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받아줄 학술지 어디어디 없나 에디터도 리뷰어도 너무나도 겁나
팔색조가 번식기에 구성하는 행동권 (home range)의 크기가 주요 식단인 '지렁이'의 풍부도와 관련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평가하기 위해 아래 5가지 숫자가 필요했다. 1번과 2번은 팔색조 보전 연구 (3) (brunch.co.kr)에서 다뤘기에 오늘은 3-5번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1. 새끼가 소비하는 지렁이의 수
2. 부모가 번식 기간 동안에 소비하는 지렁이의 수
3. 번식지의 지렁이 밀도
4. 1-3을 고려해 계산한 예측되는 행동권 크기
5. 실제 팔색조의 번식기 행동권 크기
번식지의 지렁이 밀도는 선행논문이 있어 인용할 수 있었다. 만약 선행논문이 없었다면 필드에 나가서 직접 지렁이 숫자를 세야 하는 매우 흥미로운 상황이 연출됐을 수 있다. 고등학생 때 배운 방형구법을 상기하며 삽질하는 나를 상상해 보았다. 부르지 않아도 버선발로 마중 나오는 모기들에게 충분한 에너지원이 됐을 것이다. 선행논문에서 구한 밀도의 최솟값과 최댓값을 계산에 적용했다.
행동권 크기 예측은 1-3번 숫자를 활용해서 구할 수 있었다. 부모가 얼마나 지렁이를 먹고, 부모가 얼마나 지렁이를 찾을 수 있는지 모르기에, 여러 상황을 고려하여 행동권 크기를 구했다. 처음에는 결과를 표로 만들어 보여주고자 했는데, 눈에 확 들어오지 않고 차이를 잘 보여주지 못했다. 옆에 있던 연구실 선배가 MATLAB을 이용해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 주었고 그림을 만들어 그 차이를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었다. 자세한 값을 보여주는 데는 표가 적절하지만, 그룹 간의 차이를 보여주는 경우에는 그림이 더 유용한 것 같다.
팔색조의 실제 행동권 크기를 연구한 선행논문은 없었다. 제일 좋은 방법은 팔색조에게 GPS기록 장치를 부착하는 것이다. 하지만 멸종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인 팔색조는 대학원생 보다 소중한 존재이기에, 허가받기가 여간 쉽지 않다. 그렇기에 간접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자료를 찾았다.
일본의 한 과학자의 오래전 기록을 살펴보니, 팔색조는 둥지에서 반경 100-400m 정도에서 주로 활동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둘째로, 중국에서 진행된 팔색조의 밀도 조사 결과를 활용했다. 마지막으로, 팔색조와 크기가 유사한 새들의 행동권 크기를 살펴보았다. 최종적으로, 3가지 자료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범위를 활용했다.
예측한 행동권과 관찰된 행동권 크기를 비교했고, 어떠한 가정을 적용한 계산 결과가 가장 잘 들어맞는지 확인했다. 물론 다양한 가정을 고려한 것이기에 논문에 이를 명확하게 명시했다. 비교결과, 부모가 지렁이를 많을 먹는 경우에 잘 들어맞았기에, 부모 팔색조 역시 지렁이를 어느 정도 먹을 것이라 결론지었다. 이어서, 지렁이를 주로 먹는 팔색조 보전을 위해 번식지에서 진행할 수 있는 전략을 제안했다.
교수님과 논문 수정을 몇 달 했고, 처음에는 보전과 관련하여 제법 높은 학술지인 Biological conservation에 제출했다. 하지만 특정 종에 관련된 내용이라며 편집위원 수준에서 잘렸다. 오케이! 조류의 보전 연구를 다루는 캐나다 학술지인 Avian conservation & ecology에 제출했고 심사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심사결과 "거절" 통보를 받았다. 심사위원 2명의 코멘트를 볼 수 있었는데 엄청나게 많은 비판을 볼 수 있었다. 내용을 제대로 읽지 않고 준 코멘트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인정할만한 내용이었다. 편집위원은 고칠 내용이 너무 많고, 생각보다 논문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큰 의미를 가지지 않아 거절했다.
빠르게 논문을 끝내려고 했던 꿈은 무너졌고, 다른 실험으로 바쁜 와중에 간간이 논문을 고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연도가 바뀌었다... 논문을 눈에 띄게 고쳤기에 자신감을 갖고 생물학의 모든 분야를 다루는 Communications biology라는 학술지에 제출함과 동시에 거절당했다. 편집위원은 자매지인 Scientific reports에서 심사받을 것을 제안했다. 새로운 학술지에 제출할 때마다 포맷과 그림 스타일을 바꾸는 등 귀찮은 일이 많기에 승낙했다. 그런데, 3주가 지나고... 1달이 지나고... 2달이 지나도 논문의 평가 상태가 변하지 않았다. 알고 보니 그 누구도 편집위원을 수락하지 않아 심사는커녕 여전히 학술지 staff가 편집위원을 찾는 중이었다. 규모가 큰 학술지이다 보니 편집위원이 엄청 많은데, 다들 거절한 모양이었다. 게다가 staff도 바빠서 우리에게 큰 신경을 써주지 못했다. 학술지의 편집위원 리스트를 살펴보고 staff에게 가능성 있는 사람들의 이름을 알려줬는데,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았다. 3달째, 제출을 철회하기로 결정했다.
다음 학술지를 골라야 했다. 이미 충분히 늦어졌기에 지쳐버린 나는 심사 퀄리티도 좋고 확실한 심사를 진행하는 곳을 찾고자 했다. 논문이 출간되면 학술지에 돈을 지불하는데, 어차피 교수님께서 내주실 거라 돈을 더 내더라도 확실한 곳을 고르고자 했다 :) 그러던 중 교수님께서는 PeerJ라는 학술지를 알려주셨다. Scientific reports보다 영향력 지수는 낮지만, 가격은 더 싸고 논문이 출간되기까지의 평균 기간이 더 짧았다. 포맷을 PeerJ에 맞추어 고치고 제출했다. 두 눈을 감고 두 귀를 감싸며 바랬더니 다행히 심사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