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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즈 Apr 15. 2024

유학생을 국제 기숙사에서 쫓아내는 일본 대학

일본에서 자취방을 구하는 과정 (1)

 대학 합격 통지서를 받은 2019년 1월, 나는 신주쿠구에 있는 작은 원룸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여섯 세대뿐인 3층짜리 벽돌로 된 낡은 빌라에 보안 장치라곤 현관문이 전부였다. 3평이 조금 넘는 방에서 꽁꽁 언 손에 털장갑을 끼고 공부하며 2년의 수험생활을 보냈다(살아본 사람을 알겠지만 일본 집은 정말 춥다...). 가끔 침대에 누워 정면으로 바로 보이는 현관문이 신경 쓰이기도 했다. 평생을 아파트에서 살아왔으니 저 문 밖이 바로 '밖'이라는 사실이 무섭게 느껴졌다. 연간 행사처럼 바퀴벌레가 나왔고 베란다에 빨래를 널어놓으면 동네 까마귀가 날아와서 다 헤집어 놓기도 했었다. 늘어놓자면 끝도 없이 튀어나오겠지만 나름 '신주쿠'라는 위치 하나로 비싼 월세를 낼 가치가 있었다. 걸어서 엽*떡볶이를 포장해 올 수 있는 역세권이었고 서울로 치면 2호선인 山手線(야마노테선)이 지나가는 동네라는 것이 입주 1년 후 새로운 어학교를 가게 됐을 때 이사를 가지 않을 수 있게 해 주었다. 폭이 1미터도 되지 않는 화구 하나짜리 작은 주방에서 많은 요리들을 해 먹었고 볕이 잘 드는 토요일 오전에 가지런히 빨래를 널었었다. 정말 특별한 거라곤 하나 없는 그 낡고 작은 방에서의 일상들이 지금에서는 내 낭만으로 남아있다. 나는 정말 많이 어렸고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렇기에 내일이 기대되는 나날들이었다.



 대학에 합격하고 바로 기숙사를 알아봤다. 우리 부모님은 대학을 들어가기 전도 무조건 한국인이 운영하는 부동산을 통한 방만을 허락하셨고 대학을 들어간 후는 당연히 기숙사를 들어가라고 하셨다. 마침 우리 학교는 자취와 전혀 다르지 않은 시스템의 국제 기숙사를 갖고 있었다(이름이 국제 기숙사이긴 하나 특별한 건 없다). 6층짜리 신식 건물에 내가 살던 집보다 두 배는 큰 깨끗한 방이었다. 원룸이라면 원룸이지만 부엌과 방사이에 중문이 있어서 훨씬 안정감이 드는 방이었다. 단점은 12시와 7시 사이에는 1층 문이 잠긴다는 점과 가족을 제외한 외부인을 데려올 수 없다는 것이었다. 관리인이 있어서 안정감이 들었지만 분리수거를 깐깐하게 본다는 것과 외부인이 들어올 수 없으니 택배와 배달을 1층까지 내려가 받아와야 하는 것이 양날의 검이었다. 통금과 외부인을 데려올 수 없다는 것은 20대 초반 청춘들에게 꽤나 가혹한 제약이었고 대부분 1년을 못 채우고 나갔다. 하지만 나는 이곳에 사는 5년 동안 친구를 데려온 것은 열손가락 안에 꼽혔고 12시 통금은 밤에 운동 갔다가 서둘로 돌아오는 정도의 수고였다. 따라서 기숙사를 나가고 싶다는 생각은 거의 든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올 3월에는 방을 빼야 한다. 이유는 이 기숙사는 18학번을 기준으로 학부생 전용이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19학번이라 대학원생이 되는 올해는 방을 빼야 되는 것이었다. 이사를 가는 것이 여간 귀찮긴 했지만 조금은 설레기도 했다. 이때까지는 가구와 가전이 완비된 방만을 옮겨 다녔지만 이제는 정말 내 취향과 내 방식대로 방을 꾸밀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학교와 역을 모두 5분 안에 갈 수 있는 기숙사의 가장 큰 장점을 저버리는 게 아쉬워서 최대한 이 근방으로 이사를 가고 싶었다. 작년부터 부동산 사이트를 수시로 뒤지며 맘에 쏙 드는 집을 하나 찾았고 입주 일정이 맞는 공고를 기다리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사를 한 달 반을 앞두고 있었고 이제 슬슬 시기가 맞아떨어지는 듯 보였다. 부동산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아직 내가 맘에 들어했던 집은 공고가 떠있지 않았다. 아직 좀 이른 감이 있었기에 겸사겸사 다른 집도 둘려보는 와중에 바로 기숙사에 조금 낡았지만 넓고 저렴한 집을 발견했다. 어학교 시절에 살았던 집에 비하면 그리 낡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위치가 너무도 맘에 들었다. 바로 계약을 할 수는 없겠지만 일단 구경이라도 해보자는 심정으로 견학 신청을 넣어두었다.


