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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추 Jul 11. 2023

재능이냐, 노력이냐

기억 속 이야기 13

문창과에 입학한 학생들은 글을 쓰고 싶거나 글에 관련된 무엇인가를 하고 싶어서 온 경우가 대부분이다. 90년대까지는 시 전공과 소설 전공으로 나누었을 만큼 시와 소설이 주된 장르였고, 대부분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기를 꿈꿨다. 물론 전공과목에 희곡이나 아동문학 수업도 있었고, 90년대 중반에는 시나리오를 쓰고 싶은 학생들이 과내동아리를 만들기도 했다. 현재는 예술대학 공연영상창작학부 문예창작전공으로, 예전보다 드라마나 시나리오 관련 수업을 많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창작 장르가 다양해지는 것은 두말할 것 없이 좋은 현상일 것이다. 그런데 장르에 관계없이 문창과 학생이라면 한 번쯤 맞닥뜨리는 고민이 있다. 글을 쓰는 데 재능이 우선인가 노력이 중요한가 하는 문제이다. 작가 또는 문학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주변에서 글을 쓰는 데 재능이 있는 분들을 볼 수 있다. 이곳 브런치에도 글에 재능이 있는 분들이 넘쳐난다.


글을 쓰는 데 재능이 필요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럼 재능이 부족하면 글을 쓸 수 없는 것일까? 많은 글을 읽고 끊임없는 연습을 통해 글을 잘 쓰게 된 이들도 있다. 문창과에서도 그런 사람들이 작가가 된 경우가 더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래서 선배들은 ‘계속 쓰는 게 재능이다’라는 말로 논란의 종지부를 찍으려 시도하기도 했지만, 모든 문창과생들이 동의하기에는 근거가 부족했다.


나는 재능이 우선한다는 쪽에 조금 더 기울어있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글을 쓰는 것과 공부하는 것이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공부를 잘하는 것도 하나의 재능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듯 머리가 좋아야 하고, 지식을 빠르고 쉽게 습득하는 요령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지능지수가 높은 순서대로 공부를 잘하느냐 하면 또 그렇지만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나는 공부에 재능이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한자리 전교 등수를 유지했고, 예체능 과목을 뺀 모의고사에서는 더 좋은 성적표를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거기까지였다. 물론 몸이 아파서였다는 핑계를 대고 싶지만, 냉정히 말하면 공부에 재능이 있는 학생들 중에서 노력을 덜했다고 말하는 게 맞다. 공부도 재능에 노력이 더해져야 하는 것이다.


이 패턴은 문창과에 입학한 후에 그대로 반복되었다. 문창과에서는 1학년 때부터 습작한 소설을 제출하고 학생들이 합평을 하는 창작수업을 진행하는데, 첫 번째로 쓴 소설이 동기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교수님께도 앞으로 열심히 써 보라는 격려를 받았다. 그런데 그것도 1학년까지였다.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진영의 붕괴와 리얼리즘 문학의 쇠퇴라는 턱없는 핑계를 대고 싶지만, 역시 한 마디로 말하면 노력이 부족했다. 글을 쓰는 것은 공부보다 훨씬 재능만으로는 안 된다.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소설을 쓰는 것은 매우 힘겨운 과정이다. 지도교수였던 신상웅 선생은 ‘소설은 과학’이라고 말씀하셨다. 전체적인 구성을 짜야 하고, 등장인물 사이 그리고 인물과 사회가 상호작용하는 치밀한 세계를 구축해야 한다. ‘무엇을 쓸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소설을 쓰는 과정이 너무 두려워서 피했다는 편이 맞을 것이다. 역사는 반복되고, 사람은 잘 바뀌지 않는다.


또 한 가지, 부모의 형질이 자식에게 전해진다는 유전법칙은 진리이다. 첫째는 글 쓰는 데 재능이 있다. 첫째에게 “아빠 닮아서 글쓰기에 재능이 있는 거야.”라고 말하면 “글 쓰는 게 무슨 재능이야, 별로 써먹을 데도 없을 것 같은데.”라며 시큰둥한 표정을 짓는다. 10년 후에 자소서 쓸 때 나에게 고맙다고 절을 해야 할 것이다. 둘째는 노력하는 것을 싫어한다. 지식을 쌓으려면 교과서를 읽고 문제를 푸는 노력을 들여야 한다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외면한다.


어떤 분은 글 쓰는 게 즐겁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아마도 글을 쓰고 난 후의 행복감이나 만족감을 말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글을 쓰는 과정은 고통스럽다. 그 고통이 두려워 학창 시절 이후로 소설은 쓴 적이 없지만, 그때 기억들을 글로 쓰고 있다. 소설을 쓰는 것만큼 두렵지는 않지만 글을 쓴다는 것은 여전히 부담스러운 일이다. 글 쓰는 데 재능이 우선인가 노력이 중요한가에 대한 정답은 없지만, 재능에 노력이 더해져야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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