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재미있는 걸 지금까지 할머니 혼자 해오셨어요?”
내 인생 첫 김장에서 나온 말이었다.
그동안 할머니는 늘 혼자 김장을 해오셨다. 내가 도와드리겠다고 나서도 손사래를 치며 말리셨다.
“시집가서 손에 물 묻힐 건데 지금부터 할 필요 없다.”
그 말씀처럼 김장은 물론이고, 설거지나 청소조차도 시키지 않으셨다.
하지만 작년, 큰 수술을 받고 나신 뒤부터 할머니는 예전 같지 않으셨다. 그렇게 말리시던 김장을, 올해는 나와 함께하자며 미안한 마음을 내비치셨다. 그래도 내가 맡은 일은 배추 나르기, 양념장 섞기, 그리고 배추에 양념 칠하기 정도였다. 무, 미나리, 굴과 쪽파는 여전히 할머니께서 다듬으셨고, 나는 옆에서 로봇처럼 시키는 대로 움직일 뿐이었다.
하지만 함께 김장의 간을 보며 새우젓이 부족한지, 액젓을 더 넣어야 할지 고민하던 순간만큼은 마음 깊은 곳에서 뜨거운 감정이 솟구쳤다. 그 짧은 순간에도 할머니와 내가 마음을 나누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울컥했다.
30년 인생 처음 해본 김장. 뒷목과 허리가 뻐근했지만 묘하게 즐거웠다. 무엇보다, 내가 할머니를 위해 무언가를 도울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했다.
혹시나 할머니가 나에게 미안해할까 봐 던진 한마디.
“이렇게 재미있는 걸 지금까지 할머니 혼자 해오셨어요?”
그리고는 환하게 웃으며 덧붙였다.
“내년에는 신랑도 데리고 올 테니 꼭 같이 해요!”
힘들지 않고 오히려 즐거웠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올해를 마무리하며 내년의 소망을 하나 적어보자면,
2025년 겨울에도 할머니와 함께 김장을 하고 싶다.
그때도 지금처럼 할머니가 건강하시길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