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부터 에스프레소를 마셨다. 내가 좋아하는 카푸치노가 없는 카페여서 망설이다 주문했다. 아메리카노는 여간해서 입맛에 맞지 않아 단골집만 가게 된다. 단골집이 아니고 카푸치노도 없고 그래서 에스프레소. 작은 잔에 코코아 가루 입은 크레마가 몽글거린다. 기대 없이 마셨지만 좋았다. 따뜻한 에스프레소 한 모금 뒤 얼음물 한 모금. 강가에서 물을 먹는 작은 새가 된 기분이다. 따뜻하고 시원하고 씁쓸하고도 단. 이제야 에스프레소를 먹다니. 생각해 보면 먹은 적은 있었지만 내 마음이 느낄 수 없었던 것 같다. 오늘이 되어서 에스프레소가 맛있다. 얼마나 다행인지. 에스프레소처럼 내가 모르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있을까 생각해 본다. 안다고 피상적으로 생각하고 시큰둥하게, 무심했던 나를 알게 된다. 스스로 문을 닫고 앉아서 사는 게 그렇지, 마치 다 산 사람처럼 여겼구나. 에스프레소라는 문 손잡이를 잡고 닫힌 문을 여는 기분이다. 기분 좋은 봄바람이 분다. 적당히 차갑고 가볍다. 음향효과처럼 지저귀는 새소리가 들린다. 반려견과 산책하는 사람, 전동 휠체어를 타고 가는 할머니, 운동복 입고 장난치는 중학생들, 하천을 멍하니 바라보는 비둘기, 풍경이 에스프레소 크레마처럼 몽글몽글하다. 난생처음 만나는 것처럼 신기하다. 내가 안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된 뒤 사는 것이 신난다. 에스프레소 한 잔이 내 마음에 파문을 일으켰다. 물수제비처럼 마음 위를 통통 뛰어간다. 마음이 까르르 웃는다. 여기저기 돌고 돌아 도착한 지금은 가볍고 편안하고 행복하다.
상담에서 내담자가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 뭔지 모르겠어요. 설명을 들으면 머리로 이해되는 것 같지만 더 모르겠어요."라고 했다. 나는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 무엇인지 직접 느끼고 있음을 알려준다. 우리는 매 순간 자신을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그 사실 자체를 모른다. 이해라는 것이 엄청 거창하고 복잡하고 어려울 것이라고 짐작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이해한다는 것은 안다는 것인데 머리보다 마음으로 아는 것이 강렬하다. 강렬한 이유는 마음으로 아는 것은 그 자체가 이해이기 때문이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은 설명이라는 거리가 존재한다. 대상으로 놓고 설명하는 거리가 생기지만 마음으로 아는 것은 느끼는 순간이 곧 이해다. 내가 슬픔을 느끼면 내가 슬픈 것이고 내가 슬프다는 것을 느낌으로 아는 것이니 나를 이해하는 것이다. 설명 필요 없이 내 슬픔에 집중한다. 내가 얼마나 슬픈지 자신에게 벗어나지 않고 함께 머문다. 그러면 내 슬픔에 대해 온전히 이해하게 된다. 자신의 슬픔을 온전히 아는 사람은 자신 밖에 없다. 이것을 경험한 내담자가 이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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