 며칠 후, 아침부터 전화가 왔다. 부동산이었다. 전에 견학 신청을 넣어둔 집에 관한 안내였다. 주말 오전으로 견학 약속을 잡았다. 이 동네 부동산일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멀리 떨어진 부동산이라는 게 조금 의아했다. 약속 당일이 되었고 부동산으로 향했다. 좁은 골목 안에 있어서 어렵게 찾아 올라간 부동산은 동네에서 많이 보이던 프랜차이즈 부동산과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조금 무서웠다. 다행히 내 담당자는 무서워 보이는 아저씨가 아닌 스타일 좋은 젊은 아저씨였다. 중개업자 아저씨는 내가 신청한 물건을 보더니 이 집이 6개월 정도 비어있다고 했다. 대학 근처 원룸이 6개월 이상 비어있는 것은 꽤나 이상한 일이다. 혹시 살인이나 고독사가 일어난 집이냐고 묻자 그런 거라면 본인들한테 정보가 뜨는데 아무것도 뜨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며 잠시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보겠다고 했다.


 전화로 확인한 결과, 그 집에서 스토킹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일 년 전쯤 여학생이 이사를 왔고 3개월 정도 끊임없이 이상한 우편물이 우편함에 꽂혀있었다고 한다. 여학생은 정신적 스트레스로 병원까지 다니게 되었고 결국 이사를 갔다고 한다. 문제는 여학생이 이사를 간 후로도 아직도 이상한 우편물이 온다고 한다. 집주인이 경찰에 신고도 했지만 상해를 입히거나 직접적인 피해가 있는 것은 아니라며 수사가 흐지부지되어 범인을 여태 잡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집에 길게 비어있게 되었고 집주인은 웬만하면 남자가 들어왔으면 한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서 든 솔직한 생각은 들어가고 싶다는 것이었다. 스토킹은 특정 사람을 노린 것이 아닌가 싶어서 말이다. 그 여학생은 이미 이사 갔고 나는 새로운 사람이니 별 흥미가 없지 않을까 싶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부모님께 여쭤보니 당연히 반대하셨고 그 집은 없던 것으로 되었다.


 원래 보려 왔던 집이 없던 것이 되었지만 이왕 온 김에 다른 집도 봐보기로 했다. 중개업자 아저씨는 나에게 이사시기를 물었고 다음 달말에 이사 가고 싶다고 하자 아저씨는 몹시 당황했다. 나보고 늦었다고 했다. 입학시즌이라 이사가 몰리는 시기인 만큼 입학 전 한 달 월세를 낭비하더라도 한 달 전부터 미리 계약해 놓는 것이 보편적이라고 했다. 그래서 이미 좋은 물건들은 남아있지 않다고 했다. 나름대로 몇 달 전부터 부동산 사이트를 들어가서 알아보면서 차곡차곡 잘 준비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완벽했던 내 계획이 모두 허상이었다. 눈앞이 깜깜해졌다.


일본에서 취업한 친구 회사의 럭비 경기를 보러 갔다. 경기장에서 마신 맥주 한잔이 얼마나 시원하던지 이거 마시러 또 가고 싶다.


 안녕하세요 유즈입니다.


정말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아무 말도 없이 사라져서 면목 없습니다... 약간의 변명을 해보자면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학회 준비로 인한 번아웃과 연구실에서의 인간관계 등등 스스로 감당이 안되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냈습니다. 이젠 다 익숙해졌다고 생각한 생활들이 여전히 어려운 점들이 많았고 저는 아직 타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휘청휘청하는 애송이이었습니다...

지금도 완전히 괜찮아진 것은 아니지만 작년 이맘때를 떠올리면 그때도 꽤 힘들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브런치를 시작하고 극복해 나갔던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글로 정리하면서 생각이 정리되고 감정을 배재하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었으니까요.

그래서 기나긴 휴식기를 지나고 올해도 다시 시작해보려 합니다!


이제는 학부연구생도 아니고 정식 대학원생의 일본 공대 대학원 이야기를 써 내려가보고자 합니다.

앞으로 이 년 동안 잘 부탁드립니다!


유즈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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