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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나무 Oct 26. 2023

산꼭대기 위의 집 7화

그 밖의 농작물들

 고추 말고도 기른 작물은 상당히 많았지만 하나씩 다 쓰면 이야기가 안 끝날 것만 같아 싹 모아 ‘그 밖의 것들’로 뭉뚱그려 보려고 한다. 잔디밭 주변으로는 옥수수, 고구마, 토마토, 가지, 호박, 조롱박, 깨, 콩, 상추, 배추, 무, 열무, 대파, 돌나물을, 마당에는 봉숭아와 채송화까지 심었다. 옥수수 씨를 뿌리고 새가 쪼아 먹을까 봐 심은 곳곳마다 종이를 한 장씩 올려두느라 온몸이 땀에 흠뻑 젖은 적도 있다. 고구마 순을 쌓아놓고 할머니 할아버지와 다리가 저리도록 껍질을 벗기곤 했다. 할머니께서 담그신 고구마순 김치가 너무 맛있어서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우기도 했다. 옥수수와 토마토는 벌레나 새가 쪼아 먹은 것이 많아 성한 모양이 많지 않았다. 할머니는 교회 목사님께 예쁜 것을 골라 드렸고, 우리 가족은 새나 벌레에 파 먹히거나 찌그러진 모양을 먹었다. 옥수수 껍질을 까면서는 가끔 벌레가 손에 닿아 으악 소리를 지르곤 했다. 반짝반짝 윤이 나면서도 폭신한 가지는 빛깔이 고왔다. 호박은 된장찌개를 끓여 먹기도, 크게 키워서 호박죽을 해 먹기도 했다. 볶은 호박씨를 봉지에 담아 책을 읽으며 하나씩 꺼내 먹는 게 별미였다. 조롱박은 반으로 가르고 푹 삶아 속은 긁어 나물로 먹고, 껍질 손잡이 부분에 구멍을 뚫고 끈을 달아 물 뜨는 바가지로 썼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귀여운 조롱박 바가지를 벽에 나란히 몇 개 걸어두기도 했다. 가끔 뜯어먹는 깻잎도, 상추도, 나중에 털어먹는 깨도 콩깍지를 까서 밥에 넣어 먹던 콩도 참 맛있었다. 우리 집에서 난 배추, 무, 열무로 김장하는 모습을 보았고, 대파에 동글동글한 꽃이 피는 모습을 신기하게 보기도 했으며, 갓 뜯은 돌나물의 싱싱함을 맛보기도 했다.


  이렇게 많은 농작물을 접하다니 꼭 내가 시골 소녀 같겠지만 우리 집은 공업도시 안산의 한 배수지 관사였다. 근처 사는 아이들이 쉽게 접하기 어려운 텃밭 농사의 전 과정을 다채롭게 볼 수 있었다. 그때는 심부름하느라 힘들었는데 지금은 언제든 마음만 먹는다면 작은 텃밭 가꾸기는 부담 갖지 않고 재미있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린 시절 잔심부름만 했기에 갖게 된 어설픈 자신감일 수도 있겠지만, 집에서 분갈이쯤은 뚝딱뚝딱 혼자 하고는 뿌듯해한다. 올봄, 우울증이라는 마음의 병이 찾아온 시기에 연년생 우리 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여러 가지 식물을 가져왔다. 지금 우리 집은 식물을 기르기에는 화분 둘 곳도 없이 짐이 꽉꽉 들어차 다소 삭막하고 열악하다. 오전에만 해가 제대로 드는 남동향 21평 아파트 실내에서 봉숭아, 해바라기를 꽃피우고 강낭콩과 상추도 키웠다. 교회에서 행사하고 남은 콩나물 콩을 잔뜩 얻어와 페트병을 12개나 자르고도 모자라 채반까지 동원해 일주일간 키웠다. 직접 키운 콩나물을 양가에 잔뜩 나누어드리고 집에서 콩불을 해 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아이들이 새싹보리 씨앗을 가져와 집에서 키워서 무쳐 먹기도 했다. 식물이 하루하루 자라고 변화하는 모습이 참으로 신기하고 대견하여 울고 웃기도 했다. 식물의 존재가 내게 힘이 되는 것을 느끼며 어릴 때의 지겨움이 감사로 바뀌었다. 집에서 키우는 식물이 준 감동과 에너지를 다른 사람에게도 전해주고 싶어 쓴 짧은 글이 세 편이다. 그중 한 편을 소개해본다.

  


꽃 피우다

 

유년 시절을 잘 돌보아주지 못해

굽어 자라던 해바라기

툭 걸치고 의지할 만한 곳을 찾지 못해

잔뜩 웃자라던 해바라기가

아니, 해바라기인지도 알 수 없었던 그 아이가

고개를 빳빳이 들고 줄기를 세우기 시작했다.


가운데 무언가 봉오리가 보이는 것 같더니

궁금함으로 며칠 애태우게 하더니

잘 지내고 있는지 똑똑똑 방문한 내게

더 깜짝 놀랄 만한 선물을 내민다.


“어머!”

노란빛을 보자마자 소리를 지르며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사다리에 오른다.

너구나. 너였구나.


꽃이 아니었어도 충분히 귀엽고 소중했을 텐데

노란 꽃을 보고는 입꼬리가 쭉 올라가서

팔불출처럼 여기저기 자랑하고 싶어지는 것이

꼭 극성 부모가 된 것 같다.


“우리 해바라기가 드디어 꽃 피웠어요!”

“굽어서 기더니 쫙 펴져서 이리 잘 자란 것 좀 봐요!”

“스스로 이리 예쁜 꽃을 피우다니 너무 대견해요!”

“창을 향해 꼿꼿이 서 있는 모습에서 해바라기의 의지가 보이지 않나요?”

“우리 해바라기 너무 대단한 것 같아요!”


동네방네 큰 소리로 자랑하고 싶은 마음

내 새끼가 말만 트여도 천재 같은 그 마음

무조건적인 사랑과 응원


어디선가 바닥을 헤매고 있을 당신에게도

꼿꼿이 일어서 해를 보고

꽃 피울 그날이 올 것을

믿고 응원하며 기다린다.

이 사랑의 마음을 그대에게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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