕시칸제이 연구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걸로 듣고 잘 기록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질문의 요지는 그게 아니었다. '보이는 모든 것을 기록하고 있는가'가 요지였다. 생태학에서 관찰과 기록은 연구의 기본이자 시작이다. 주변에서 보이는 생물체를 관찰하여 그 안에서 차이나 변화를 찾는다. 그리고 그 차이가 어떠한 결과를 이끌어 내는지, 왜 생기는지에 대한 질문을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변화에 영향을 주는 요소를 파악하고, 얼마나 많이 변하는지, 변화가 생물체의 적응도에 끼치는 영향은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으로 질문을 옮길 수 있다. 하지만 그 당시 나는 보고 느끼는 모든 것을 기록하지 않았다. 알고는 있었지만 중요성을 잊고 있었다. 교수님께서는 예시도 들어주셨는데, 말투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우셨다. 조심스러운 말투는 나를 반성하게 만들었고 기록의 중요성을 깊이 새기게 만들었다.


하류 도착. 야생에서 동식물을 찾고 관찰하는 것은 매우 재밌는 일이다. 하류에서 이곳저곳을 쏘다니면서 원하는 소금쟁이를 찾기 시작했다. 고여있는 물이라면 그나마 찾기 쉬운데, 흐르는 물의 경우 물살과 반사되는 빛의 변화로 찾기 어렵다. 그러던 중 혹시나 싶어 돌을 뒤집어 보았다. 그랬더니 헉! 예상하지 못한 채, 원하는 소금쟁이 종을 찾을 수 있었다. 수표면에만 머무는 일반적인 종과 다르게 물속의 돌에 앉아 있었다. 게다가 그 숫자가 제법 많았다. 핫플레이스를 발견했다며 행복해했다.

 



교수님께서는 젊은 시절 이곳에서 장기간 새를 연구했다고 하셨다. 스테이션 본관에는 앨범이 많았고 이곳에 머문 많은 과학자들의 사진을 볼 수 있었다. 대략 20~30년 전의 과학자들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쉬는 시간 교수님과 본관 건물에 들어갔다. 교수님께서 앨범을 펼치시고 과거 자신을 보여주셨다. 지금 교수님의 덩치의 절 반 정도에 매우 매우 젊은 사람이 있었다. 나는 마른 체형인데, 다른 교수님께서 나의 지도교수님이 과거 너처럼 말랐었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실제 그 증거와 마주하니 당황스러웠다. 교수님은 다른 과학자들에 대해 소개해 주셨다. 다들 정말 신난 표정으로 좋아하는 연구를 하고 있었다. 이름도 나이도 모르지만 사진은 많은 것을 말해주었다. 묘한 감정으로 본관을 나오는데 Nature 잡지가 보였다. Nature는 Science와 양대산맥을 이루는 과학학술지로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는 중요한 연구들이 실린다. 해당 학술지에 논문 게재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으며, 성공한다면 논문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 러! 한! 잡지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사진을 하나 남겼다.


기념으로 찍어둔 Nature 학술지 실물




- 간단한 썰 -


스테이션 관리인이 방문했다. 준비 후 딱 나가려던 참이었기에, 대화가 길어지지 않길 바랐다. 신난 관리인은 얼마 전에 한국 다큐멘터리를 봤다고 했다. 주제는 "눈치"로 매우 인상 깊었다고 했다. 이어서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미국인들은 화나면 차로 들이받는다며 눈치를 보지 않는다고 했다 ㅋㅋ. 우리의 리액션에 영혼이 점점 빠지자, 헉! 이게 바로 눈치가 없는 행동이군!라는 명언을 남겼다.


거실에서 저녁을 준비하는데, 교수님이 갑자기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셨다. 생일이라고 말씀드리면 챙겨달라는 것처럼 보일까 봐 그냥 지나갔는데, 연구실 선배가 교수님께 메일을 쓰면서 이 사실을 알린 것이었다. 교수님께서 생일 축하 노래를 들어본 대학원생 과연 얼마나 될까? ㅎㅎ 덕분에 다음날 좋은 음식에 커피와 술까지 먹을 수 있었다. 



뇸뇸


어는 날 스테이션 주변에 트럭이 몰려들었다. 모임을 하는 듯 보였다. 개와 함께 온 사람도 정말 많았다. 관리인이 알려주길 다 같이 술을 마시고 약을 할 수도 있기에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멕시칸제이를 연구하는 곳 중 한 장소는 특히나 그들이 머무는 곳과 가까웠고, 교수님은 나를 보내셨다. 총이라도 들고 협박하면 카메라고 뭐고 다 줘야지 하는 심정이었다. 한 번은 멀리서부터 개가 짖으며 접근해 삼각대를 빼들어 반격을 준비했다. 다행히 주인이 개를 잡아서 옮겼다. 

  다음 날, 오늘도 개 짖는 소리가 숲에 울렸다. 정말 태어나서 본 가장 큰 개가 산입구에 있었다. 조심스러운 나와 다르게 교수님은 성큼성큼 개에게 접근했다. 개는 강하게 짖었다. 교수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빠른 손놀림으로 개의 목과 배를 공략했다. 숙련된 견주의 손놀림에 개는 결국 배를 까뒤집고 얌전해졌다.


스컹크똥을 만진 적이 있는가? 실험을 정리하면서 땅콩을 넣어둔 통을 챙기는데, 뭔가 질퍽거렸다. 교수님은 보자마자 스컹크 똥이라며 나와 거리를 두셨다. 교수님께서는 자연에 있는 모든 것들에 거부감이 없으시고 상대적으로 위생에 덜 예민하시다. 예로 내가 새를 만지고 손을 씻으면 또 만질 텐데 왜지...라는 반응을 보이신다. 하지만 스컹크똥은 강력했다. 교수님께서는 주섬주섬 휴지를 꺼내어 똥손가락을 감싸라고 하셨다. 그리고 숙소에 들어오자마자 화장실에서 손을 씻을 것을 권유하셨다. 물론 똥에는 다양한 균이 있기에 감염위험이 상대적으로 크다.  


아보카도를 좋아하지 않는데 배가 고플 때 먹으니 매우 맛있었고, 한국에서도 종종 먹기 시작했다. 김치볶음밥은 외국에서 먹을 때 가장 맛있다... 그리고 시리얼은 완벽한 인간 사료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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