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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영이 Nov 21. 2024

[온돌방에서 보내는 하룻밤]

   한국을 떠나 다른 나라에서 생활하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고향이 생각나고 부모님과 형제가 그립다. 자주 방문할 수 없어 전화기 너머 목만 멘다. 이십여 년 전 외국인 배우자를 만나 친지와 친구 앞에 서약하였다. 어느덧 청소년이 된 아이 둘을 두고 직장인으로 생활하는 처제가 잠시 귀국을 한다.

    장인어른을 떠나보내고 혼자 생활하는 장모님의 건강이 갑자기 나빠져 수술을 앞두고 있다. 수술 전에 함께 시간을 보내고자 하는 마음에 서둘러 휴가를 받아 한국에 왔다. 태평양 건너 비행기 타는 시간만 열두 시간 정도다. 본가에서 이틀간 긴 비행시간의 피로를 녹이고, 이제 휴식을 겸해 장모님과 함께 한 시간 남짓의 거리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해 우리 부부가 즐기고 있는 전원주택을 방문하였다.

    버스에서 내린 처제는 긴 이동 탓인지 얼굴은 아직 긴장된 모습이다. 웃음기 있는 부드러움은 찾기 어렵고 굳어 있다. 터미널 근처 마트에서 과일과 간단한 식료품을 사서 함께 승용차를 몰아 집으로 향했다. 장모님과 처제는 집에 도착하여 짐을 내리고 마당에 들어서서 주위를 둘러본다.

    차를 한 잔 나누면서 그동안의 삶을 풀어놓는다. 큰 아이의 정서적 문제 해결을 위해 동분서주 지원한 이야기에서는 부모가 자식에게 쏟는 애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저녁은 미리 준비한 고기와 해산물과 버섯 등 채소가 함께 어우러지는 바비큐가 올려졌다. 처제는 소고기보다 돼지고기를 즐긴다며 외국 생활에서 얻은 향수를 달랜다.

     저녁을 먹고 북두성 일곱 자리 은하수 아래 준비된 참나무 장작으로 불 멍을 펼친다. 따스하던 낮과 달리 해가 진 이후 날씨는 쌀랑하다. 눈썹달 배경에 활활 타오르는 불빛의 열기는 훈훈하다. 불타는 장작 위에 약품을 넣자 피어오르는 파란 불꽃은 밤의 분위기를 더해준다. 어린 시절 화로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 불을 쬐며 이야기 꽃을 피우던 때를 떠올린다.  구운 고구마 맛보기는 시골 풍경의 덤이다. 밤이 깊어 주변 정리를 간단히 하고 온돌방으로 자리를 옮긴다. 참나무 장작으로 방을 데워 온기를 느낄 수 있다. 자연 속에서 저녁 시간을 즐긴다. 밤이 깊어 모녀의 품을 뒤로 하고 우리 부부는 안 채로 잠자리를 찾아든다.

    아침 햇살은 따스하다. 처제는 맨발로 마당에 나와 잔디를 밟고 돌아다닌다. 야외용 간이 의자에 앉아 일광욕까지 행한다. 한가로움 속 봄날에 모녀가 누리는 행복이 멀리 있지 않음을 인식한다. 처제는 ‘어떻게 이런 요상한 집을 구입하였느냐’며 입가에 웃음을 놓지 않는다. 엊그제 처음 만났을 때의 굳은 표정은 찾아볼 수가 없다. 시간이 주어진다면 이곳에 계속 머물며 즐기고 싶단다. 참으로 다행스럽다. 외국 생활로 심신이 지쳐 휴식이 필요하였는데 만족함이 커 처제를 초대한 입장에서 대성공이다.

    자연과 함께 생활하는 환경에서 지내온 처제가 전원생활을 누리는 이곳에 내려와 즐기는 모습은 반갑기까지 하다. 4년여 만에 본국에 돌아와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지금이 중요하리라. 일주일 후면 자신이 생활하는 나라로 돌아가야 한다. 멀리 떠나 있으면서 홀로 서기를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련이 있었을까? 조카들이 성인이 되는 몇 년 후에는 훌훌 털고 부담 없이 드나들 수 있으리라.

    이십여 년 외국에서 지내는 동안 그곳 문화에 스며들고 적응하면서 지금까지 이루어 온 삶이 새삼 대단하다는 칭찬을 얹는다. 긴 세월 자라온 환경이 다르고 성향이 같지 않기에 함께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처제와 지낸 이틀 간의 합숙은 많은 것을 공유하고 서로를 챙겨 주는 시간이 되었다. 행복은 늘 멀리 있지 않고 가까운 곳으로부터 시작된다. 삶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 오늘을 즐기는 것이다. 같이 있음을 다행이라고 생각하자. 인생은 지금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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