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중간한 재주는 독
미신을 좋아한다. 용산에 있는 누구처럼 전적으로 맹신하진 않지만 가끔 참고하기도 한다. 밤늦게 손톱을 깎지 않고(복이 달아난다), 중요한 날엔 미역국을 먹지 않으며(나쁜 결과를 얻는다), 12시가 지나기 전까진 꿈 얘기를 하지 않는 정도(이건 뭔지 모르겠다)랄까. '그런 게 어디 있어' 하고 무시하면 그만이지만 알고 있는 걸 모른 체 하긴 쉽지 않다. 그냥 하지 말라고 했으니까 하지 않는 게 마음이 편하다. 주입식 교육의 폐해라고 할 수 있겠다.
미신을 싫어하지 않으니 사주와 신점에도 거부감이 없는 편이다. 내가 주인공인 소설을 즉석에서 지어내 읽어준다고 생각해 봐라. 없던 관심도 생길 것이다. 나의 캐릭터 해석을 커미션 준다고 생각하면 돈도 그렇게 아깝지 않다. 나는 지금까지 사주와 신점을 딱 한 번씩 봤는데, 신기하게 둘 다 같은 이야기를 했다. 신점에서는 잔재주가 많아 다양한 직업을 가질 수 있다 했고(즉 정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인생), 사주에서는 재주가 많지만 먹고 살만큼의 뛰어난 재주는 없다고 했다. 정리하자면 그냥 잡다한 일을 할 수 있지만 '잘'하진 않는 잡부 팔자인 것이다.
이 얘기를 듣고 엄마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너는 참 아빠를 많이 닮았어. 닮지 않아도 될 것까지.'
딸은 엄마 팔자를 닮는다던데, 참 희한하게 나는 아빠를 닮았다. 욱하는 성격과 넓은 손톱, 큰 머리, 손재주가 그랬다. 아빠를 축소하면 내가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아빠는 너무 많이 가져 어디에도 정착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망가진 세탁기를 하루 만에 뚝딱 고치고 집게가 빠진 고데기를 원래대로 수리하지만 정작 그 재주를 활용하지 못했다. 은퇴할 나이에 구인 사이트를 들락날락하는 아빠를 보면 속상함과 나도 저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동시에 느껴진다. 대충 버티고 있지만 언제 무너질지 몰라 위태로운 팔자. 부녀가 나란히 모래 위에 꽂힌 나뭇가지 처지다.
'그래, 그럼 요즘 기업들이 없어서 못 뽑는다는 제너럴리스트가 되면 되지!'라고 희망회로를 돌려 본다. 하지만 사실 제너럴리스트는 스페셜리스트의 가성비 버전이다. 그러니까 단지 잔재주가 '많은' 것이 아니라 어느 수준까지는 '잘'해야 먹고살 수 있다는 소리다. 모든 게 애매한 나는 제너럴리스트가 아닌 그냥 시키는 거 다 하는 잡부다. 네네, 주인님. 이것저것 할 수는 있어요.(결과는 장담 못해요.)
운명과 팔자는 바꿀 수도 없다 했다. 정해진 순리에 수긍하고 살면 될 텐데 자꾸만 반항하고 싶어지는 건 아직 내가 정신을 못 차렸기 때문일까. 체력도, 재력도 없는 어중간한 인간이 뭘 어쩔 수 있냐 싶지만.
아빠가 의자에 앉아 휴대폰을 보고 있다. 적어도 나는 새벽까지 거실불을 켜두고 싶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