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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백 Aug 15. 2023

씩씩한 아이에게 배웁니다.

모르는 사람에게 말 건네는 방법


나는 희한하게 모르는 사람에게 매우 취약하다. 지금 나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놀라는 일이지만 고등학생 때까지는 식당에서 주문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아쉬운 말은 더더욱 하지 못했다. 주문실수로 잘못 나온 음식은 그냥 먹기도 했고 반찬을 더 달라는 말은 공포특급이었다. 아직까지도 오며 가며 스치는 사람과는 눈을 잘 마주치지 못한다. 나의 입장을 어필하는 것 역시 여전히 서툴러서 항상 몇 보 물러난 상태에서 지고 시작한다.


그런데 아이들과 다니면서 놀라운 장면을 종종 발견하게 되는데 우리 애들은 모르는 사람과 심지어 어른에게 이야기하는데 거침이 없다는 것이다.


어린이박물관에서 기구 체험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데 앞에 있는 사람이 본인의 아이와 하염없이 이용을 하고 있었다. 슬슬 기다리가 지루해지면서 짜증이 밀려오는 찰나, 어디서 많이 듣던 목소리가 들렸다.


"도대체 몇 번을 해요오~"

대단이가 앞으로 가서 그 아저씨한테 하는 말이었다. 무려 미취학 아동 시절의 일이다. 나는 입이 떡 벌어졌고 아저씨는 눈을 피하며 자리도 피했다. 너무나 대단해서 대단하다고 이야기해 줬다.


내가 이전에 매우 두려워했던 것이 모르는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눈인사를 하는 세련된 신문화였다. 자고로 한국 사람은 땅만 보고 걸어야 하는 거 아니야? 하는 반발감도 들지만 아이들을 키우다보니 놀이터에서 완전 초면인 엄마들과 눈인사 정도는 껌으로 하는 경지에 올랐다. 에헴!

그러나 무방비로 동네 카페에 들어갔다가 입구에 파리지앵처럼 앉아있던 모델 같은 외국인 분이 나에게 눈인사를 한 순간, 너무나 당황한 나머지 눈을 피해 버린 것이 바로 얼마 전의 일이다. 아아아아아, 촌스럽다!!!


뽀뽀는 어느 외국인보다 싹싹하게 인사를 잘한다. 얼마나 잘하냐면 상대방이 자기에게 인사를 하는지 모르게 인사를 해서 뽀뽀의 귀여운 '안녕하세요'가 공허하게 휘발되기 일쑤다.

"힝~ 왜 내가 인사하는데 그냥 가?"

"뽀뽀야, 모르는 사람이랑은 눈이 마주치면 인사를 하는 거야. 그렇지 않으면 자기에게 말을 거는 건지 몰라."

라고 알려 주지만 '모르는 사람과 인사' 영역은 엄마보다 뽀뽀가 월등히 우수하다.


이렇게 낯선 사람 버벅이인 내가 두 아이의 엄마로 경력이 6년 차가 되기까지 여러 고비를 넘어왔다. 난이도가 낮은 '돈가스 식전 수프 하나만 더 주세요.' 레벨은 이제 척척 미션 클리어다. '학습지 선생님, 홍보용 선물 주세요' 레벨은 학습지 가입을 철판 깔고 거부해야 하기 때문에 매우 고난이도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미션을 시작해야 한다.


  


   

맥도날드같이 규격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은 오히려 마음의 부담이 적다. 패스트푸드 식당의 고객들은 어지간하면 직원에게 부가적으로 요청할 사항이 없다. 요즘은 주문도 키오스크로 한다.

대단이가 워낙 해피밀을 좋아해 한 달에 두 번 정도는 맥도날드를 방문하는데 케첩이 모자라면 대단이는 엄마에게 SOS를 요청하지도 않고 척척 앞으로 나가 "케첩 좀 더 주세요!"라고 씩씩하게 요청한다. 잘 자랐다, 잘 자랐어. 그래, 그렇게 엄마 도움 없이 알아서 하렴.


그런데 대단이가 해피밀 장난감을 비닐도 뜯지 않고 유심히 보더니 "우리는 1번을 시켰는데 이건 7번인데?"라고 하는 것이었다. 오잉, 그럴 리가? 7번은 8월 31일부터 선택할 수 있다고 했는데? 오늘은 8월 1X 일이잖아. 내가 장난감을 살필 겨를도 없이 대단이는 바로 오더데스크로 가더니 정말 씩씩하게 소리쳤다.


"저기요!! 이거 1번 아니고 7번이에요!!!"

그때 새삼 깨달았다. 저 정도로 크게 소리를 지르면 직원은 하던 일을 멈추고 온다는 것을. 나는 다시 한번 대단이에게 놀라움을 느꼈다.


직원은 잠시 대단이의 해피밀 토이를 들여다보더니 "이거 1번 맞아요." 하고는 본인의 자리로 다시 돌아갔다. 대단이는 너무나 황당해했다. 아무리 봐도 7번인데 1번이라니. 자기는 1번을 선택했는데 왜 1번을 안 주는 것이냐고.


예전의 나라면 아니 지금의 나 역시 나에게 크게 중요한 사항이 아니라면 잘못 도착한 7번을 가지고 돌아간다. 다시 말을 꺼내는데 번거로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번거로움이라고 애써 둘러대지만 사실은 딱 그만큼의 용기를 끌어올려야 한다. 누군가에게 쉬운 일이 누군가에게는 참 어려운 일일 수 있다. 그래도 아이가 원하는 1번 토이 대신 억울함을 가지고 집에 돌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 대단이에게는 쉽지만 엄마에게는 어려운 일. 하지만 아이의 목소리는 아무리 우렁차도 어른들의 세계에서 쉽게 묻히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작은 목소리라도 엄마가 내 봐야지.


나는 대단이의 장난감을 꼼꼼히 살펴봤다. 제품명에 분명히 7번의 상품명이 기재되어 있었다. 대단이는 옆에서 난리가 났지만 나는 맥도날드 직원이 하던 일을 마치기까지 기다렸다. 저녁 6시의 맥도날드 직원은 눈코뜰 새 없이 바쁘다.


"이거 진짜 7번이더라고요."

직원은 작은 한숨을 쉬며 "이게 날짜가 정해져서 나오는 거거든요."라고 했다.


나는 웃으면서 "네, 그런데 1번이 아니고 7번이네요."라고 말했다.


그제서야 직원은 대단이의 해피밀 토이를 눈에 힘을 주고 들여다보더니 매니저를 불러서 같이 데스크 밑의 해피밀 토이를 뒤집기 시작했다. 무슨 오류인지는 모르겠지만 8월 31일부터 제공된다는 7번 토이가 함께 섞여 있었나 보다.


엄마는 대단이에게 1번 토이를 전해 주었다. 엄마는 이제 더 이상 키 자라지 않는다. 그래도 아이를 위해서 낸 한 움큼의 용기가 엄마 마음의 키를 한 뼘 자라게 해 주었다. 어쨌든 이렇게 엄마도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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