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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컨트리 쇼퍼 Jul 03. 2023

서울에서 단기방 구하기 대작전

<열 번째 리스트: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해외를 떠나기로 마음먹고, 쉽게 어디로 가야 할지 결정을 하지 못한 채, 

어느덧, 2023년 2월 날짜로 봉천동 원룸 계약이 만료가 되는 시점이 다가왔다.  

우리는 5월에 해외로 떠나기로 마음먹고 계획을 차근차근 이루어 나가려고 했지만,

여러 가지로 많은 일들이 중첩되어 있었다.  

해외로 나가기 전, 우리는 인생의 가장 중대한 결혼도 하게 되었다.

우리 두 사람이 해외로 나가기 때문에 빠르게 이루어진 결혼이었다.  

특히나 보수적인 생각을 가진, 우리 부모님 쪽에서는 여자가 결혼도 안 하고, 둘이서 나간다는 것이 탐탁지 않게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처음에는 상관없었다. 

"그게 뭐가 중요하지?"

하지만 점점 나는 부모님의 말에 설득되었고, 남편이 아니면 다른 누구랑 결혼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기에 정말 화끈하게 결혼날짜를 잡았다. 


성당을 다녔던 남편의 가족 문화를 이해하려고 나는 6개월간 성당을 다니며 세례를 받았다. 

해외로 나가서 함께 살기 시작하려고 했던 일이 결혼까지 이어진 셈이었는데,

이게 생각보다 결코,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한국을 떠나서 살기 위해서 시작된 이 모든 것들이 결혼으로 까지 이루어지게 되다니!

참으로 인생이란 모르는 것이다. 

  

'비혼주의였던 나.' 

아니, 20대에는 평생을 함께 사랑하며 살고 싶었던 사람을 정말 절실히 찾아 헤맸다. 

혹자는 나를 두고, 금사빠라고도 했다.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부정은 하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열렬히 끝없이 사랑했다.

시간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항상 진실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서툴렀고, 어리숙했고, 여러 가지로 타이밍도 맞지 않았던 나의 20대의 사랑들은 그렇게 끝이 나버렸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나와 정말 비슷하면서도 다른 면이 있는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여러 가지로 우리는 우리의 꿈을 찾기 위해 딱 적절한 시기에 만났다고 생각한다.  

사랑은 타이밍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남편을 만나, 나라는 사람은 많은 것이 변했다. 

원래의 어릴 적 나로 되돌아온 느낌이었다. 

20대에는 방황도 많이 했었고, 불안했다. 

여전히 나는 불안하지만 예전에 비해서는 많이 좋아졌다고 자부할 수 있다. 

 

<이날 따라 역삼동의 하늘은 매우 푸르렀다>


단기방을 찾는 내내 집이 잘 구해지지 않아서, 불안한 마음과 예민한 마음이 치솟아 올랐다. 

길거리에서 울기도 했다. 

서울에서 우리가 살 집은 없어 보였다. 당연히 그럴지도 모른다. 

남편과 나는 서울대입구역 부동산을 여러 군데 돌아다녔다.

혼자 살았다면 살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던 집들이 이제는 둘이서 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리고 단기로 살다 보니, 한 달에 40에서 50만 원만 주고 살 수 있던 집들을 90만 원을 주고 살아야만 했다.

"원래 단기방은 이 정도 돈 내고 사는 것이 당연한 거야!"

부동산 사람들은 모두 똑같이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도저히 이런 집에서 이 돈 주고 살고 싶지는 않았다. 

울며 겨자 먹기로 다른 동네로 눈을 돌렸다.

그래도 다른 동네에는 희망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주말에는 회사원들이 없어 그래도 이 동네는 한적한 편이다>


아래 포스팅 했던 것과 같이 정말 우리들은 여러 동네를 돌아다니며 단기방을 찾아 헤맸다. 

결국,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강남으로 눈을 돌려, 단기방을 찾기로 했다.

