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자
아무 이유없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짜증과 분노에 나 자신도 진절머리가 날 때가 있다. 내면에서 휘몰아치고 있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나 스스로도 어찌하지 못해 몸을 떨때가 있다. 그리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내가 아주 강박적이고 통제적인 성향이 강하다는 걸 문득 깨달을때가 있다. 게다가 최근들어 나의 상태는 도파민 중독에 빠진게 아닌가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요즘 나의 모습을 돌아보면 대략 이렇다.
집에 있는 순간에는 (가족들과 함께 있든 없든) 언제나 귀에 이어폰을 끼고 유투브를 듣늗다. 바쁜 하루의 일정중에 늘 해야할 집안일은 많기에 영상을 가만히 앉아서 보는 것은 나에겐 참으로 사치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일을 하다가 손이 바빠 유투브에서 나오는 광고들에 건너뛰기를 못하면 얼마나 짜증나는지 모른다)
아이들이 수시로 싸우고 말을 안 듣고 기빨리게 해도 버틸 수 있는 것은 내 귓가에 들리는 영상 속 즐겁거나 흥미진진한 이야기들 덕분이다. 남편 또한 밖에서 돈 번다는 이유로 집에서 손하나 까딱안하고 오직 소파와 한 몸이 되어 핸드폰 속에 빠져사는 분인데다 아이들까지 쉬는 시간만 생기면 티비로 유투브를 켜서 보기 바쁘다.
고작 4식구뿐인데도 벌써부터 이렇게 각자도생하듯 각자의 휴대폰(컨텐츠)에 중독되어 살아간다니.. 내가 생각해도 참 심각하다. 이 와중에 함께 식탁에 둘러 앉아 밥을 먹는 동안에도 남편은 자기 귀에 꽂은 이어폰 때문에 바로 옆에 앉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듣지도 못한다. 제발 밥 먹을때만이라도 좀 뺄 수 없겠냐는 말을 수도 없이 했지만 여전히 바뀌지 않는 남편을 보며 내가 포기하는 편이 빠르겠다 싶었다. 그러다 결국 나 또한 아이들 말을 못 알아듣는 유투브 중독 엄마가 되버리고 말았지만.
가족간에 관계는 점점 메마르고 특히 내 감정은 날이 갈수록 피폐해져갔지만 그렇다고 해결책도 없고 개선도 되지 않는 우리집의 상황들을 보며 나는 가장 쉽지만 더욱 최악으로 가는 ‘현실회피’를 선택하고 말았다.
우선 남편과는 눈마주치기, 일상적인 대화들을 아예 하지 않기로 했다. 미안하지만 나에겐 존재 자체가 짜증을 유발하기에 갈등의 원인이 되는 남편을 피하는 것만이 살길이었다. 그리고 화가 나거나 우울하거나 슬프거나 혹은 아무 이유없이 심심할 때는 유투브에 나오는 인기영상이나 혹은 드라마에 빠져 살았다.
최근들어는 화사 뮤비에 나온 배우 박정민이나 모범택시의 주인공 이제훈에게 꽂혀 과몰입되어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드라마가 너무 보고 싶은데 볼 시간이 없을때는 아예 티비로 드라마를 틀어 아이들과 같이 보기도 할 정도였다. (하지만 아이들이 보기에는 내용이 다소 폭력적이라 중간에 꺼야했다)
그러다 보던 드라마가 끝나고 나면 나의 내면은 채워지지 않는 허무함과 공허함으로 또다시 괴로워졌다. 드라마를 볼 때는 잠을 안자도 먹지 않아도 행복했는데 끝나고 나서 밀려오는 아쉬움과 공허함은 생각지도 못하게 괴로움과 슬픔으로 바뀌고 그렇게 갑작스럽게 밀려든 감정은 스트레스가 되어 작은 일에도 쉽게 화가나고 짜증이 나는 패턴으로 바뀌게 되었다.
나의 이런 신경질적인 변화에 희생이 되는 건 언제나 어린 아이들이라는 사실이 다시 한번 나 자신을 질책하게 만들었다. 마치 드라마 속 아이들을 괴롭히는 나쁜 악당에 빙의라도 된 듯 나는 고약하고 못된 새엄마처럼 아이들을 때때로 모질게 대할 때가 있었다. 그렇게 모진 말을 쏟아내고는 밤새 죄책감에 괴로워하다가도 또다시 낮이 되면 피해의식과 망상에 사로잡혀 아이들을 미워하는 소위 미친년같은 짓을 계속했다.
