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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류학자 Sep 10. 2023

대학원이 고민된다면

대학원생은 과학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며, 다양한 경험을 가진 교수님의 지도 아래에서 연구를 수행한다. 입학 이후 계속 대학원생의 자세와 태도에 대해 고민을 해왔는데, 오늘은 이제까지의 나의 생각을 기록하고자 한다.


대학원 입학이 고민된다면, 스스로에게 2가지를 물어보면 좋을 것 같다. 첫째는 내가 정말 이 분야를 좋아하는지. 둘째는 성실하게 대학원 생활을 할 수 있는지.


나는 새를 좋아한다. 새의 생태와 진화에 대해 아는 것은 큰 즐거움이었다. 그렇기에 대학원에 진학했다. 하지만 대학원은 쉬운 곳이 아니었다. 일단 난 영어를 그렇게 잘하지 못했다. 지도교수님이 외국 분이시기에 영어는 필수적이었는데, 대화가 순탄하지 못해 의견을 전달하고 교수님의 의견을 듣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언어의 장벽을 극복하기 위해, 꼭 전달해야 하는 중요한 내용을 상상 속의 교수님께 말하는 연습을 했다. 버벅거린다면 번역기와 영어사전의 도움을 받았다. 미팅 과정에서도 교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기 위해 집중하여 내용을 받아 적었다. 이해가 어려운 부분은 다시 여쭤보았는데, 착한 교수님께서는 좀 더 쉬운 단어로 풀어 설명해 주셨다 :) 꾸준히 영어 실력을 늘리고자 노력했더니, 이제는 설명하는 것을 제법 재밌어 하고 있다.


연구 과정에서 나아가는 길에 벽이 잔뜩 놓인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었다. 일단, 연구 주제를 고르는 것부터 장기전이었다. 실현 가능한 부분과 그렇지 못한 부분을 선행 연구를 참고하여 미리 파악하면서 선택폭을 좁혀야 했다. 배경지식을 바탕으로 교수님과 합의를 하는데, 지속적인 대화가 필요했고 생각보다 자주 방향성이 바뀌었다. 그러다 보니 나는 누구이고 여긴 어디인지 질문을 던지게 됐다. 그럴 때면, 새를 좋아해서 대학원에 왔고, 재밌어하는 일을 잘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는 되새김으로 나를 재정비했다.


현상이나 연구방법 한 번에 이해하지 못하는 게 일상이었다. 선배들 중에는 이해력도 빠르고 해결 능력도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을 보며 천재가 아닌 나는 성실함을 내세우기로 했다. 성실함은 나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이다. 매일매일 예외 없이 일을 하는 것. 어린 시절 앵무새와 가금류를 키우며, 그리고 야생 조류를 관찰하며 성실함이 큰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애완동물을 키울 때 매일 먹이와 물을 주고 컨디션을 살폈다. 그랬더니 흔한 병 하나 걸리지 않았다. 야생 조류를 관찰할 때도 매일매일 새를 보러 나갔더니 귀한 새들도 보고, 도감에도 기록돼있지 않은 다양한 행동들도 직접 볼 수 있었다. 이렇게 경험치는 성실하게 새를 보는 방법만으로 쌓을 수 있었다.


대학원생은 연구노트를 작성한다. 매일매일 연구 내용을 정확하게 기록하는 것이다. 실험을 하다 보면 과거에 사용한 재료나 방법의 "숫자"가 필요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사용한 시약의 용량, 세팅한 실험 장치의 설정값을 자세히 기록할 필요가 있다. 귀찮음에 혹은 기억할 수 있다는 바보 같은 자신감에 그냥 넘어간다면, 10분을 투자해 기록하면 끝났을 것을 며칠을 걸려 재실험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실패하고 삽질한 내용이 특히나 중요한데, 같은 실수를 방지하는 효과를 준다. 또한, 기록을 하다 보면 내일은 무엇을 할지, 이번에는 실패했으니 어떠한 방향으로 실험을 해야 할지 등의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연구노트는 필수적으로 요구되지만 기록하지 않는 대학원생들이 생각보다 많고, 기록하는 자와 그러지 않은 자의 차이는 시간이 갈수록 극명해진다.


대학원에 와서 대학생 때 보다 공부를 더 많이 하고 있다. 원서도 읽지만 논문을 정말 많이 읽는데, 문제는 논문이 끝도 없이 나온다는 것이다. 시간은 한정적이기에 그중에서 나에게 필요한 논문을 골라내고 그 안에서도 중요한 내용을 파악해야 했다. 처음에는 무척이나 어려운 과정이었다. 하지만 꾸준히 읽고 읽다 보니 지금은 예전보다 수월하게 공부를 하고 있다.


대학원 생활에 똑똑함보다는 성실함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시간이 지난 지금, 나는 천재라고 생각했던 선배들과 가까워졌다. 다른 연구실 사람들과도 이 주제에 대해 종종 얘기를 나누는데, 다들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연구 결과는 성실하게 해도 얻는 과정이 순탄하지 않고 지칠 만큼 길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분야고 내가 재밌어하는 일이라는 것을 상기한다. 장기전에서 연구 분야에 대한 자신이 흥미는 생각 이상으로 중요하다. 대학원이 진학이 고민된다면 스스로에게 이 2가지를 물어보면 좋을 것 같다.


마무리는 귀여운 동박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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