우선 인터넷으로 단기방이 올라와 있는 곳에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단기방은 일주일 전에 전화를 해서 바로 계약을 해야 하는 시스템이었다. 

장기로 살지 않으니, 삼주 전에 연락을 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정말 불안하게도 봉천동 원룸 계약이 만료되는 일주일 전까지 집을 구하지 못했다. 

딱 일주일이 남았을 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생각보다 단기방 가격은 높았다. 강남에서 원룸에 살면 이 정도 가격을 내야 하는 건가 싶었다. 

대부분 100만 원 이상이 시작이었다. 

하루동안 부동산 여러 군데에서 올라온 집을 본 뒤, 다음날 가장 마음에 드는 집에 연락했다. 

"이미 나갔습니다."

이런 일이 부지기수였다. 단기방은 정말 인터넷에서 보는 순간, 전화하면 금방 나가버렸다. 


마지막으로 다른 부동산에 전화를 걸었다. 

"지금 당장 바로 갈게요!"

인터넷에 올라온 매물 말고, 여기 부동산에서만 운영하는 빌라가 있다고 했다. 

우리는 당장 그곳으로 달려갔다. 강남역 신분당선에서 걸어서 15분 정도 하는 위치에 있었다. 

방안을 들어서자마자, 담배 냄새와 쾌쾌 묵은 냄새가 났다. 

그래도 봉천동 원룸보다는 컸다. 가구들은 이미 낡을 때로 낡아서 페인트칠이 떨어져 나가기는 했지만, 

이제 우리에게는 시간이 없다. 

서울대입구역 그 집이 괜찮았으려나? 하는 후회도 해보았지만, 이미 지금 와서 소용없는 후회였다. 

우리는 당장 그 자리에서 이 집을 계약했다. 

한 달에 방값만 100만 원 관리비는 별도였다.

그래서 총 120만 원.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강남에도 이런 주거 단지가 있다는 것을 단기방을 찾을 때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래도 다른 집들에 비하면, 싼 가격이라는 생각에 위안을 삼기로 했다. 

그래, 단기방은 대부분 150만 원 가까이 줘야지 그나마 좋은 곳에서 살 수 있다. 

우리는 잠깐 사는 곳이기에 여러 가지를 포기했다. 

하지만, 우리는 강남에 사는 동안 정말 많이 후회했다. 후회를 안 하고 싶어도 이곳은 살곳이 못 됐다. 

유동인구가 많은 강남이다 보니 어쩔 수 없다고 치지만... 

끊임없이 올라오는 담배냄새의 출처 때문에 미칠 지경이었다. 그 냄새가 어디서 흘러 들어오는 건가 보니, 

주변에는 회사가 많아, 아침부터 새벽까지 사람들이 우리 집 앞으로 와서 담배를 폈다. 그러다 보니 2층이었던 우리 집 창문 사이로 담배냄새가 자욱하게 올라왔다. 

목이 칼칼했다. 

"이게... 100만 원 하는 집이라니!"


그리고 날이 점점 따뜻해지자 새벽마다 이상하게 모기들이 들어와 잠을 잘 수 없을 정도였다. 

모기를 죽이고 또 죽였다. 벽에는 피자국이 선명했다. 

수면의 질은 점점 낮아지고 있었다. 

온몸에 모기 자국이 가득했다. 알고 보니 방충망 틈 사이가 너무 벌어져 있었던 탓에, 그 사이로 모기들이 신명 나게 들어왔던 것이다. 

테이프로 완전히 막자 그제야 모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5월 말까지만 살 것이라고 생각했던 이 단기방은 남편의 이용사국가 자격증 때문에 결국, 한 달 뒤로 미루어지게 되었다. 우리는 울며 겨자 먹기로 6월 23일까지 이 집에서 살게 되었다. 


결론은 서울에서 단기방 찾기란 매우 어렵고도 어렵다. 

물론 돈이 정말 많다면야 그것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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