서로에게 무관심하며 유투브 중독에 빠진 부부, 그 사이에서 또한 유투브와 티비에 중독된 아이들, 이건 거의 금쪽같은 내새끼의 오은영 박사가 정색하며 화를 낼 만한 수준이다.
나도 안다. 내가 얼마나 잘못 살고 있는지를.
이제 제법 자란 여섯살 막내지만 밥도 혼자 못 먹는 나쁜 버릇을 가지도록 방조한 죄로 여태까지 밥숟가락 들고 따라다니는 벌을 받고 있다. 나는 걸핏하면 싸우고 말을 안 듣는 아이들 때문에 스트레스가 최고치로 올라가도 남편의 세계는 무척이나 평온해보인다.
한 집에 살면서 각자 다른 성질을 가진 물과 기름처럼 살아간다는 것이 이런걸까. 부부간에는 대화랄 것이 하나도 없고 나는 아이들 따라다니며 치우고 먹이고 씻기는 원초적이고 무한한 체력이 요구되는 일에 하루도 쉬지 않고 매달려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이제껏 남편 탓이라 생각했다. 원래 남탓을 하는게 제일 쉬운법이니까. 하지만 모든 문제의 원인은 내가 나를 돌보지 않을 뿐더러 함부로 대하고 나 자신을 혐오한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 나를 이제는 너무 미워하지 않고 잠시 쉬게 해주고 싶다. 이제껏 혼자 외롭게 너무 고생했다고 토닥여주고 싶다. 실수와 잘못이 많았지만 (류시화 에세이의 글처럼) 원숭이가 옮겨놓은 공이 있다면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아이를 키우며 내가 모든걸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오만이자 착각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인생이라는 것이 원래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고 또 가능하다고 해서 함부로 아이들의 인생을 통제하는 것 또한 잘못이라는 것을, 그것은 사랑이 아닌 폭력이라는 걸 잊지말자.
부부라고 해서 남편의 모든 생각을 다 알아야 한다고도 착각하지 말자. 그저 상대가 원하는 요구에 기꺼이 응해주는 것으로 나의 할일을 해낸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잘 살 수 있을 것이다.
나 자신을 학대하지 말자. 죽도록 미워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대신 나 자신을 아끼고 잘 먹고 잘 자고 스트레스 받지 않으려고 노력하자. 우울한 건 다른게 아니다. 내 몸이 힘들고 피곤할 때 쉽게 우울해지는 것이다. 특히 잠을 잘 못 잘 때, 그럴땐 몸의 리듬이 다 깨져서 내 몸과 마음이 내 뜻대로 제어가 되지 않을때가 많다. 그러면 몸도 아프고 기분도 더 우울해지기 쉬운 법이다.
잘 쉬자. 쉴 시간이 없다는 것은 핑계다.
쓸데없이 낭비하는 시간을 줄이고 정말 잘 쉬기 위해 시간을 할애하자. 책을 읽고 기도나 명상을 하거나 때론 멍때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하더라. 아무튼 나를 돌보자. 나를 함부로 하면서 아이들을 잘 케어하겠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좋은 엄마이기 이전에 나 자신과 좋은 친구가 되자. (나 자신과 사이좋은 사람이 타인과도 좋은 사이로 지낼 수 있다고 김창옥강사가 말한 것이 얼핏 기억이 난다) 나를 잘 이해해주고 공감해주고 격려해주는 가장 이상적인 친구가 바로 나 자신이 되도록 하자. (절대 남편이 그런 사람이 되기를 바라지 말자)
이쯤되니 왜 그토록 이유없는 짜증과 분노가 일어났는지 알 것도 같다. 내가 힘들때마다 즉각적인 쾌감을 주는 것에 빠져사느라 나 자신의 목소리에는 귀를 닫았기 때문에 나의 자아가 휘몰아치는 감정의 소용돌이로 내 마음을 쾅쾅 두드린게 아니었을까.
‘미안해. 그 동안 너무 무시해서.. 힘들다는 핑계로 내 마음 돌보는 걸 소홀히 해서.. 너무 외롭게 해서 미안해 정말..’
이렇게나마 나 자신과 화해하고 나니 조금 그 이유없는 체증이 내려가는 것 같기도 하다. 아, 새벽 3시반이 지나가는 지금 불현득 이런 찬양이 떠오른다.
<감사위에 감사>
겸손히 올리는 나의 기도 간구보다 감사를 드립니다
응답하심도 거절하심도 기다리라 하심도 그저 감사
간절히 올리는 나의 기도 간구보다 감사를 드립니다
기쁜 날에도 고통 중에도 주가 일하심을 믿으며 감사
감사 위에 감사를 덮을 때 은혜 위에 은혜가 쌓이네
모든 일에 감사 모든 순간에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