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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마귀의밥 Nov 27. 2024

겨울산행

겨울산행

올해 첫눈
나뭇가지에 앉아있는 새

눈이와서 산행을 다녀왔다. 폭설이라 다른 사람은 한명도 보지못했지만 새를 세마리나 보았다. 새들이 주는 심리적 위안은 이렇게 큰 것이다.

능선에는 무릎까지 눈이 쌓여있어서 시간이 오래걸렸고 체력을 90프로쯤 쓴것같고 하산하고 큰길가로 내려오니 별이보였다. 역시나 사람은 없었다.

눈쌓인 산은 아름답고 신비롭고 웅장했지만 핸드폰 신호가 안잡히는데다 70프로대였던 밧데리가 영하에 바람까지불어 체감온도가 더 낮아지자 나가버려서 해가지고 별이보이는 저녁에 큰길가로 내려와서야 다시 켜져서 사진은 산행초반때 외에는 찍지못했다. 사실 산행초반부 이후로는 사진을 찍을만큼 여유롭지 못했다. 자칫 폭설이 내린 산에 해가지는데 탈출못할 위기에 처했던 것이다.

늘 예상하고는 있지만 눈쌓인 겨울산의 위용은 생각보다 더 대단했다. 체력을 이렇게 90프로쯤 써본일이 한 몇년쯤은 된것같고 저녁7시에 문명의 흔적인 큰도로로 나온게 다행이다싶을 정도였다. 등산로로 왔으면 아마 10시는 넘어서 산에서 나왔을것같고 해가질 무렵 갈림길에서 처음가보는 비등산로로 왔다. 갈림길의 지점 이름이 '**목이'였는데 목이라는건 험준한 태백산맥을 넘어다니던 옛날사람들의 길목이었을 것으로 추정해서 이쪽으로내려가면 분명 좀더빨리 길을 만날수있을것같았다.

인생이란 큰 산에서 그리고 실제로 꽤 큰 산에서 헤메인건 나로선 종종 있던일이라 이름만 믿고 길을 선택하는게 1~2분이내로 가능했던것같다. 살면서 선택은 그렇게 몇분안쪽으로 해야하는경우가 종종있다.

로버트프로스트의 가지않은길 the road not taken 이 생각남.

아무튼 모험적 길선택은 성공해서 위용을 자랑하는 겨울산에서 저녁무렵에 빠져나왔고 지금은 따뜻한 방에서 이불을 펴고 잘 준비를 하고있다. 스스로 선택했던 위기가 지나간 것이다.

느끼는바가 있었다. 인생의 고난과 위기는 종종 혼자서 해결해야하고 도움을 받게되는건 중요한 고비가 지나간 이후인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인생의 유일한 적이자 가장 강한 적인 자신을 극복해가는 과정이 유의미하긴 했지만 그와동시에 아무리 적이더라도 자신에게 잘해줘야한다. 돌아와 몸도 풀어주고 따뜻한 곳에 몸을 녹이고 꿀물도 마셔주고 위기 상황이 오더라도 자신을 믿어주는 것 등. 그리고 그 과정을 주변에 얼마간 공개하기도하는 것이다. 새들도 세번이나 자기모습을 보여줬는게 나도 세사람 정도(혹은 좀더)에게 오늘의 나의 모습을 보여줘야 자신을 보여주는데 인색하다는 말을 면할것만 같다.


오늘 겨울 산행은 좀힘들긴했지만 의미있었다. 정말 멋진 겨울산의 위용이나 눈쌓인 주목나무같은건 사진을 못찍고 기억에만 어렴풋이 남아있듯, 포착한 느낌과 의미도 일부에 불과하겠지만 기록에 남겨본다. 몸의 곳곳에서 통증이느껴진다. 얼른 자야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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