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친정집은 새해가 되면 늘 가족들의 그 해 운세를 보러 간다. 정확히 말하면 친정엄마와 셋째 언니가 대표 선수로 가서는 아이들을 제외한 12명(부모님, 형제자매들과 그 배우자)의 그 해 운을 받아온다. 그렇게 한지가 벌써 20여 년이 다 되어가는 것 같다. 어쩌면 넘었을지도.
처음엔 이 집이 용하다고 소문이 난 데다 복채까지 저렴해서(당시 5천 원) 보기 시작했다가 제법 맞는 구석이 많아 해마다 보게 되었다. 무조건 전화 예약만 받는 데다 이제는 너무 유명해져서 전화연결 자체가 하늘에 별 따기다. 어쩌다 연말에 연락이 닿으면 벌써 1,2월은 예약이 끝나고 3월에나 방문이 가능하였다.
올해도 마찬가지여서 지난주에 언니가 엄마를 모시고 보고 왔다며 올해 운세 결과지와 자동차에 넣고 다닐 부적을 전해 주었다. 복채 15천 원, 부적도 15천 원이니 남편과 나의 운세, 자동차 사고 예방을 위한 부적까지 45천 원 정도로 다른 집 한 명 값도 안되는 복채다.
종이 양식이 따로 있어 월별 중요사항을 볼펜으로 직접 적어준다. 그리고 뒷면 이면지엔 전체적인 운이나 개인적 성향 등에 대해서도 알려준다. 이제 20년 가까이 보다 보니, 거의 내용을 외울 지경이다. 하기야 같은 사람이니 운이 크게 달라지진 않을 것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항상 나오는 말이 '일복'이 많고 '짜증'을 내지 말라는 것이다. 특히 월별 사항을 보다 보면 '짜증 내지 마라', '애쓴다', '살림에 관심 없으니 일을 해라' 등 기가 막히게 나를 잘 아는 말이 나와 항상 언니들과 서로의 것을 읽으며 박장대소하곤 한다. 해마다 비슷하더니 올해라고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 외 갱년기로 예민해져 우울증이 올 수도 있으니, 스스로 잘 극복해라고 한다. 또 소화기 계통의 건강을 챙겨야 하는 한편, 이동수가 좋으니 하반기에 움직여 보라 한다. 안 그래도 이사를 가고 싶던 찰나 이걸 핑계 삼아 추진해 볼까 싶다.
그러다 맨 끝에 생뚱맞게 한 문장이 적혀 있었다.
아직도 마음은 30대다!
그 집 참 용하네~~ ^^
거의 20년 가까이를 봐왔지만, 처음 보는 문장이었다. 이 문장을 보는데 얼마나 기쁘던지!
'이 집 용하네~!'
마음만은 늘 청춘이라고, 아직도 30대 같다고 말하고 다녔는데 운세가 그렇게 나오니 신기했다. 100세 인생을 놓고 봤을 때, 지금의 나이에서 17을 뺀 숫자의 나이만큼 살아야 한다더니 내가 맞게 살고 있었나 보다.
그리고 허를 찌르는 한마디!
예민하게 굴어봤자 건강 나빠지고 우울증까지 올수 있으니 '그러려니 하고 살아라'라는 말이 있었다. 자기 계발한답시고 하루하루 아등바등 사는 나에게 하는 충고 같았다. 앞만 보고 가느라 주위 것들을 지나쳐가진 않는지, 진정 원하는 게 맞는지, 그저 사람들 뒤통수를 보며 생각 없이 따라만 가는 건 아닌지 가끔 점검해 보아야 한다. 내가 하는 공부와 하는 일이 진정 원하는 것인지, 이 시간에 다른 것을 제쳐두고 할 만큼 내 인생에 중요한 것인지 늘 생각해 볼 일이다.
매년 볼 때마다 작년과 비슷한 말에, 보고 나면 썩 기분이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없었지만 대략의 큰 것들은 맞는 얘기였다. 그리고 그 해 가장 중요한 일들도 꽤 맞추기도 했었다. 특히 뒤면에 갈겨 적어주는 인생의 전체운이나 내 성격에 대해서는 따끔한 충고 같아서 항상 나를 돌아보게 한다.
올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예방 주사 한 대 맞은 기분이다. 점을 개인적으로 따로 보러 다니거나 맹신하는 편은 아니지만 미리 조심해야 할 것과 올해 전체운을 통해 한 해를 점검해 보게 된다. 무엇보다 그 어렵다는 전화 예약을 성공한 엄마와 언니에게 매년 감사하며, 올해도 건강하고 무탈하게, 주변을 살펴 가면서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