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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니홉 Jul 13. 2024

회식 자리에서 나는 '꼰대'였다.

오랜만에 하는 전체 회식 자리에서 '노래해! 노래해!'를 외치는 부장님

  직장생활을 하면서 회식은 무슨 의미의 행사일까? 평소 얼굴만 보고 지나치던 사람들과 술 한 잔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이다. 예전에는 회식자리에 학교의 모든 직원이 모이면, 급식소 사람들에게도 술 한 잔을 권하며 감사의 말씀을 전하곤 했다.

  "제가 이때 아니면 언제 술 한 잔 따라드리겠습니까?"

  하면서 이 자리, 저 자리를 옮겨 다니며 술을 권하고, 술을 받아먹고는 했었다.


  코로나 이후로는 이러한 행사가 사라졌다. 많은 인원이 다 같이 모이는 행사도 하지 않을뿐더러, 간혹 모이더라도 소수의 인원이 모인다. 그리고 잔을 권하는 일은 이젠 하지 않는다. 내 잔의 술을 홀짝 마시고, 상대방에게 나의 술잔을 드리는 일은 이제 과거로 사라진 술문화이다. 어찌 보면 그게 맞는 것 같다. 같은 술잔을 여러 명이 입을 대는 것은 위생적이지 못하다. 그리고 그렇게 술을 권하면서 먹다 보면 억지로 술을 먹는 경우도 생긴다. 술은 자기 주량껏, 자기 원하는 만큼 먹는 것이 좋다.


  전체 회식을 거의 하지 않다가 정말 오랜만에 전체 회식 자리가 생겼다. 학교에 새로 오는 사람, 떠나는 사람이 있고, 학기말이라 겸사겸사 전체 회식 자리가 마련되었다. 소고기를 구워 먹는 식당에 모든 직원들이 모였다. 오랜만에 다들 모여서인지, 소고기를 먹어서인지 얼굴이 밝다. 술을 먹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정말 술을 좋아하거나, 자기 차를 몰고 오지 않은 사람들만 술을 먹는다. 예전의 나였으면 술을 먹었겠지만, 오늘은 술을 안 먹고 음료수를 먹을 결심을 했다.


  약속시간이 되어 학교 직원들이 모두 모였다. 동학년끼리, 친한 사람들끼리 같이 테이블에 앉았다. 밑반찬과 숯불이 들어오고, 소고기가 담긴 접시를 드디어 영접하는 순간이다. 이 식당은 부챗살 맛집이다. 오랜만에 실컷 부챗살을 먹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설렌다. 내 돈 내고 먹지 않으니, 부담도 없다. 부족하면 눈치껏 좀 더 시키면 되고, 옆의 테이블 접시의 고기를 살짝 우리 쪽 화로에 올려도 된다.


출처: 블로그, None

  나는 소고기에는 정말 진심이다. 소고기를 구울 때 온 신경을 집중하여 굽는다. 고기를 많이 올리지 않고, 적정한 양을 구워서 우리 테이블 사람들 쪽으로 배분하며 먹었다. 먹을 동안 또 몇 점을 올려서 먹는 것이 끊어지지 않게 소고기를 굽는다. 우리 테이블의 동학년 선생님들이 나의 고기 굽는 솜씨를 칭찬하신다.

  "어쩜 이리도 고기를 맛있게 구우세요!"

  "좀 먹으면서 구우세요. 고기 굽는다고 먹지도 못하는 거 아니에요?"


  보통 가족끼리 고기를 구워 먹으러 가면 보석 같은 사람은 둘째를 먹이고, 나는 고기를 굽는다. 그래서 고기를 구우면서 짬짬이 먹는 것을 잘한다. 다 구워진 고기를 불판 변두리로 빼면서 다시 새 고기를 올림과 동시에 내 입에도 쌈을 싸서 넣는 일을 기계적으로 할 수 있다. 내 주변에서 고기를 먹는 동학년 선생님들이 나보고 손이 정말 빠르다면서, 어떻게 고기를 구우면서 잘 챙겨 먹냐며 신기해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고기 굽기에 내공이 쌓였나 보다. 고기 굽기의 달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우쭐해진다.


  맛있는 고기도 많이 먹었겠다, 칭찬도 들었겠다, 밥을 먹일 애들도 옆에 없겠다, 내 기분이 한컷 날아오른다. 오랜만에 전체 회식을 하니 옛날 생각도 나서 내 나름 흥에 겨워져 있다. 실컷 고기로 배를 채우고 있는데, 교감선생님께서 오늘의 행사를 진행하신다. 학교를 떠날 사람을 위한 석별의 인사, 학교에 새로 온 사람을 위한 환영의 인사를 차례로 듣는다. 이번에 행정실에 신규 직원이 왔다면서 소개를 하신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앳된 얼굴의 신규직원이다. 정말 파릇파릇한 청춘이 묻어나는 얼굴이다.


  "다음으로 행정실에 새로 오신 새 식구를 소개하겠습니다. 앞으로 나와주세요."

  그 신규직원은 수줍은 듯, 머뭇머뭇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고 자기소개를 한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발령받은 000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 상황 속에서 내가 흥에 겨웠는지, 예전에 주로 하던 멘트를 나도 모르게 뱉고 있다.

  "노래해! 노래해!"

  순간 신규직원의 표정이 급 어두워지고, 안절부절못한다. 교감선생님께서는 '하하하, 자리로 돌아가셔요.'라 말하시며 신규직원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주신다.


출처: 블로그, 세종토탈골프클럽

  나의 경솔한 말과 행동이 그 신규직원에게 어떻게 비췄을지 생각하게 된다. 안 그래도 어색한 직장과 사람들, 그리고 가시방석인 전체 회식 자리인데, 자기소개를 하라고 한다. 일어나서 인사를 하기는 했는데, 영 어색하다. 그 와중에 저기 멀리서 '노래해!, 노래해!'를 외치는 한 얼굴 못 생긴, 머리모양이 이상한 남선생님이 있다. 참 좌불안석이다. 다행히 교감선생님이 자기 자리로 돌아가라고 하신다. '아! 이것이 그 말로만 듣던 사회생활인가!' 하면서 기분이 급 우울해졌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그 신규직원은 자신의 친구들과 모인 자리에서 이야기꽃을 피울 때 이런 말을 주고받을 것이다.

  "있잖아. 새 학교에 갔는데, 전체 회식을 했어. 그런데 한 못 생긴 남자선생님이 나보고 노래하라면서, 우와, 기가 막혀!"

  "완전 꼰대네. 꼰대! 요새도 그런 사람이 있나?"

  "그러게. 학교에 가니 별 희한하게 생긴 늙은 선생님이 그런 행동을 아직도 하데."

  나의 경솔한 그 언행을 안주삼아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겠지. 그리고 그 순간 나의 귀가 간지러울 것 같다.


  이제는 회식자리에서 그런 장난을 하면 안 되는 나이가 되었나 싶다. 내가 만약 이십 대 후반? 삼십 대 초반 정도였다면 귀엽게 봐주었을까? 나보다 몇 살 어린 사람에게 장난을 치는 젊은 청년으로 보였을까? 나이 사십 넘게 넘고는 그런 발언을 하지 말아야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순간이었다. 이제는 나는 더 이상 회식자리에서 그 말을 꺼내지 않을 것이다.

  "노래해! 노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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