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우가 네모난 선에 맞추어 가위질을 하다 살짝 선에 비뚤게 자른다. 얼굴이 구겨짐과 동시에 종이도 구겨 내던져진다. 신우는 정해진대로, 선이 그려진대로 맞춰서 해야 직성이 풀린다. 조금이라도 선에서 벗어나면 화가 머리 끝까지 나고 한 번의 실수가 그리도 억울한건지 울음을 터뜨린다. 그래서 담담하게 말한다.
신우야, 조금 비뚤게 잘라도 괜찮아.
안 돼!! 선생님! 실패하면 안 되지!
신우는 그 어느 때보다도 크고 분명하게 소신을 밝힌다. 아직 신우는 조금의 비뚤어짐도 용납할 수 없나 보다. 그럴수록 성급히 설득하려 하지 않는다. 같은 도안을 일부러 비뚤어지게 자른 후 다시 다듬어 자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 DSM-5 자폐스펙트럼장애 진단기준 중 일부 동일성에 대한 고집, 일상적인 것에 대한 융통성 없는 집착, 또는 의례적인 언어나 비언어적 행동 양상(예: 작은 변화에 대한 극심한 고통, 변화의 어려움, 완고한 사고방식,의례적인 인사, 같은 길로만 다니기, 매일 같은 음식 먹기)
* DSM-5 : 미국 정신의학회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정신장애진단분류
많은 자폐인들은 자기만의 틀이 있는데 그 틀에서 벗어나는 것을 무척 싫어하고 공포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시간에 따라 정해진 일을 그대로 하거나 체육 시간에는 체육관(갑자기 운동장을 가는 건 절대 안 된다)을 가야 하는 등 그 틀은 시간과 장소일수도 글씨나 그림의 선일수도 있다.
봐, 이렇게 다시 자르면 되잖아. 이것도 예쁘지?
신우의 눈이 흔들린다. ‘어? 저렇게 해도 괜찮네?’라고 생각하는 것이 뻔하다. 하지만 쉽사리 화를 풀지 않고 여전히 심통이 난 채 가위에 손을 대지 않고 있다. 그래, 당장 수긍하면 민망하겠지. 신우가 태세를 전환할 수 있도록 기다리며 도안을 자르고 붙여 완성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짠! 선생님 다 했어. 멋있지? 이렇게 다시 자르면 돼.
다시 자르면 돼?
응. 다시 하면 되지. 다시 해볼까?
아니!!
그래? 그럼 신우는 선생님이 자른거 색칠하세요~
신우는 아직 다시 가위를 잡을 마음의 준비가 덜 되었나보다. 그래도 색연필을 골라 색칠을 하니 얼마나 다행인가. 오늘은 이만하면 됐다. 오늘의 경험이 다음의 비뚤어진 가위질을 넘어갈 수 있게 해주겠지. 천천히 가면 된다. 나의 조급함으로 아이들을 몰아붙일 필요는 없다.
여러분은 어떤 틀에서 벗어나면 기분이 상하고 화가 솟구치나요?
그림을 그리는 한 친구는 스케치를 하다 마음처럼 그려지지 않으면 어느 순간 ‘에잇! 되는 게 하나도 없네!’라며 펜을 툭 던진다.
도예를 하는 한 친구는 도자기를 빚다가 생각하던 모양이 나오지 않으면‘하.. 이게 아닌데..’ 한숨을 쉬며 반죽을 뭉개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