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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꽃 Feb 08. 2024

네, ‘아미’이고 ‘문구 덕후’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윤리학에서 ‘덕(arete-)’은 인간을 행복(eudaimonia)으로 인도하는 어떤 탁월한 자질들을 의미한다. 전자가 ‘옳은’ 삶을 향한 자기 극복의 노력이라면, 후자는 ‘좋은’ 삶을 향한 자기실현의 노력이다. ‘덕질’, 즉 한 사람이 어떤 것에 최선을 다해 몰두하고 헌신하는 일은 범상한 일이 아니다. 흔히 ‘덕통사고’라는 말을 쓰는 것은 (…) 우연한 계기로 어떤 대상에 ‘불현듯’ (…) ‘한 대상에게 불현듯 마음을 뺏기게 되는 드문 사건이 한 사람을 불가역적으로 바꿔놓는다.’ 우리로 하여금 어떤 탁월함을 갖게 하는 변화일 수 있다. (…) 나 자신을 사랑하는 능력, 덕질은 우리에게 그런 덕을 가질 수 있게 도와준다._신형철의 「인생의 역사」 오타쿠의 덕 중에서

어쩌면 나는 ‘덕’의 자질을 충만하게 가진 사람(?)이 아닌가 싶다. 음악(특히 뮤지션), 문구류에 만큼은 20년이 넘도록 덕질 인생을 걸어왔으니 말이다.


음악


중학생이 되고 아빠가 일본 출장에서 사 온 워크맨으로 다양한 음악 장르를 즐겼고 그러면서 수많은 가수와 밴드를 좋아하게 됐다. 문제집 살 돈으로 잡지를 샀고, 휴대폰도 없어 얼굴 한 장 찍기도 어려웠던 시절이었음에도 ‘그 얼굴 한 번’ 보겠다고 기획사 앞에서 밤새 기다린 경험도 있다. 용돈도 고이고이 모아뒀다, 좋아하는 가수의 음반을 사고자 일찍부터 매장에 가 있던 나였다. 부모에 대한 반항에서 출발할 법도 하지만, 반항할만한 가정환경도 아니었고, ‘그래, 공부!’ 학업도 내신으로는 전교 상위권이었기 때문에 부모님도 이에 대해서는 관대하셨다. 한마디로 <그냥 좋았다.> 노래를 듣고, 라디오에 보낸 편지가 사연으로 소개되고, 가수의 사진첩을 보고 있노라면 행복이란 단어가 절로 나왔다. 어쩌면 쓰고 정리하고 노트를 만들기 시작한 것의 시작은 그때부터가 아니었나 싶다.


10대를 그리 보내고 20대에는 본격적으로 재즈와 록에 집중했었다. 재즈 바와 홍대 록 클럽 공간을 제집들 듯 드나들고는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열성이었던 것이 출근할 때마다 클럽에서 입을 청바지와 운동화를 꼭 챙겼다는 거다. 그러다 ‘넬(NELL)’을 만나 ‘덕통사고’를 제대로 겪었고, 청춘시절을 그들과 연애했다 얘기해도 될 정도였다. 그들이 듣는 음악이면 나도 찾아들었고, 인디 음악과 유럽 밴드 음악에 대한 학습을 고3 수험생 때보다 더 열심히 파고들었었다. 그런 이유로 방송작가로 일할 때 좋은 밑거름이 됐다.


마흔이 넘었고 두 아이의 엄마인 지금도 덕질 인생을 걷는 중인데, ‘방탄소년단’이란 이름의 한 글자만 들어도 두근거리고 설렌다. 그래서 ‘비꽃’ 외에 ‘BTS아미어미’라는 필명도 가지고 있다. 나이 들어 파릇파릇한 방탄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들의 노랫말이 다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의 음악은 때로는 수면제이자 비타민이고 영양제다. 어쩜 이들은 10대, 20대에 이런 가사를 써낸 것인지 경이롭게 들을 때가 많다. 엄마인 내가 이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두 아이도 아미(army)가 되었다. 큰아이는 지민과 정국을, 막내는 진과 RM을 응원한다. 방탄 일곱 명 멤버가 다 모이는 내년 그리고 콘서트 계획에 맞춰 한국에 가자는 희망도 갖고 있다.


문구류


어쩌다 문구류에 마음을 뺏기게 됐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노트 필기가 재밌었고 문구점에 가는 일이 친구랑 분식집 가는 것보다 좋았던 여학생이었다. 그 마음은 지금도 그렇다. 먼저 펜에 만큼은 실용적인 것을 좋아한다. 필기감이 좋은 펜에 대한 신상 소식이나 후기를 접하면 일단 장바구니에 담고 본다. 다이어리도 마찬가지. 특히 다이어리 속지는 도트와 줄지로 된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최근 방탄소년단과 필기감이 만난 볼펜이 있어, 가격 때문에 고민하긴 했지만 결국 두 개를 구매했다. 한국 친정집으로 배송완료 되었고, 우간다에서 받기까지는 꽤 걸리겠지만 그래도 임(?)을 보며 필기할 생각을 하니 뭐랄까, 그런 기다림쯤은 할 만한 것 같다.

사진 출처_베스트펜


끝으로 신형철 님의 “나 자신을 사랑하는 능력, 덕질은 우리에게 그런 덕을 가질 수 있게 도와준다.”를 한 번 더 상기해 본다. 이 한 줄이 너무도 꼭 맞고 적절해서 감사 인사를 하고플 정도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 때문에 행복한지를 알게 된 것에 감사하고 또 그런 과정에 덕질 대상이 있다는 것도 감사하다. 읽고 필사하는 것 그리고 기록하는 그 순간이 좋다. 여기에 좋아하는 아티스트들의 음악이면 더욱이.


한 줄 희망사항 : 덕질을 시작으로 탁월함을 갖게 하는 변화를 같이 누려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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