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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zyvision Nov 25. 2023

 레비일기 : 오픈 직후의 감상

레이지 비전에서 만난 사람들

레비를 오픈하고 나서 좋은 점을 하나 꼽자면 무엇일까. 나는 제일 처음으로 오래 보지 못한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라고 하겠다.


SNS 가 널리 퍼지면서 실제로 만나지 않아도 만난 것 같은 관계가 많아졌다. 각자가 바쁘게 살아가는 일상에서 반가운 친구들의 근황을 쉽게 알 수 있다는 것은 장점이었지만, 동시에 그만큼 실제로 만나려는 노력을 덜 하게 되는 부작용도 있었다.


아, A를 본 지 꽤 되었네? 근데 뭐 하고 사는지는 잘 알지. B는 요즘 별일 없나? 어제 스토리 보니까 공원에 놀러 간 것 같던데. 잘 지내는구나, 하고 그대로 흘러가버리는 식이다.


언제 밥이나 먹어라고 말하는 것은 이제 전 세계가 아는 한국인의 거짓말이라던데. 그럼에도 마음 한편에 아쉬움에 있는 것은 사실이다. 어쩌면 모두가 비슷한 마음이었을 모른다.


레이지비전을 오픈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캘린더는 지인들의 예약으로 채워졌다. Y의 고등학교 동창 누구누구와 지인, Q의 회사친구 누구, J의 친구 누구의 지인... 그즈음 우리는 캘린더의 예약을 확인하며 서로에게 자주 물었다.


"이 친구 내가 아는 그 친구야?"


서로 알고 지낸 지낸 시간이 길다 보니 Q와 Y의 지인들은 내게도 낯설지 않은 이들이 많았다. 최소한 이름은 아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마치 내 친구가 오는 것처럼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아마 다들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7월 9일 저녁, 내 지인의 예약이었다. 동네 친구의 학교 친구로 알게 된 친구였다. 아주 오래전 할로윈 밤에 늦게까지 맥주를 마셨던 기억이 가물했다.


그런 말 있지 않은가. 애매하게 아는 사이가 더 어색하다는 말. 하지만 레비의 주인장으로써 오랜만에 만나는 누군가를 맞이하는 것은 달랐다. 어색할 틈이 어디 있나. 손님이 오신다는데?


푸릇푸릇한 해바라기 꽃다발을 들고 나타난 친구는 남자친구와 함께였다. 오래전 추운 밤거리에서 기억하는 모습과 비슷한 듯 달라 보였다. 추천을 부탁하는 친구에게 Y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다 크레망을 가리켰다. (크레망은 프랑스의 내추럴 스파클링 와인 종류 중에 하나다.) 나는 중간중간 시선을 마주치며 그동안의 안부를 물었다.


7월 23일, 일요일 점심에는 곧 뉴욕으로 떠나는 친구가 찾아왔다. 직장을 그만두고 늦깎이 학생으로 도전을 하러 간다고 했다. 앞으로 갈길이 구만리라 걱정이 많은 와중에 궁금해서 왔다며 웃었다. 걱정된다는 사람치고 표정이 밝았는데, 아무래도 퇴사효과가 아직도 남아있는 것 같았다.


친구는 함께 온 지인과 시트러스 향의 오렌지 와인 한 병을 금방 비웠다. 가죽, 진한 초콜릿 노트가 과즙과 어우러지는 레드와인까지 해치웠다.


정말 신기하다. 우리는 여러 번 그 말을 반복했다. 과거에 어떤 순간을 추억했다. 아련한 기억을 더듬으며 차분한 대화를 하다가도 과한 음주를 온몸으로 실천하던 시절을 폭로하며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옆에 있던 Y도 자연스럽게 대화에 끼어들었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바보짓을 하며 살았다는 사실에 동질감을 느꼈다. 그 외에도 수많은 지인들이 레비를 방문했다.


레비는 친구집에 놀러 오는 것 같은 경험을 주고 싶다던 Y의 상상이 실현된 곳이었다. 살면서 한 번쯤은 있지 않은가. 편안한 장소에서는 평소보다 마음이 금방 허물어지는 경험.


그 때문인지 레비에 방문한 지인들은 옆에 지인 그룹과 쉽게 말을 섞었다. 처음 만나 서로의 친구가 되는 것은 레비에서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낯선 직업과 배경을 가진 이들이 Q , Y, 그리고 나의 친구라는 이유로 쉽게 섞여 들어갔다. 그 와중에 서로의 뮤추얼을 발견하는 일도 잦았다. 세상은 좁다는 말은 진짜라고 생각한다.


나는 레비 바 안 쪽에 서서 그 모습을 기쁘게 지켜봤다. 가끔은 그 어딘가에 어울려 놀았다. 쓰다 보니 레비를 오픈하고 좋은 점을 조금 수정해야겠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을 만나서 좋다. 그리고 그들이 또다시 누군가의 친구들이 되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다.


8월의 언제에도, 9월의 언제에도, 내년 언제쯤에도 또 다른 친구들이 레비에서 이 경험을 즐길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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