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 당일, 일찍이 일어났다. 흐어엉 거리면서 씻고 곧바로 학회장으로 향했다. 챙겨 온 셔츠가 더울까 봐 걱정했는데 태풍의 영향으로 충분히 시원했다. 발표 순서는 2번째였고 첫 순서는 한 교수님이셨다. 학회라고 해도 사람들이 모두 성실히 오는 건 아니기에, 첫 순서가 아니라 다행이었다. 만약 첫 순서였다면, 진행하는 교수님과 1대 1로 담소를 나눌 정도로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사람이 많으면 긴장되지만, 없으면 준비한 보람이 없다. 긴장하더라도 청중이 많은 편이 끝난 후 기분이 좋을 것이다.
뭐든 일찍이 시작해야 마음이 놓인다. 대학생 시절, 과제를 받으면 A+를 받겠다 보다는 빨리 내버려서 리스트에서 지우는 쪽을 택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미 초등학생 시절부터 가지고 있던 습관이다. 숙제가 생기면 당일에 해고 편하게 앵무새들과 노는 쪽을 택했다. 이번 발표 준비도 상당히 미리 시작했다. 게다가 말에는 좀 약하기에 시간을 더 썼다.
대본을 준비한 발표에서 망친 경험이 있다. 아직도 이불킥을 할 정도로 부끄러운 기억이다. 학회에서는 꼭 대본 없이 발표를 하겠다는 의지를 태웠다. 발표 연습을 하루에 여러 번 하는 것보다는, 뇌의 환기도 줄 겸 매일 10분 정도만 투자하는 쪽을 택했다. 사람마다 선호하고 결과물이 좋은 방향은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 간격을 두고 연습을 하는 것이 목적의식 없이 흘러가는 것을 방지해 주었다.
발표를 진행하는 강의실, 충분한 준비에도 긴장은 하나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다만, 내용을 충분히 숙지하고 이해한 터라 자신감은 가득했다. "짝짝짝" 첫 발표가 끝났다. 진행하시는 교수님의 부름에 앞으로 나가 강의실의 사람들을 마주했다. 웬걸 강의실이 가득 찰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앞 쪽에 앉은 터라 사람들이 들어오는 것을 몰랐다. 빡빡한 스케줄에 놀랄 겨를도 없이 발표를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새를 연구하는..."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리면 잠깐 숨을 고르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역시나 발표 시작 전이 제일 두렵고, 준비한 발표 자료를 차근차근 설명할수록 긴장감은 사라지고 좀 더 잘 설명해 보고자 관중의 반응을 살폈다.
"... 감사합니다 :)"
발표가 끝나고 질문 시간. 많은 분들이 질문을 해주셨다. 나름 공룡에 대한 이야기고 직관적인 설명을 담고 있기에, 관심을 받을 수 있었다. 특히나 예리한 질문을 해주시는 박사님과 교수님들 덕분에 대답하기에 바빴지만, 기깔난 보람을 느꼈다. 쉬는 시간, 몇몇 분들이 내게 와 질문을 해주셨다. 발표를 관심 있게 봐주신 점도 감사했고, 이런 과학 이야기를 소통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즐거웠다. 방송프로그램 중 가장 재밌게 보는 것이 알쓸 시리즈이다. 재밌게 이야기를 해주시는 것도 있지만, 너무나 신나서 하고 싶어서 썰을 푸는 박사님들의 표정과 말투가 보는 나를 즐겁게 만든다. 짧은 질의응답과 수다였지만, 알쓸 시리즈의 박사님들이 이런 기분으로 이야기하는구나~ 알 것만 같았다.
우리 연구실은 행동생태와 진화생물학을 다룬다. 나 역시 행동생태를 연구하면서 진화에 대한 관점을 제시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사실 진화를 소홀히 생각했다. 어려운 경제 상황 속 진화생물학에 대한 관심과 투자는 줄어들 것이라 여겼다. 기초과학을 공부하는 것은 지식의 확장에 기여하지만, 현재 인류가 다양한 문제들과 마주한 만큼, 그리고 세금을 투자하는 연구인 만큼, 기초 진화생물학은 우리 사회에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연구와는 조금 거리가 있다고 보았다. 물론 아예 연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응용 쪽이 보다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예를 들어 우리는 심각한 기후 문제와 조우하고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은 각자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이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는 야생조류를 보존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야생조류를 위해서가 아닌, 인간을 위해서이다. '다양성'은 생태계 유지에 매우 중요하다. 멸종은 자연스러운 거지만, 급작스러운 환경 변화에 대멸종으로 이어진다면 생태계는 무너지고 최상위 포식자인 인류는 큰 타격을 받을 것이다. 그렇기에 종 다양성을 유지하면서 기후 분야 전문가들과 정치인들이 기후를 정상 범위로 돌리 때까지 버텨야겠다고 생각했다.
진화는 (적어도 나에게) 매우 흥미로운 학문이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생물들이 다양하게 존재하며, 각기 다른 전략으로 살아가는 것일까. 진화생물학 역시 '다양성'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다양성 유지를 위해 진행되는 응용보존 연구에 기초지식을 제공할 수 있다.
진화학회에서 발표한 연구는 조류의 조상인 공룡에서 원시날개의 쓰임에 대한 이야기로, 초기 비행깃털 진화를 설명하고자 한다. 지금 이 연구주제의 과거 이야기를 올리고 있는데 시점은 2019년도이다 ^-^. 2023년 8월 학회 당시에는 결과가 다 나온 상태였다. 추후에 학회 이야기를 할 수 있었지만, 기억이 생생할 때 옮기기로 했다. 과연 언제쯤 2019년도와 2023년도 사이의 일을 다 기록할 수 있을지 ㅋㅋ
학회는 다양하다. 나는 기본적으로 새를 연구하는 조류학자이다. 우리나라에는 생각보다 조류쟁이들이 많다. 그렇다, 조류학회가 있다. 다음은 조류학회에 참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