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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영이 Nov 18. 2024

[철교 너머 강물에 비친 용화산]

    안개는 몇십 미터 거리조차 분간하기 어렵다. 새벽 찬 바람 속에 옷매무새를 고치고 집을 나섰다. 희끄무레한 골목길을 지나 비닐하우스 재배 단지를 스치는데 벌써 일터에 나온 농부는 작물 관리에 온 정성을 쏟는다.

    길을 가로질러 건너는데 멀리 자동차 불빛이  다시 주변을 살피게 한다. 물체 분간이 쉽지 않다. 어렴풋이 형상만 그려진다. 두리번거리며 발길을 옮겨 수변공원에 다다랐다. 평소와 달리 운동을 하는 사람을 찾을 수가 없다. 자전거 길을 따라 한참을 걸었을 때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체육공원으로 다가온다. 낙동강을 끼고 있는 이곳은 물안개의 신비로움이 눈앞에 펼쳐 보인다. 오랜 세월을 거슬러 남과 북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공방을 펼치는 군인들의 처절함이 안개와 함께 스멀스멀 밀려온다.

    철교는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국가문화등록 제145호로 지정되어 관리된다. 창녕과 함안 사이의 강을 가로질러 일제강점기인 1931년 건설이 시작되어 1933년 개통한 근대식 트러스 구조의 파란색 철교로 1994년까지 차량통행이 이루어졌으나 다리의 노후화로 인한 안전상의 문제로 차량의 통행이 금지되었다. 6.25 한국전쟁 때 낙동강 전투의 중요한 장소로 북한의 남하를 막기 위해 아군이 다리를 폭파하여 소용돌이의 중심에 있었다. 전쟁의 상처가 담긴 철교는 복구하여 사용되다가 노란색 새 교량이 건설되어 지금은 인도교로 이용된다. 철교는 트러스 리벳 결합 방식으로 제작되어 있는데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과 제작 양식이 같다고 한다.

   철교를 건너면 용화산 자락 아래 능가사가 있다. 약사여래불과 칠성탱이 경상남도 지정 문화재가 있고 남지 체육공원에서 바라보면 낙동강 암벽과 어우러져 있다. 강변 암반에는 반구정과 합강정 그리고 정상에서 풍광을 감상할 수 있는 팔각정이 쉼터를 제공한다. 용화산 정상까지는 경사가 크고 오른쪽으로는 낭떠러지에다 강물이 흐르고 있어 발걸음이 움찔할 정도다.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남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합강정의 피어오르는 물안개는 다양한 형상을 지어 무한한 상상을 펼치게 만든다. 안갯속에 그려지는 물체는 칠십여 년 전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 젊은이의 피땀과 아우성이 밀려오는 듯하다. 세월은 그때의 일을 잊은 듯 드물게 찾아온 사람들의 발걸음을 재촉한다. 세월의 무게를 견딘 철교를 끼고 체육공원에는 기억을 떨치듯 서서히 햇살이 퍼지고 모여든 사람들의 아우성으로 기지개를 켠다. 강 따라 군락을 이룬 억새와 자르 잰 듯 줄지어 선 메타세쿼이아 가로수는 아침 바람에 고개를 떨군다.

    수변공원 산책길이 안개처럼 피부로 다가온다. ‘하루의 시작은 아침에 결정되고 일 년의 시작은 일 월에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오랜 역사의 요충지에서 오늘도 과거의 나날을 반성하고 현재와 미래를 향해 달려간다. 빈틈없는 자신의 인생을 채워가면서 사회 일원으로 최선을 다하는 삶을 꾸려 가는지 되묻는다. 남을 탓하기 전에 나를 돌아보면서 스스로 부족하고 갖춰야 할 영역을 돌아본다. 모두를 배려하고 함께 나누는 사회는 웃음과 행복으로 채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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