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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 됨됨이kmj Jul 02. 2023

내게는 추억, 그에게는 쓰레기

추억이 쓰레기가 되는 부부

"나와 봐. 설거지는 내가 할게."

신랑이 나를 살짝 밀치며, 굳이 좁은 베란다로 들어선다.

"됐습니다~안 많아. 금방 끝나니까 당신은 쉬어."

자꾸 밀어내는 통에 결국 자리를 내어준다.

그 시절, 5번이면 1번은 설거지를 도우려고 밀고 버티고 그랬던 것 같다.


밥그릇, 수저 두벌, 반찬 접시 두 개.

11년 전, 우리는 그렇게 신혼을 보내고 있었다.

접시는 몇개 없었지만, 준비과정에서 믹싱볼과 프라이팬, 볶음스푼, 도마, 칼, 가위, 음식쓰레기는 기본이었다.

많지 않은 살림에도 싱크대는 넘쳤다.


씻을 공간이 부족하여, 프라이팬이나 믹싱볼들이 인덕션 위나 바닥에 내려진 채 차례를 기다렸었다.



내 주방은 원룸의 베란다였다.

한쪽 끝은 누가 썼던 건지 모르는 진녹색의 통돌이 세탁기, 반대편 끝은 한 뼘쯤 되는 인덕션과 어깨너비보다 좁은 개수대가 싱크대틀에 간신히 끼어 있었다.

조리대는 없었다.

이후, 옥션에서 밥솥거치 겸 작은 조리용 테이블을 샀는데, 얼마나 흐뭇했는지 모른다.

"가사는 정말 힘든 것 같아. 난 조금 돕는 것뿐인데도 허리가 아프다. 당신은 어떻겠어? 노동량으로 치면 전업주부도 일을 많이 하는 것 같은데, 보상은 없네... 이 정도면 국가에서 전업주부 수당이 나와야 하는 거 아냐?"


고마웠다.

신랑의 뒷모습과 오고 가는 대화에 미소가 나왔다.

"10년 뒤에도 그렇게 얘기해 주길 바래."



우리가 살던 곳은 첩첩산중이었다.

아침이면 베란다 창으로 그림 같은 백로를 볼 수 있었다.

다른 군에 사시던 지인분의 차가 멧돼지와 충돌해 범퍼가 다 부서지던 그곳은, 공기 좋고 물 맑은 곳이었다.


그런데... 스파게티, 피자, 빵집이 없었다.

읍내까지 나가는 길은 차가 논두렁에 처박히지 않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구불구불했다.

본 적도 없는 피자집이 있긴 했는데, 맛은 없고 비싸기만 했다.


나의 배우자는 팥을 좋아했다.

팥을 사서 손반죽으로 식용유에 찹쌀도넛을 튀기던 날, 얼마나 맛있게 먹던지...

더 만들어주고 싶었다.

나는 그를 위해 독학으로 제빵을 시작했다.

3만 원대의 가장 작은 오븐을 샀고, 처음으로 만든 것은 식빵이었다.

작은 원룸 안에 식빵향이 가득 차면 신랑은 아기처럼 좋아했다.

동화 속에서 가난한 등장인물들이 빵 몇 조각을 나눠 먹던 내용을 흘려 읽었었는데, 왜 그런지 알 것 같았다.

밀가루는 저렴했고, 이스트 한 꼬집과 발효만 거치면 처음반죽의 3-4배 정도는 커졌다.

반죽기가 없어 빨래하듯이 손반죽을 하는 일이 잦으니, 어깨가 아팠다.

나중에 할부로 꽤 괜찮은 반죽기를 샀는데, 반죽이 예술이었다.

식빵은 기본이었고, 어느새 카라멜번,소보로,스콘,크루와상,피자,마늘빵,쵸코브라우니,쿠키까지 굽고 있었다.

그는 빵을 만드는 날이면 몇 번이고 "빵 냄새만 맡아도 너무 좋다."라고 말했다.


그 시절의 기억은 지금도 여전히 따뜻하다.

힘든 시절이었지만 그에게는 '나'라는 거대한 지구가 있었다.

적어도 그 시절, 신랑은 나를 '전부'라고 말했고, 웃을 일이 나밖에 없었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에게 어떻게든 힘이 돼주고 싶었다.


며칠 전, 아기가 주방 팬트리에서 반죽기 부품을 꺼냈다.

"엄마, 이게 뭐야?"

나는 짧게 설명하고, 아기가 다칠까 봐 얼른 다른 자리로 옮겼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빵을 굽지 않는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설거지를 하지 않는다.

그는 모든 것을 잊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여자는 버리지 못하고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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