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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재복 Aug 01. 2023

또 아카시아 피었다

화물차 기사는 말이 고프다.

초행길이라면 내비게이션 목소리라도 듣지만, 장거리 정기 운행은 그마저도 들리지 않는다.

기꺼이 들러주는 사람만 있으면 공장에 수리 들어온 30분이면 일생을 다 쏟아놓기도 한다.

목젖에 엉켜있는 간지러운 거미줄이 지워질 때까지  말이 끊이지 않는다

그래서 커피 마시러 내려와 있던 뒷집 회장님은 이 근처 운수회사의 노선과 우를 죄다 외우다시피 했다.

나이 든 차주들은 어깨에 힘주고 잘 나가던 왕년부터 병 걸려 직업 바꾸게 된 사연이나 이혼한 얘기도 줄줄이 나오고, 젊은 기사들은 아직 간을 못 본 희망과 도망치고 픈 어설픈 회의를 같이 얘기하기도 한다.

어떤 일은 사람을 외로움 속으로 밀어 넣는다.

이 일 또한 목베개처럼 뒤통수에 붙어있는 외로움이 제일 힘들게 한다.




어떤 화물차



그는 멈췄다

어느새 아카시아 피어있다

차창을 내리자

짙은 향기가 훅 밀려든다

시동을 끄고 깜깜한 숲을 올려다봐도

아카시아 나무는 보이지 않는다

꽃피는 것도 못 봤다

수많은 봄날은 언제 다 지나간 것일까?

시트를 밀고 그는 눕는다

날이 밝으려면 아직 두어 시간

좀 자 두어야 한다

고속도로로 밤을 건너가는 자동차들이

밤공기 삼켰다 뱉는 소리

어둠 밟아 으깨는 소리

소란하다 길가의 잠은 그 소란함에 익숙한 법

어제의 토막잠을 기억하는 몸은 한없이 가라앉는데

마음은 자꾸만 잠 밖으로 떠오른다


밤새 앞질러온 그의 시간은 여기서 멈춘다

일상의 시계가 떠올라 출근을 하면

그제야 하차를 할 수 있다

거기서 출발하면 상차 시간은 늘 촉박하다

시간을 앞서왔다가 시간을 뒤쫓아 달린다

백색 점선은 초침처럼 그의 가슴을 빠르게 훑으며 지나가고

실선은 그를 검은 아스팔트 안에 가둔다

차선을 벗어나 보름 만에 들린 집에서

돌쟁이 아들은 그에게 안겨 울음을 터뜨렸다

겨드랑이 밑으로 끼어든 차가운 손 때문이라고

아내는 말했지만,

그치지 않는 아들의 억울한 울음은 그를 낯설게 했다


아! 여기는 어디인가?

길 안의 시간과 길 밖의 시간은 늘 어긋나

그는 다른 시간에 갇혀 있다

잠이 오지 않는다

아카시아 향기......

너무 눅눅한 아카시아 향기 때문이다

울컥,

내내 삼켰던 향기를 그는 길 위에 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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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욱신욱신 곪아 있을 때,

가시 있는 나무의 꽃향기는

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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