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 나의 소중한 아지트
초등학생은 ‘잼민’이라고 불리고, 중학생은 ‘급식’이라고 불린다. ‘급식’에서 알 수 있듯 중학생들에겐 급식이 최고다. 급식을 먹기 위해 학교에 가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급식’ 보다는 그 시간을 더 즐긴다. 내가 다니는 학교는 큰 건물에 비해 학생수가 적은 탓에 교과별로 교실이 다 다른 ‘교과교실제’를 시행한다. 그 탓에 쉬는 시간 10분은 교실을 옮겨 다니는 데 모두 사용하게 되고, 친구들과 엎드려 자거나 수다를 떠는 낭만 같은 건 생각할 수도 없다.
그런 낭만이 실현될 때가 바로 ‘점심시간’이다.
단짝과 4교시 수업 종이 치자마자 사물함에 들르지도 않고 책과 필통을 안은 채 재빠르게 식당으로 내려간다. 말 한마디도 섞지 않고 바쁘게 10분 안에 식사를 해치운다. 음료수나 봉지 과자가 나오면 주머니에 쏙 넣고 식당을 나온다.
남은 40분을 우리는 학생회실에서 보낸다. 학생회실에서 보내는 점심이야말로 학생회 부원이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다. 복도 맨 끝 쪽에 자리 잡아 소음이 닿지 않는 곳, 문 앞에 대충대충 쓰인 푯말 ‘부원 외 출입 금지. 출입 시 벌점.’ 덕분에 우리 말고는 누구도 들어올 엄두를 못 내는 곳, 시원한 에어컨으로 금방 시원해지는 작은 아지트.
단짝 친구와 회전의자에 앉아 깔깔 웃고 놀다 보면 다른 반 여자친구 두 명이 더 들어와서 4명이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신나게 논다. 칠판에 낙서도 하고, 학생회실 노트북으로 음악도 듣고, 쿠션을 들고 와서 엎드려 자고, 급식에 나왔던 간식을 함께 먹는다. 서로 간에 비밀이 없기 때문에 무슨 말을 하던, 무슨 짓을 하고 놀던 우리는 우리 자체로 웃느라 바쁘다.
사실 나는 학생회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동아리 시간마다 세 시간씩 학생회 부원 열두 명과 좁은 교실에 갇혀 논쟁을 벌이면서 에너지를 소비하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 처음 들어온 2학년(차장)들은 회의 중에 자기들끼리 수다를 떨고 핸드폰을 보고 책을 읽는다. 참여도가 너무 낮아서 뭐라도 시키면 꿀 먹은 벙어리처럼 멍 때리기를 시전 한다. 쪽팔리지만 차장 중 한 명인 내 전 남자친구도 만만치 않다. 내가 회의 중에 선생님에게 보고서를 올리려고 교무실에 들른 사이 그 인간이 글쎄, 내 자리에 떡하니 앉아 무고한 나와 내 동생 욕을 했다는 게 아닌가.
아무튼, 아무튼 그랬다.
나는 기억 저장을 시/청각적으로 하기보다는 촉감적으로 하는 편이다. 그 장소에서의 습도, 온기, 느낌, 기분을 직감적으로 저장한다. 그래서 어른이 된 내가 다시 이 학생회실에 왔을 때 어떤 기분을 가장 먼저 느낄지 정말 궁금하다. 내가 부원들의 면접을 봐줬던 곳, 내가 면접을 보기도 했던 곳, 동아리 시간마다 터져가는 분노를 참으며 어찌어찌 회의를 이끌었던 곳, 3학년 부원들과 회식을 하면서 콜라 담긴 종이컵으로 건배했던 곳, 점심시간마다 세 명의 친구들과 학교의 낭만을 이뤘던 곳, 전 남자친구가 사귈 때도 헤어졌을 때도 학생회실에서 데이트하자고 더럽게 집적거렸던 곳.
두말할 필요 없이, 단연코 학생회실은 친구들과 점심시간마다 자고, 놀고, 먹고, 뒹굴고, 때리고, 놀리고, 웃고, 울었던 장소로 기억될 것이다.
이것이 ‘급식이’의 낭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