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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은 더 적극적인 마음이다

by 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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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부터였다. ‘거짓말’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마음의 지층이 흔들리듯, 깊은 곳에서 고통과 수치가 밀려 올라왔다. 앞을 향해 걷다가도 다시 땅 아래로 끌려 내려가는 듯한 감각이었다. 그런데 마태복음 4장과 5장을 읽다가 그 어둠 위에 전혀 다른 빛이 비쳤다. 사단의 말은 늘 이렇게 시작된다.


“만일 네가…”

“만일 이것을 하면…”


확신을 주는 말이 아니다. 존재를 흔들리게 하고, 의심을 심어 정체성을 조건 속에 가두어 버리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의지와 정체성을 헝클어뜨려 결국 하나님과 멀어지게 만드는 기만이기도 하다. 반대로 마태복음 5장 38~48절에서 주님은 전혀 다른 방향을 보여주신다. 조건을 따지지 않는 사랑, 억지로 빼앗기지 않는 마음의 능동성, 그리고 누가 어떻게 하든 나는 사랑을 선택할 수 있다는 자유 말이다.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십 리를 같이 가라.”

“원수를 사랑하라.”


최근 들은 박영선 목사님의 설교에서 마음을 깊이 울린 문장을 떠올렸다.

“더 적극적인 것, 그것이 정직이다.”


정직은 그저 거짓을 피하는 소극적 상태가 아니다. 사랑을 붙드는 일이고 하나님이 나를 향해 베푸신 사랑을 삶으로 드러내려는 의지이며 거절과 오해 속에서도 “나는 사랑받은 자다”라는 사실을 놓지 않는 태도다. 내가 사랑받을 만해서 받은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나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 사랑 안에서 비로소 정직해질 수 있다는 고백. 말씀 앞에 서며 다시 이렇게 기도드렸다.


주님, 흔들리게 하는 말보다 더 적극적인 사랑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보게 해 주세요.

제가 받은 사랑을 삶으로 드러내는 정직함을 허락해 주세요.

두려움을 넘어 능동적으로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주세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기도를 마치자 갑자기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진정하려 해도 계속 쏟아져 결국 소리 내어 울게 되었다.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었다.


“할 만큼 했어. 이제 그만해도 돼.”


상대의 반응에 지치고, 애써 다정하려 했던 마음이 흔들릴 때면 자연스레 그런 결론을 붙잡곤 했다.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선을 긋는 법’, ‘지키기 위한 거리두기’를 따라야 한다고도 여겼다. 나 역시 그렇게 해야만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말씀 앞에서 마음은 그보다 더 적극적인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오리를 요구받으면 십 리를 가고, 오른편을 요구받으면 왼편까지 내어주는 순종 말이다. 억지나 강요가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자유 안에서 스스로 선택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다 그동안 쌓여 있던 속상함과 아픔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비로소 주님 앞에서 울며 고백했다.


“힘들었어요. 아팠어요.”

그때 마음 깊은 곳에서 속삭임처럼 들려오는 음성이 있었다.


“네가 참았던, 그리고 행했던 모든 순간에 내가 함께 있었다.”


또다시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쩌면 그 눈물은 멈출 필요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흔들리던 마음의 자리마다 하나님이 이미 함께 계셨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눈물이었으니까. 오늘 나는 조금 더 자유로워졌다. 조건이 아니라 사랑으로, 두려움이 아니라 능동성으로. 정직이라는 이름의 사랑을 향해 다시 한 걸음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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