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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니홉 Jul 19. 2024

너무나도 어설펐던 첫 제자와의 만남

훌쩍 커서 애엄마가 되어 인사하는 제자에게 반말? 존댓말?

  우리 가족은 모두 '초밥'을 좋아한다. 우리 부부가 좋아해서 먹다 보니, 아이들도 초밥이라는 음식을 좋아하고 잘 먹는다. 사실 어린아이가 회나 생선을 좋아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 집 애들은 생선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 '스시로'라는 회전초밥집에 종종 간다. 그곳에 가면 자기가 먹고 싶은 초밥을 마음껏 먹을 수 있어 다들 만족도가 높다. 밥을 다 먹고 디저트도 자기가 먹고 싶은 것을 골라서 먹는다. 둘째는 대롱대롱 아이스크림을 먹고, 둥근 통을 꼭 씻어서 가져가자고 한다. 이번 주말 점심을 먹으러 오랜만에 '스시로'에 갔다.


  우리 일행은 종업원이 정해준 자리에 앉아 초밥 먹을 준비를 한다. 장국을 떠 오고, 간장을 붓고, 자기가 먹고 싶은 초밥을 태블릿으로 주문한다. 주말이라 그런지, 손님이 많다. 초밥을 먹다가 저기 꽤 떨어진 테이블에 유모차가 보인다. 유모차에 아기를 태우고 젊은 부부가 초밥을 먹고 있다.

  '요즘, 참 아기 보기 힘드네. 저 두 부부는 육아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러 초밥을 먹으러 왔군.'

  이런 생각을 하며 초밥을 하나씩 입에 넣고 오물오물 먹는다.


출처: 블로그, DALA

  그 부부가 식사를 마쳤는지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나려고 한다. 여자가 아기를 챙기고, 남자가 주섬주섬 짐을 챙긴다. '나도 참 저럴 때가 있었지. 아기 데리고 나오면 짐이 한가득이었지.' 지금 앞에서 계란초밥을 즐겁게 먹고 있는 둘째를 보니 감회가 새롭다. 그 두 부부가 짐을 다 정리하고 우리 테이블 옆을 지나다가 잠시 멈춘다.

  "저기, 저희 와이프가 초등학교 때 담임선생님이셨다고 인사드리고 싶다고 하네요."

  지나가다가 멈춘 후, 젊은 남자가 나에게 말을 건다.


  앗! 애 엄마의 얼굴을 보니, 누구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 예... 누구... 인지... 잘..."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예전에 00 초등학교 5학년 1반이었어요. 그때가 2006년인가, 7년인가."

  "아... 맞다! 그래... 너... 이름이? 미안 잘 기억이 안 나네... 요."

  "주영이요. 그때는 안경 끼고 있었는데. 좀 달라지긴 했죠."

  나의 머릿속 깊은 곳에 2006년, 2007년 자료를 꺼내봐도 사실 잘 기억이 안 났다. 정말 미안하게.


  "그래... 요... 2006년이면 처음 발령받아 간 그 00 초등학교 때구나. 우리 반 애들... 중..."

  그때 그 제자의 남편이 한 마디 거든다.

  "봐. 선생님은 지금까지 수많은 제자를 만나서 잘 기억 못 할 거라 했잖아."

  제자가 반가운 표정과 미소로 나에게 한 마디 한다.

  "선생님, 그때랑 지금이랑 얼굴이 하나도 안 변하셨어요. 그대로셔요."

  "하... 하... 그래요? 그쪽은 이제 애 엄마가 되었군요..."


  옆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보석 같은 사람이 나에게 말한다.

  "길 막고 그렇게 이야기하지 말고, 저쪽에 가서 잠시 이야기하고 와."

  그런데 그 순간, '내가 일어나서 카운터 쪽 넓은 공간으로 나가면 이 제자와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아야 하나? 정말 어색한데. 나를 알아보고 인사해 준 것은 고마운데, 내가 기억이 안 나니 참 미안한데.' 이런 생각들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대화를 이어 나갔다.


  "선생님 애들은 이제 다 컸네요."

  "그래요. 아기 키운다고 고생이 많겠어요. 애 잘 키우... 시고요."

  "식사 맛있게 하세요."

  "그래요. 잘 가... 세요."

