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사가 먹힐 수 있던 때는 다 지났다. NCT 127의 크레딧에는 쿠기와 딥플로우가, 레드벨벳의 크레딧에는 1MC1PD 그룹인 XXX의 래퍼 김심야가 이름을 올렸다. 서두에 언급한 가사의 주인공인 빈지노 역시 4월 발매된 태양의 앨범 중 <Inspiration>이라는 트랙에 랩 피처링으로 참여했다.
힙합과 아이돌 문화의 결합은 꽤 오래전부터 이어져온 일이나 여전히 이를 멋없는 것으로 치부하는 따가운 눈초리 역시 공존해 왔다. 리얼함, 다른 말로 'legit'함을 중요시하던 힙합 씬 안에서 이러한 흐름이 바뀌게 된 계기는 여러 가지로 정의해 볼 수 있겠다.
1) 시대가 변하여, 힙합 역시 주류에 편입하는 행위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2) 아이돌 음악은 다양한 장르를 시도하고 흡수하여 점점 발전한다.
3) 힙합 아티스트들은 메인스트림과 협업하면서도 그들의 '깔'을 유지할 수 있다.
이 세 요인들은 독립적이지 않고 유기적이며,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걸그룹 뉴진스(NewJeans)는 이 모든 요소를 아우른다.
민희진이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를 나왔다는 소식과 이후 어도어(ADOR)라는 이름의 기획사를 설립했다는 소식만으로도 케이팝 팬들의 관심은 민희진이 키운 걸그룹이 도대체 어떤 노래와 콘셉트를 들고 나올지에 쏠릴 수밖에 없었다. 뉴진스의 프로모션은 파격적이었다. 정식 음원이 발매되기 전, 어도어는 뉴진스의 노래 전체를 뮤직비디오 공개라는 방식으로 세상에 드러내 버렸다.
뉴진스 <Hype Boy>
그러나 개인적으로 뉴진스의 프로모션 방식보다 더 파격적이었던 요소는 이들 앨범의 크레딧에 있었다. 작곡 크레딧에 250과 FRNK(Jinsu Park)의 이름이 실려 있는 것을 보고 머릿속에 있는 모든 퍼즐이 맞춰지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은 이센스가 소속되어 있지 않지만, 그가 아메바뮤직으로부터 이적하여 새롭게 몸담게 된 레이블로 이름을 알렸던 BANA(Beasts and Natives Alike)는 SM의 A&R로 재직했던 김기현이 설립한 레이블이다. 김기현과 친분이 있던 민희진 역시 마찬가지로 SM에서 나와 새로운 레이블을 설립하여 BANA와의 적극적인 협업을 이어갔다. 그는 250과 XXX의 프로듀서인 FRNK를 뉴진스의 메인 작곡가로 지정했는데, 대표작을 예시로 내세워 설명하자면 이들의 음악은 이런 식이다.
250 <뱅버스>
XXX <승무원>
XXX의 첫 정규 앨범 [KYOMI]가 발매되었을 때 (나를 포함한) 다수의 힙합 리스너들이 혼란과 충격에 빠졌던 기억이 생생하다. '실험적'이라는 단어로는 충분히 설명할 수가 없는, 가변적이며 날카롭고 공격적인 비트 위에 그보다 더 직설적이고 적나라한 내러티브를 가진 랩핑이 앨범을 꽉 채운다. 난해하고 머리 아프고 불쾌하다는 반응까지 마치 사전에 계획해 둔 것 같았다. [LANGUAGE]와 [SECOND LANGUAGE] 앨범 역시 글리치로 가득 찬, 소리를 뒤틀고 부수며 파괴하는 금속성의 느낌을 이어가며 XXX의 정체성을 유지했다.
250의 [뽕] 앨범 역시 당황스럽긴 마찬가지다. 250은 '뽕짝'이라는 장르를 '우리 무의식 속 음악'이라고 정의하며, 트로트의 문법을 따르되 EDM과 결합된 사운드를 만들어 냈다. 특히 <뱅버스>는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관광버스에서 울려 퍼지는 트로트의 분위기를 드러낸다. 250은 소리 지르는 목소리와 추임새를 보이스 샘플로 이용하여 루프를 형성하고, 이후 멜로디를 붙이는 작법을 사용하였다.
이렇듯 각자의 색이 선연한 BANA의 두 프로듀서들이 뉴진스의 음악을 만들었다. 그중에서도 순서대로 250과 FRNK가 프로듀싱한 <Attention>과 <OMG>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뉴진스 <Attention>
혹자는 250이 <Attention>을 프로듀싱하며 특유의 '뽕'을 죽여 놓았다고 설명했지만, 개인적인 의견은 조금 다르다. <Attention>은 보컬 샘플의 유니즌 코러스로 시작된다. 250의 기존 음악과 마찬가지로 보이스 샘플이 곡의 전체적인 전개를 담당한다. 날것의 보컬 샘플 위에는 부드러운 멜로디 라인의 SFX와 키보드가 얹혀 밸런스를 유지한다. 비트를 이루는 클랩과 드럼 사운드 또한 그의 전작에서 쓰인 질감과 유사하다. 250은 힙합엘이 인터뷰에서, 첫 작곡을 프루티 룹스(FL Studio)로 시작했으며 이로 인해 음악과 소리를 분리할 수 있었다고 언급했다. 프루티 룹스가 패턴과 루프 위주 작곡에 유리한 DAW인 점을 감안했을 때, 250 개인 작업물과 뉴진스의 작품이 전혀 다른 듯 하지만 사운드적 유사점을 찾을 수 있는 이유는 모든 작품이 같은 근간으로부터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뉴진스 <OMG>
FRNK의 작업물인 <OMG>와 <Cookie>의 공통점은 잘게 쪼개진 하이햇 비트를 가진 트랩 장르라는 것이다. 그중 <OMG>는 <Cookie>의 트랩 소스를 그대로 가져가면서도, 그 외 구성에서는 FRNK의 시그니처와도 같은 변칙적이고 화려한 곡 전개를 걸그룹 곡에 맞게 재해석했다. 말랑말랑한 도입부에서 시작된 곡은 퍼커션이 주가 되는 UK 개러지 사운드로 디벨롭되고, 후렴에서 'chill'하게 내려앉으며 미니멀한 트랩의 모습을 보이다가 다시 사운드를 꽉 채워낸다. 걷잡을 수 없는 전개인 듯 그 안에서 완성도를 채우는 FRNK의 색채가, 즉 그의 '깔'이 여전히 뉴진스의 음악에서 잔존하는 셈이다.
뉴진스는 어도어와 BANA의 합작과도 같다. 다시 말하자면 케이팝의 대표주자와도 같은 SM엔터테인먼트로부터 떠나 새 회사를 차린 이들이 야심 차게 만들어낸 작품과도 같다는 것이다. 대중성과는 담을 쌓은 것 같은 250과 FRNK가 본인의 색채를 걸그룹 음악에 담아냈고, 대중들은 이 그룹에 뜨겁게 열광한다. 아이돌 음악은 점점 진화하고 장르는 섞인다. 그게 설령 죽어도 메인스트림과 섞일 일 없어 보이는 마이너라도 말이다. 뉴진스를 통해서든, 그들의 개인 작업물을 통해서든 이들이 음악으로 일으킬 물결을 앞으로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