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성장을 바라보는 엄마의 푸념
오후 네시 반, 둘째 아이는 유치원 버스에서 내리고 나면 여지없이 가방을 내게 던지듯 맡기고는 아파트 놀이터로 향한다. 아파트와 길가 사이에 작은 공원처럼 꾸며진 놀이터는 나와 아이들에게는 이 아파트로 이사오고 싶었던 이유였기도 하다.
미끄럼틀, 시소, 그네 하나씩 단촐한 기구지만 아이들은 언제나 이 곳을 좋아한다. 요즘 신축 아파트처럼 세련되고 깨끗한 느낌은 아니지만 지나가는 행인들도 자연스럽게 쉬었다갈 수 있는 정자가 있고 나무그늘아래 벤치도 많고 어른들도 이용할 수 있는 운동기구들도 있고 나무가 꽤 많아 (여름엔 모기도 있지만) 일년내내 숲체험과 같은 자연놀이를 할 수 있다는게 나에게는 꽤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런데 막상 이사오고 나서도 한 동안은 이용하지 않았다. 비겁한 변명이지만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놀면 흙투성이가 되서 늦게 집에 들어오기 때문에 그걸 씻기고 정리하고 해야할 일이 많다는 핑계로 (사실 귀찮고 피곤하다는 이유로) 늘 하원후에 바로 집으로 들어가기 일쑤였다.
하지만 나의 귀찮음보다 아이들이 잠깐이라도 신나게 놀 수 있는게 이 시기에는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이제는 아예 킥보드를 챙겨 하원후에 바로 놀이터로 달려간다.
그런데 불과 몇 개월전만 해도 놀이터에서 늘 엄마만 찾던 둘째가 최근에 달라졌다는 걸 느꼈다. 비단 우리 아이 뿐 만 아니라 놀이터에 노는 아이들이 모두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느꼈는데 그건 엄마로부터의 독립이었다.
늘 뭘 하든 엄마만 찾고 엄마랑 놀려고 껌딱지처럼 달라붙던 녀셕이 이제는 내가 놀아주려고 하니 엄마랑 놀기 싫단다. 그렇다고 친구들이랑 놀자니 그것도 어렵고 그냥 혼자 놀겠단다. 내 눈엔 아직 마냥 어린 아이였는데 늘 내 품에 끼고 살던 아이가 이제 엄마랑 놀기 싫다는 말이 꽤 충격적으로 들렸다.
음.. 언제 이렇게 자랐지? 아이의 성장을 내가 따라가지 못했다는 생각에 혼란에 빠졌다. 그리고 어떻게 노는지 관찰했더니, 놀이터에 늘 나오는 여자아이들이 있는데 분명히 같이 놀고는 싶어하지만 말도 걸지 못하고 그저 눈치만 보면서 끼여 놀 듯 말 듯한 어정쩡한 스탠스로 그저 주변을 맴돌고만 있었다.
하도 답답해서 내가 그 아이들에게 “너희들 뭐하고 놀아? 같이 놀래?”라고 물어봤지만 그저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할 뿐 대답이 없었다. 속으로 ‘얘들은 왜 말을 안하지..’ 싶다가도 ‘그래, 뭐 아이들이 어른이랑 특별히 대화하는게 자연스러울리 없지’ 하면서 그러려니 넘겼는데 그때 마침 학원을 마치고 온 초등학교 1학년인 첫째아이가 와서 같이 놀려고 해도 역시나 대답을 하지 않더란다. 그러니 안 그래도 내성적인 성격인 둘째는 더 더욱 말을 못 걸었겠구나 싶었다.
엄마의 눈에는 우리 아이가 같이 놀 남자아이들이 없다는 것과 그나마 같은 유치원을 다니고 같은 아파트에 사는 또래 친구인 여자아이들이 조금 더 마음을 열어주면 좋겠다는 마음이 섞여 약간의 속상함이 올라왔다.
그 여자아이들의 엄마들과도 등하원을 하며 인사를 하는 사이지만 막상 그런 얘기까지 하는 건 또 조심스럽기에 나도 어찌해야할지 참 애매했다.
언제나 단짝처럼 다니는 그 아이들은 자기들끼만 얘기하고 노는게 편해서 그런걸까? 그 사이에 다른 아이들이 끼는게 불편하기 때문일까? 왜 같은 유치원을 다니는 사이인데도 말을 안 걸고 우리 아이들을 투명인간 취급하는걸까? 잠자리에 누워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드는데 엄마로서 해줄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무력감이 들었다. 그 아이들보고 억지로 놀아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는 걸 잘 알기에 그저 활발하고 주도적으로 놀지 못하는 내 아이가 소외당하는게 안타깝고 속상할 뿐이었다.
그러나 너무 걱정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조금 내성적이면 어때. 그런 성격이라도 이 사회에서 잘 지낼 수 있다는 걸 알기에 아이들을 믿고 내일도 당당히 놀이터에 나가려한다. 엄마로서 나의 역할은 그저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뒤에서 늘 지지해주고 사랑으로 격려해주면 된다는 걸 확신한다.
동네 엄마들과도 굳이 너무 친해지려 하지 말고 나의 소신과 나의 가치관대로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에 다시금 희망과 용기를 내 본다. 엄마가 건강한 마음으로 바로 서야 아이도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건강하게 자랄 수 있겠지.
이제 슬슬 아침 준비를 해야겠다.
아, 나와 비슷한 누군가가 이 글을 읽는다면 힘내자고 말해주고 싶다.
날마다 놀이터에서 고군분투하는 우리 엄마들 모두 화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