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은 무엇이 다른가 1
기억 속 이야기 14
중앙대 문창과 출신의 작가, 편집자들은 일일이 꼽을 수 없을 만큼 많다. 그중에서 나와 같이 학창 시절을 보냈던 두 명의 동문이 있다. 나는 두 명 모두와 친했지만, A선배는 91학번 여자선배이고 B후배는 95학번 여자후배여서 그들은 학창 시절에 만난 적이 없다. 10년쯤 전에 나의 소개로 두 사람이 만났는데, 내가 보기에는 공통점이 있는 두 사람이 서로에게 ‘이상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무척 의아했던 경험이 있다.
내가 보기에 두 명의 첫 번째 공통점은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을 한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A선배는 편집자로 2010년대 초 대형 출판사에서 베스트셀러를 잇달아 펴낸 경험이 있고, 현재도 출판사 대표로 많은 책을 출간하고 있다. B후배는 시인 겸 편집자로 두 분야 모두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방송 활동이나 강연도 많이 해서 문단에 팬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두 번째 공통점은 자신들과 함께 학교를 다녔던 문창과 선후배들을 안 좋게 생각하고 만남도 피한다는 것이다. 문창과 출신임을 숨긴다거나 동문들 전체에 등을 돌리고 싶은 것 같지는 않다. 그들의 분야에서 중앙대 문창과를 졸업했다는 것은 꽤 좋은 이력이므로 문창과 자체를 부정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자신들의 학창 시절과 당시에 같이 생활했던 선후배들에 대해서는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같다.
A선배는 달변가이다. 학창 시절부터 누구와 만나도 끊어짐 없이 대화를 이어갈 수 있을 만큼 말을 잘했고 상대를 집요하게 설득하려 했다. 한 선배에 따르면 그녀와 전화 통화를 했는데 너무 오래 통화해서 이제 그만 끊자고 했더니, 그녀가 왜 전화를 끊으면 안 되는지에 대해서 10분 동안 얘기한 적이 있다고 한다. 학창 시절에는 선후배들과 두루 잘 지냈는데, 졸업 후에 문창과 선배들도 알고 지내던 중앙대 영어과 선배와 결혼했다는 소식을 마지막으로 연락이 끊겼다.
그러다 내가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5년쯤 되었을 때 우연히 연락이 닿았는데, 이혼 절차를 밟고 있다며 나에게 소장을 써 달라고 했다. 내가 변호사도 아닌데 무슨 소장을 쓰냐고 해도 막무가내로 써달라고 해서 그녀에게 들을 얘기대로 몇 자 써서 보냈더니, 그녀가 이렇게 성의 없이 쓸 거냐면서 화를 냈던 기억이 있다. 그러고 몇 년 후에 홍대 근처에서 혼자 무엇인가를 준비하던 그녀의 작업실에 몇 번 놀러 간 적이 있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그녀가 졸업 후 줄곧 출판계에서 일했고 편집자로서 경력을 차근차근 쌓아왔던 것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2010년대 초반 그녀는 책 제목만 대면 지금도 알 만한 베스트셀러를 연달아 낸 편집자가 되었다. 사실 나는 그녀가 대형 출판사에 팀장으로 있다는 소식만 들었지 베스트셀러 편집자였다는 것까지는 알지 못했다. 어쨌든 당시에 프리랜서로 일감을 구하지 못해 곤궁했던 나는 그녀에게 취직을 청탁했다.
역시 베스트셀러 편집자의 끗발이 있어서였는지 출판사 경력이 없던 나를 취직시켜 주었고, 나는 그녀의 팀에서 일하게 되었다. 하지만 팀장으로 만나게 된 그녀는 학창 시절이나 홍대 근처에서 만났을 때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녀가 베스트셀러 편집자로 성공에 도취되어 거만해져 있었다면 오히려 이해가 되었을 것이다. 그녀는 워커홀릭이 되어 있었고, 팀원들을 매섭게 다그쳤고, 항상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보였다.
사회생활에 개인적인 관계가 개입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그래도 옛정이 있는데, 내가 교정교열 본 원고를 몇 장 넘겨보고는 매번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단문으로 끊어서 독자들이 읽기 쉽게 문장을 바꿔줘야 한다고 능숙한 시범을 보이며 그대로 하라고 했다. 나뿐만 아니라 팀원들 모두를 공평하게 대했고, 팀원들 모두가 그녀를 두려워하고 싫어했다. 그녀는 기존 저자를 관리하고 신규 저자를 발굴하고 교정교열을 보고 책을 읽느라 항상 바빴다.
나는 그녀가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몸값을 더 올리거나 권력을 가지기 위해서 그러는 것 같지는 않았다. 다른 직원들을 무시하면서도 경계했고 아무도 믿지 않는 듯했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알고 있었다. 나를 비롯한 팀원들에게 자주 화를 내고 속사포를 쏘아댔지만 마음만은 여전히 여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결국 그녀는 돈과 권력 어떤 것도 얻지 못한 채 출판사를 떠났고, 그녀가 퇴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도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녀는 자신이 재능도 없고 인맥도 없고 운도 없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래서 시간을 쪼개 열심히 사는 것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자신은 그렇게 해서 겨우 성공을 이루었는데, 어떤 사람은 특별한 노력 없이 성공을 바라고 때론 성공을 거두며 성공한 자신을 시기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더욱 날을 세우고 일분일초도 허투루 쓰지 않으려 자신을 채찍질했는지 모른다.
이제 그녀가 왜 문창과 동문들에 대해서 안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이해가 된다. 그녀와 같이 학창 시절을 보낸 선후배들 중에는 노력 없이 성공을 거두었거나, 무능하고 제대로 하는 일이 없거나, 뜬구름 잡는 이야기로 허송세월을 보내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그녀와 삶의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이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작가로서 만나는 경우처럼 일과 관련된 것을 제외하고는 문창과 선후배들과 연락하거나 만나는 것을 피했다.
그녀는 B후배도 무엇인가 물어보기 위해 나에게 만남을 주선해 달라고 했는데, 애가 이상하고 선배를 우습게 본다며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다고 했다. B후배도 나와 따로 만난 자리에서 A선배가 자신을 언제 봤다고 선배 노릇을 하려고 들며, 왜 만나자고 했는지 의도를 알 수 없다며 이상한 선배라고 했다. 하지만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는 법이다. 그들은 서로의 수를 읽었을 것이고, 상대가 자신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중간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나만 ‘이상한 사람’을 만든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