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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추 Oct 18. 2023

실수의 역사를 반복하지 말자

가족합작 독서노트 10

엄마가 책을 빌려오고, 첫째가 글을 쓰고, 둘째가 그림을 그리고, 아빠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합니다.”


책제목 경성 기억 극장

지은이 최연숙

출판사 웅진싱크빅


줄거리

주인공 덕구는 경성 기억 극장에서 일하며 자신이 극장에서 기억을 지웠다는 걸 알게 된다. 그것도 한 집에서 함께 사는 수현이 아저씨를 일본군에 밀고했던 기억을. 덕구가 그런 행동을 했던 이유는 돈 때문이었다. 엄마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그리곤 죄책감에 시달려 경성 기억 극장에서 기억을 지웠다. 그 후 아무 일 없었던 듯이 살다가 극장에서 일하게 되면서 자신이 기억을 지웠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사실을 알게 된 덕구는 더한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래서 다시 극장에서 기억을 지우려고도 했지만, 기억을 지워 편하게 자신의 잘못에 대한 책임을 버리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는 걸 깨닫고 수현이 아저씨에게 사실대로 털어놓고 용서를 받는다. 경성 기억 극장과 기억 삭제 장치는 파괴되고, 덕구는 이발소 아주머니를 따라 원산으로 피신했다가 해방 후 경성에 돌아온다.


감상문

가끔 기억을 지우고 싶을 때가 있다. 큰 잘못을 하거나 부끄러운 실수를 했을 때 특히 그렇다. 나도 그런 적이 있다. 친구에게 말실수를 하거나 누군가에게 나쁜 말을 들었을 때 내 기억을 지워버리고 싶다. 그래서 이 책에는 기억을 지워주는 극장이 등장한다.


덕구는 큰 잘못을 했지만 용서받았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수현이 아저씨의 입장에서 덕구는 자신을 일본 순사에게 밀고한 배신자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수현이 아저씨가 덕구를 용서했던 이유는 아마 덕구의 사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덕구는 아저씨를 위험에 빠뜨리려 한 것이 아니라 엄마의 병원비를 갚기 위해 아저씨를 밀고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도 덕구와 같은 처지였다면 가족도 아닌 아저씨를 일본군에 밀고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잘못은 감춰봐야 더 커지고, 사과는 미뤄봐야 더 어려워진다. 나도 잘못을 빨리 인정하고 사과하는 편은 아니라 이런 글을 쓸 자격은 없지만, 뭐든지 감출수록 드러나고 미룰수록 어려워지는 것 같다.


책의 마지막에 나온 것처럼 기억은 우리의 길잡이 역할을 해주는 소중한 것이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의 기억이 있기 때문에 난 내 몸을 지킬 수 있었고 다른 사람들과도 어울릴 수 있었다. 지금 피곤하고 귀찮아서 글을 쓰기가 싫은데 그럼 다음에 난 이 일을 기억하고 밤이 아닌 낮에 일찍 감상문을 쓸 것이다. 기억을 통해 나는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아빠의 이야기

아빠는 이 책을 읽고 1987년에 발표된 복거일 작가의 『비명을 찾아서』라는 소설이 생각났어. 『비명을 찾아서』는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암살이 실패로 돌아가고 1987년까지 우리나라가 일본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가정 하에 쓰인 ‘대체 역사’ 소설이야. 이 소설에서 일본은 우리나라의 말과 글 그리고 역사를 모두 지워버리고 우리나라가 원래부터 일본의 속국이었다고 교육시켜.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본이 조선을 부당하게 침략했다는 사실조차 잊고 살아가게 되지.


우리가 역사를 배우고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과거를 통해 현재를 살아가는 교훈을 얻기 위해서라고 해. 과거의 사실에서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를 찾을 수도 있다는 뜻이야. 그런데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도 있어. 일부 과학자들에 따르면 일정한 주기와 패턴을 갖고 비슷한 유형의 사건들이 과거와 현대를 오가며 이어진다고 하는데, 아빠는 다른 의미로 이 말이 한 사람의 삶에 적용된다고 생각해.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지 않는 사람은 같은 잘못을 반복하게 된다는 말이야.


이 책에 등장하는 윤귀옥 선생님도 마찬가지야. 그녀는 학도병 참전을 독려하는 연설 도중에 방귀를 뀐 기억을 삭제하기 위해 경성 기억 극장을 찾아. 사장의 말대로 방귀를 뀐 사실보다는 학도병 참전 연설을 한 사실이 부끄러웠겠지. 그런데 그 기억을 지우고 얼마 후, 그녀는 다시 학도병 참전을 독려하는 연설을 하고 있어. 자신의 행동이 잘못된 일인 줄은 알지만 그에 대한 반성 없이 단순히 기억을 지워버림으로써 그녀는 잘못을 반복하게 돼.


사장은 기억 삭제 장치를 없애라는 설계자 윤 박사의 말을 듣지 않고 계속 경성 기억 극장을 운영하는 사람이지. 그는 나쁜 기억을 지우면 행복해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어. 여러 가지를 고려하지 못한, 옳지 않은 신념이지. 기억 삭제 장치는 일본군이 조선을 침략하고 만행을 저지른 기억들을 삭제하는 데 잘못 이용될 가능성이 있고, 실제로 그렇게 이용되었지. 사장을 통해 자신의 믿음만 고집하지 말고 객관적인 사실과 상황을 고려한 올바른 신념을 가져야 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어.


주인공이자 서술자(소설의 주인공인 ‘나’가 이야기를 서술하는 방식을 ‘1인칭 주인공 시점’이라고 해)인 덕구는 12살 소년으로, 엄마 병원비를 갚기 위해 독립운동가 수현을 밀고하고 그 기억을 지웠지. 하지만 나중에 모든 사실을 알았을 때 다시 기억을 지우는 대신 수현에게 자신의 잘못을 털어놓고 용서를 빌어.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덕구의 마음속 갈등과 주변 인물들과의 상호 작용이 잘 묘사돼 있어. 기억을 삭제할 수 있다는 판타지적 요소를 가지고 있으면서 이야기도 재미있고 삶의 교훈도 일깨우는 좋은 동화를 같이 읽을 수 있어서 기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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