  그렇게 제자와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갑작스러운 첫 제자와의 만남. 식사하는 내내 잘 대처하지 못한 찝찝함에 계속 생각이 났다. 이제 나도 나이를 먹어서, 첫 제자가 어른이 되었구나! 그때 애들이 12살이라면, 지금 17년이 흘렀으니, 29살. 결혼하고 애도 낳아 키울 나이군.


  갑작스럽게 만난 첫 제자. 그 아이, 아니 그 어른, 아니 그분, 아니 그 사람, 아니 그 제자를 대함에 있어서 너무나도 부자연스럽고, 어설펐던 내가 부끄러웠다. 누구인지 잘 기억이 안 나도 아는 척을 해주는 것이 맞았을 텐데, 좀 더 반가운 표정으로 환대하는 것이 좋았을 텐데. 와이프의 말처럼 저쪽으로 가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식사값을 내가 계산해 주면 더 좋았을까? 아기에게 돈이라도 오만 원 쥐어줬어야 하나? 여러 가지 생각들이 내 머릿속에 가득 찬다.


  나이가 드니, 이런 일도 생기는구나! 제자를 대하는 내 모습이 너무나도 어설펐어. 그런데 반말을 해야 해? 경어를 써야 해? 제자라 생각하면 반말이 맞는데, 낯선 어른에게 막무가내로 반말을 쓰는 것도 좀 그렇고. 아니야. 반말을 쓰는 것이 맞는 것 같아. 그래야 그 제자도 자기를 친근하게 느낀다고 생각할 테니. 아니야. 그래도 이제는 한 아이의 엄마이고, 다 큰 어른인데, 아무리 옛 스승이라고 해도 다짜고짜 반말을 하면 싫어할 수도 있어. 내 지갑에는 지금 현금이 없는데. 이런 상황을 위해서 평소에 현금을 십만 원 정도는 가지고 다녀야 하나? 오만 원 한 장, 일만 원 다섯 장 정도로 해서.


출처: 블로그, 100%진실은 있어도 100%거짓은 없다

  그때의 시간으로 되돌릴 수는 없겠지만, 나의 상상력으로 다시 그때로 돌아가 그 상황을 재현해 본다.

  "저기, 저희 와이프가 초등학교 때 담임선생님이셨다고 인사드리고 싶다고 하네요."

  "아! 예. 안녕하세요? 누구인지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참 반갑네요. 이렇게 인사해 줘서 고마워요."

  "선생님, 저 예전에 00 초등학교, 2007년 5학년 1반 주영이에요."

  "아! 그래! 생각났다! 우와, 반가워. 예쁘게 잘 컸네. 이제 애엄마도 되었네."

   하면서 좀 능청스럽게 아는 척을 하며, 자연스러운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저쪽 카운터 쪽으로 이동한다.

  "이야. 아기 정말 귀엽다. 엄마랑 쏙 닮았네. 애 키운다고 고생이 많제?"

  "헤헤. 아니에요. 선생님은 좋겠어요. 애 둘이 다 키웠네요."

  "하하. 금방 클 거야. 힘내고."

  내가 지갑을 꺼내서 그 부부가 먹은 초밥값을 계산하려 한다.

  "아이고, 아니에요. 선생님. 이러면 저희가 너무 부담스럽잖아요."

  "아니야. 오랜만에 봤는데, 내가 이 정도는 해주고 싶어서. 담에 또 보자."

  "감사합니다. 선생님. 건강하게 잘 지내세요."

  "그래 잘 가."

  하고 나는 다시 나의 자리로 돌아온다. 정말 쿨하고 멋진 옛 스승의 모습이다.


  마흔 살이 넘으니, 챙김을 받는 나이에서 이제는 주변을 챙기는 나이로 점점 변함을 느낀다. 직장에서도 선배로서 후배를 챙기는 교사가 되고 싶고, 방금처럼 옛 제자를 만나도 챙겨줄 수 있는 스승이 되고 싶다. 그런데 그것이 마음의 준비와 연습이 필요한 것 같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훅 들어오니, 너무나도 당황스럽다. 언제라도 옛 제자를 만날 수 있다 생각하고, 지갑에는 현금을 조금 넣어 다니고, 자연스럽게 안부를 물으며 반말을 하는 연습을 해야겠다. 나이가 드니, 이런 상황을 대처하는 공부도 필요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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