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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재복 Jul 29. 2023

그런 기다란 처마


그때도 소나기는 자주 내리고

바람도 심하게 불어오곤 했었다.

내 등 뒤에 얼마만큼 긴 처마가 있었는지,

아버지가 지워진 자리에 섰을 때야 알았다.




처마


봄에 박새 부부 세 들다 나가고

봄볕 피한 할머니 나물 팔다 가셨다

소나기에 낯 모르는 몇 사람 서 있다가 말문 트고

어느 날 밤 낙숫물처럼 점점이 슬픔도 쏟아놓고 갔다


내 것인데 다른 이들이 잠시 머무는

그런 기다란 처마






이제 이 도시의 건물엔 처마가 없다.

높은 꼭대기층 정치인처럼 제 눈가림만 한 처마만 있거나

아예 없다.


처마 같은 마음 가진 사람도 없다,

제 한쪽 어깨를 비에게 내주지 않는 사람에게 우산을 맡길 수 없듯이

처마 없는 사람에게 내 생을 기댈 수는 없다. 

당신은,


누구에게 처마를 내어주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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