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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노트 Mar 31. 2024

봄에 대한 감사와 예의


벚꽃이 필 때쯤이면 항상 날씨가 얄궂다. 멀쩡하다가도 비와 바람이 함께 와서 피어 있는 꽃을 못살게 흔들어댄다. 꽃이 절정일라치면 어김없이 기다리고 있다가 떨어뜨리려고 작정한 양 비바람을 퍼부어댄다.


올해는 개화를 막 시작하려 할 때 비바람이 쳐서 이번 주말은 거의 만개한 모습을 보게 되었다. 아마 화, 수요일쯤이면 절정에 달할 것이다. 어제저녁 퇴근길에 가로등에 비친 벚꽃을 올려다보았다. 흰 것이 조명을 받아 더욱 빛이 났다. 어둠 속의 하얀 빛은 더 고귀하게 보였다.

해마다 그냥 피는 것이려니 하기에는 이제 기후와 날씨가 예사롭지 않다. 매년 당연시하던 이런 봄맞이의 기쁨이 언제 끝날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계절이 바뀌면 그것이 준비하여 세상에 내놓는 작품에 대한 예의를 갖추고 싶다. 사계절 중 제일 화려한 봄에게는 더욱 그렇다. 겨우내 준비했던 원색의 꽃들은 여기저기 피어나 세상을 알록달록 유치원 놀이터처럼 만든다. 


개나리꽃이 어떻게 생겼는지, 산수유와 매화꽃도 가까이 다가가 관찰해 본다. 목련이 저렇게나 크게 피었다가 처참할 정도로 누렇게 변해 떨어져 짓밟히는 모습에 가슴이 아파야 한다. 서로의 개화 시기에 맞춰 각자가 준비한 선물을 세상에 내어 놓는다. 점점 잔치가 벌어지고 그중 가장 수가 많은 벚꽃이 피기 시작하면, 봄꽃 잔치가 절정에 달한다. 한창 이쁠 일주일 정도만 비와 바람이 도와준다면 일 년 중 가장 아름다운 세상을 우리는 만끽할 수 있다. 


일요일 아침, 아직은 세상이 잠들어 있는 이른 아침에 밖을 나가보았다. 오래된 아파트라 여기저기 난리지만 그래도 이 벚꽃길만큼은 정말 명품이다. 집안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노라면 분홍 카펫이 깔린 것 같다. 벚꽃이 지니고 있는 이 색은 분홍색 중에서도 가장 맑고 화려하고 가벼운데 우아하다. 이런 것들이 송이송이 달려 있으니 어찌 예쁘지 않을 수 있을까?


일찍 핀 꽃들은 이미 한 두 잎씩 떨어지기 시작했고, 활짝 핀 아이들은 세상을 분홍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그 와중에 느티나무와 사철나무에 새 잎은 연둣빛으로 돋아나서 다음 바통을 이어받을 준비를 하고 있다. 


출근길에 그렇게나 화려하게 피었던 백목련은 잎이 떨어져 누렇게 변했다. 며칠 전까진 세상에서 가장 화려하더니 제 할 일을 다하고 미련 없이 떠났다. 화단 안쪽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소리 없이 혼자 준비한 것을 스스로 뽐내고 있는 자목련에게도 반가움을 표했다.  


봄꽃들을 보내준 이 계절에 대해 감사함과 예의를 다하고 싶었다. 사람이 북적거리는 대낮이 아니라 어두운 밤이나 이른 아침, 사람들 없이 조용히 그들과 마주하고 싶었다. 눈으로 사랑을 표현하고 카메라로 그것들의 생의 최고의 순간을 담아보고 싶었다. 


이제 곧 날씨가 더워지면 계절은 갑자기 바뀐다. 잘 가라는 인사도 못할지 모른다. 요즘 계절 변화가 그렇다. 그래서 온전히 제 계절일 때 조용히 만나 마음껏 느끼며 감사하고 싶었다. 그것이 위태로운 기후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계절에게 할 수 있는 예의라는 생각이 든다.


올해가 마지막 봄인 양, 지금의 계절에게 최선을 다해 감사하자. 느끼고 만끽하자. 그것이 그들에 대한 우리의 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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