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기로 듣는 소소한 이야기 #1
나에게 처음 진료를 신청한 환자분이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온다.
환자가 내 앞으로 걸어와 앉아야 하는 진찰 의자까지는 약 3-4미터 남짓 되는 거리가 있다.
시간은 약 10초 이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이 거리를 환자가 걸어 들어올 때, 나는 환자를 유심히 관찰하게 된다.
휠체어를 타고 들어오는지 아니면 스스로 걸어올 수 있는지, 걸을 때 다리를 절거나 발을 디딜 때 불편하게 걷지는 않는지, 불편하게 걷는다면 어느 동작에서 불편해하는지, 무릎 관절이 안쪽으로 휘어서 'O'자가 되지는 않았는지, 신발은 어떤 것을 신었는지, 보호자가 부축해서 들어와야 하는 정도인지, 지팡이를 짚고 오시는지, 움직일 때마다 얼굴 표정이 일그러지는지, 아니면 편안한 얼굴로 걸어오시는지 관찰한다.
환자가 의자에 앉는 과정도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순간이다.
앉을 때 힘이 들어가는 관절에 통증이 있는 분들은 양손으로 의자 옆 손잡이를 짚고 의지해서 앉기 마련이고, 그렇지 않은 분들은 편안하게 앉으신다. 그래서 혹시나 의자의 손잡이를 의지해서 앉다가 의자가 뒤로 밀리면서 크게 다치실 수도 있기 때문에, 바퀴가 달리지 않은 견고하고 약간 묵직한 의자를 준비해 놓아야만 한다.
불편하고 아픈 관절은 환자가 무의식적으로 그 부분을 손으로 감싸거나 가리게 된다.
그러므로 환자의 손의 위치도 중요하다.
손가락 관절이 불편한 분들은 대부분 반지를 끼지 않는다. 관절이 붓게 되면 반지가 손가락을 옥죄어 더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손가락 관절이 부어서 아팠던 환자가 어느 날 방문했을 때 예쁜 반지를 끼고 다소곳이 무릎 위에 손을 얹고 앉아있는다면, 그것은 그동안 증상이 많이 호전되었다는 중요한 표시이기도 하다.
또한 환자가 구부정하게 앉아 있는지 편안하게 앉아 있는지, 오랜 기간 의자에 한 자세로 앉아 있을 수 있는지, 아니면 수시로 자세를 바꾸면서 불편하게 앉아있는지도 눈여겨보아야 한다.
허리가 많이 아프신 경우에는 앉아있는 것보다 서서 진료를 받는 것이 더 편하다고 하는 분들도 계신다.
환자의 손과 발을 비롯하여 여러 관절의 변형된 모양을 관찰하거나 피부의 색깔과 온도, 촉촉하거나 거친 정도를 파악하는 것도 무척이나 중요한 요소이다.
손가락이 부어 있어도 열이 나는 관절과 그렇지 않은 관절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직업이 무엇이냐고 종종 환자분에게 물어보곤 하는데, 대부분 그 직업의 특성이 고스란히 관절이나 피부에 묻어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환자분의 손을 만져보고 진찰한다는 것은 한 사람의 인생을 담은 시간의 기록들을 하나씩 열어보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환자가 직접 말하지 않아도 그 굵어지고 거칠어진 손가락 마디가, 두껍게 변하고 갈라진 손톱이, 많은 이야기들을 말없이 나에게 전해준다.
그래서 마치 패션쇼를 할 때 모델들이 런웨이를 걸으며 그 옷을 객석에 있는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과 같이,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환자가 진찰실 문을 열고 의자에 앉을 때까지, 환자와 의사의 대화가 시작되기 전부터 많은 정보들이 의사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이 정보들은 환자가 말로 전달해 주는 주관적인 표현들보다 더 객관적이고 진실된 것으로서, 환자가 스스로의 통증 정도를 잘 표현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의사는 환자의 행동을 잘 관찰함으로써 부족한 정보들을 보충하여 종합적으로 평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직전 환자의 차트를 정리하느라 컴퓨터 모니터에 시선이 고정되어 문을 열고 들어오는 새로운 환자의 첫 순간을 놓치게 되는 실수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아주 중요하지만, 바쁘게 진료를 해야 하는 의사들이 가장 많이 저지르는 실수 중 하나이다.
그 순간을 의사가 잘 포착할 수만 있다면, 오히려 진료시간이 짧더라도 더 알차게 되는 것이다.
이미 많은 정보를 환자가 말하지 않아도 알아챈 의사는 더욱 편안한 마음으로 환자를 진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환자의 겉으로 나타난 모습을 등한히 여기면 환자의 마음도 얻을 수 없다.
환자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통증을 자신보다 더 깊이, 더 정확하게 알아차리고 이해하는 의사를 그 누가 신뢰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마도 이런 진찰 버릇(?)은 말도 통하지 않고 변변한 의료장비나 시설이 없이 오직 청진기와 펜 라이트 하나로 환자를 보아야만 했던 오지에서의 의료봉사 경험 때문일지도 모른다.
의사로서 가질 수밖에 없었던 그 막막함과 두려움 속에서 ‘오 주님. 제발 도와주세요!’를 수없이 되뇌며 습득한 방법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사람의 깊은 사정까지 한눈에 다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이 없다. 그러니 속사정(?)을 알기 위해서 X-ray 촬영도 필요하고 CT나 MRI도 동원하는 게 아니던가. 하지만 예수님의 마음을 품은 의사라면 그 어느 하나도 소홀히 여길 수는 없을 것이다.
오늘도 매의 눈으로
그러나 매섭지 않고 따뜻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