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일정은 마무리되었다. 건물을 나서 집으로 향하는데 얼굴에 비치는 햇살이 따가울 정도다. 가방을 내려놓고 산행할 준비를 한다. 간단한 옷차림에 모자를 쓰고 나선다. 마음만 있을 뿐 미루고 미루다 처음으로 산을 찾았다. 해가 하늘 가운데 있어 등산로 입구에 놓인 안내도를 세심하게 살피다 계단을 올랐다.
경사가 커 초입부터 숨이 가쁘다. 산행은 길 옆은 숲 정리를 해 놓은 덕분에 트인 길을 내닿는다. 남지 창나루에서 마분산 영아지 마을까지가 산행 일정이다. 단풍은 잎이 바래 계절이 바뀌고 있음을 알려준다.
남지 개비리길을 따라가면 용산리 첫 마을인 창나리가 나오는데 ‘창이 있던 나루’라는 뜻으로 이 마을 뒷산이 창진산, 마분산으로 불린다. 신라 때 산 앞의 낙동강을 중심으로 강 건너 백제와 국경을 이루어 이곳 마을에 군사가 주둔하면서 군사용 큰 창고가 있어 마을 이름이 ‘창고가 있는 나루’라는 뜻으로 불리어졌다. 산 이름도 창진산으로 바뀌었다가 임진왜란을 맞아 곽재우 의병장의 죽은 말 무덤이 있는 산이라 하여 말무덤산, 마분산으로 불리고 있다.
마분산 등성이에는 나무줄기가 여러 개로 나뉘어 자라는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는데 마분산에 자생하는 여러 줄기의 소나무를 ‘마분송’이라 한다. 임진왜란 당시 곽재우 의병장이 마분산의 나무에 의병의 옷을 입혀 허수아비로 만들어 의병의 숫자가 많은 것처럼 꾸며 왜적을 물리쳤다.
마분산 정상에 있는 거대한 의병의 무덤 주위 소나무들도 전쟁을 맞아 우리 강산 우리 민족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이름 없는 의병들의 무덤을 수호하고자 나무줄기를 여러 개로 나누어 우거진 숲으로 위풍을 당당히 하여 함부로 침입자가 범접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전해오고 있단다. 미물에서 국가 수호의 면을 엿보게 된다.
마분송 군락지를 지나 발걸음을 옮기니 육 남매 나무가 우뚝 서 있다. 다섯 줄기의 소나무 중앙에 벚나무 한 그루가 싹을 내어 소나무 다섯 줄기 사이에 깊숙이 뿌리를 내려 소나무와 함께 자라고 있어 육 남매 나무라 부른다. 한 뿌리에 같은 굵기의 가지가 다섯 개가 있는 것도 쉽지 않은데 벚나무까지 품고 있으니 특별할 수밖에 없다.
자연의 관대함을 뒤로하고 산을 오르는데 마주해 오는 산객을 만나 인사를 나눈다. 한적한 산속에서 산객을 만나는 일은 반가움을 더해 준다. 느릿한 몸짓으로 단풍에 둘러진 산과 발아래 낙동강 줄기를 바라본다. 칠십여 년 전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이라 치열하게 낙동강 전투가 펼쳐진 곳이 바로 여기다. 전쟁의 포성과 아수라장이 된 부상자의 신음이 들리는 듯하다. 세월의 흐름 속에 멀리 강 둔치에는 핑크뮬리가 바래져 있다.
영아지 쉼터까지는 아직 먼 거리다. 영아지 주차장까지 가고 싶은 생각이 많았으나 혼자 돌아올 것이 부담되어 발길을 돌린다. 산길 옆 임도는 시멘트 포장이 되어 차량이 드나들고 있다. 내려가는 길을 따라 출발지를 향해 되돌아가던 중 길을 잘못 들어서 산속을 헤매다 목적지로 향한다. 아무리 낮은 산일 지라도 사전 숙지가 충분히 이루어져야 하고 만약의 경우를 대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준비가 필요함을 새삼 느낀다.
무시로 찾을 수 있는 곳에 다양한 역사를 간직한 이야기가 무수히 담고 있는 마분산 전체를 둘러보지 못한 아쉬움을 남겼다. 임진왜란과 6.25 한국전쟁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마분산에서 오후 시간을 채운다. 남강과 낙동강이 합쳐지는 풍광이 새삼 감탄을 안겨준다. 그와 동시에 군사적 요충지로서 수많은 이들이 희생되어 영혼이 깃들어 있는 성지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이들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정신이 묻히는 듯하여 안타깝다. 무덤의 흔적도 찾기 어렵고 그마저도 도굴꾼들에게 훼손되었다니 서글프기 짝이 없다.
역사는 흐르고 역사 속에서 교훈을 가진다. 과거 없는 현재도 없고 현재 없는 미래는 더더욱 존재하지 않는다. 어제와 오늘을 발판으로 보완하고 다듬어 내일을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리라. 마분산 마분송에서 역사가 우리에게 남긴 정신을 살핀다. 다듬고 계승해 나가야 할 것은 무엇인지 우리가 할 일을 찾아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