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후니홉 Nov 04. 2024

초등교사는 '만능 기획자'

학예회를 준비하는 초등교사는 뭐든지 가능하다.

  11월, 12월이 되면 초등학교에서는 학예발표회 행사를 한다. 아이들의 끼를 뽐낼 수 있는 시간. 그날 하루의 행사를 위하여 준비과정에서 시간과 노력이 상당히 많이 든다. 학예회를 기획하고 준비하는 선생님과 학생은 각자의 스트레스를 받는다. 어떻게든 시간은 흘러 학예회 행사일이 다가오고, 그날을 무사히 보내면 '또 한 고비를 넘겼네!' 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학예회를 어떤 형태로 보여줄지 학기 초에 방향을 잡는다. 전체학예회를 할지, 반별학예회를 할지에 따라 교사가 준비하는 것들이 완전히 달라진다. 전체학예회는 학년별로 몇 개의 공연을 준비하여 강당에서 공연을 하는 것이다. 동학년에서 의논하여 춤, 연극, 패션쇼, 노래 등 공연 장르를 정하고 그 학년의 아이들 희망을 받아 적정히 배분하고 연습한다. 반별학예회는 각 반에서 공연을 한다. 반 아이들에게 공연 신청을 받고, 공연 순서를 짜고 교실을 꾸민다. 담임은 공연의 모든 것을 관여하고 총괄 감독을 한다.


  담임은 전체학예회와 반별학예회 둘 중에서 무엇을 더 선호할까? 전체학예회를 하면 하나의 종목을 맡아 아이들을 지도한다. 체육관에서 리허설도 하고 무대 입퇴장도 연습한다. 반별학예회를 하면 소외되는 아이가 없도록 공연을 조율한다. 공연의 순서를 정하고, 각 순서를 소개할 프레젠테이션을 만든다. 학예회 분위기가 나도록 교실을 꾸민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학부모의 참석 유무이다. 학부모를 초청하면 더욱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내가 지금까지 교직생활을 하면서 전체학예회 때 올렸던 작품(?) 중 기억에 남는 몇 가지를 적어본다. 4학년 담임을 할 때 학부모 초청 전체학예회를 하였다. 담임별로 종목을 맡아 지도하여 무대에 올렸다. 나는 당시 특출 난 재능이 없는 다수의 아이들을 모아 '산도깨비' 합창을 준비했다. 인원이 70명 정도 된 것 같다. 70명의 아이들을 세 줄로 정렬하여 무대 입퇴장을 연습하고, 노래를 연습시키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내가 합창 지도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음악에 소질이 있는 것도 아닌데 합창이라니!


  '산도깨비' 노래의 고음 부분에서 아이들은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고, 노래 연습을 무한 반복한다. 무대에서 신속하게 정렬하고 퇴장하는 연습을 될 때까지 한다. 아이들도 나도 이제 '산도깨비' 노래는 신물이 난다. 그렇게 맹렬히 연습하고 학예회 당일이 된다. 여자 아이들은 얼굴에 화장도 조금 하고 온다. 그때는 총각이라 몰랐었다. 부모는 수많은 아이들 중에서도 반짝반짝 빛나는 자녀의 얼굴을 찾아낼 수 있다는 사실을.


  많은 아이들을 데리고 '산도깨비' 합창을 지도하여 학예회날 공연을 무사히 마쳤다. 노래를 마치고 내려오는 아이들도 뿌듯한 얼굴이다. 초임시절 그 공연 준비를 어떻게 했나 싶다. 지금도 '산도깨비'노래를 들으면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수많은 아이들이 '걸음아~ 날 살려라~' 부분에서 악을 쓰고 샤우팅 하는 장면이 생생하다. 노래 가사에 '꽁지 빠지게 도망갔네~'처럼 학예회 준비 안 하고 내가 꽁지 빠지게 도망가고 싶었다.


출처: 블로그, paul6303님의 블로그

  결혼 후 신혼집에서 근무라는 학교까지 출퇴근이 한 시간 걸렸다. 다행히 옆 반 선생님이 같은 동네에 살아서, 둘이 매일 같이 카풀을 하여 출근하였다. 일주일씩 교대로 운전하며 출퇴근을 같이 하니, 자연히 대화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하루에 2시간을 오롯이 둘이서 이야기하였다. 당시 그 형님의 아들도 우리 애와 나이가 비슷하여 공감대가 많이 생겨, 육아 관련, 결혼 생활 관련 주제로 정보를 공유했다. 업무 관련, 반의 문제아 관련 등 학교 이야기도 많이 했다. 우리는 오가는 차 안에서 학예회 연극 대본을 구상하여 짰다.


  12월 크리스마스 즈음 학예회를 하였다. 우린 '스크루지' 연극을 기획하였다. 구두쇠 스크루지가 죽어서 과거, 현재, 미래의 유령을 만나 자신과 연관된 장면들을 보고 개과천선하여 착한 사람이 되는 그 이야기. 당시 유행하던 개그콘서트의 재미있는 대사들도 넣고, 장면 연출을 어떻게 할지, 등장인물은 누구로 할지 등을 세세히 의논하였다. 대본이 완성되고 나서는 배우들을 캐스팅하였다. 각 반에 끼가 있고 무대에서 오버 액션이 가능한 아이들로. 각자 역할을 정해주고 행동과 동선을 알려주고 연습시킨다.


  배우들이 대사를 하면서 행동까지 하는 것은 무리라 판단하여, 무대에서 배우들이 연기하는 동안 무대 밑에서 성우들이 유선마이크를 잡고 대사를 한다. 국어시간에 대화글을 맛깔나게 읽는 아이들로 섭외하여 각자 역할을 알려주고, 자연스럽게 말하도록 수십 번, 수백 번 반복하여 지도한다. 내가 공연 기획자가 된 기분이다. 배우 캐스팅에, 연기 지도에, 대사 지도까지. 학창 시절 교회를 잠시 다니면서 연극을 했던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참 사람 일은 모를 일이다.


  리허설 때 교장선생님께서 연극 공연을 보시고 아주 흡족해하신다. 그러면서 한 마디 덧붙인다.

  "마지막 부분에 다 같이 캐럴에 맞춰 춤추고 노래하면 참 좋겠네요."

  참 마법 같은 말이다. 교장선생님이 마법의 주문을 외우니 그것이 현실로 이루어진다. 급하게 캐럴곡을 정하고, 커튼콜처럼 간단한 안무도 짜서 넣었다. '페리스나비다'에 맞추어 마지막 무대를 장식한다. 그렇게 연극을 한 번 준비해 보면서 옆 반 형님과 나는 굉장한 자부심을 느꼈다. 짧은 시간에 집중적으로 대본을 짜고, 배역을 정하고 연출을 하면서, 불가능을 가능하게 한 느낌을 받았다.


  반별학예회를 할 때 담임은 총괄 책임자이다. 아이들이 신청한 공연을 종합하여 공연 순서를 짠다. 반회장, 부회장에게 사회자 임무를 맡긴다. 공연 순서 프레젠테이션을 만들어 화면으로 띄워준다. 학예회 관련 현수막을 붙이고 교실을 꾸민다. 학부모가 와서 공연을 본다면 공연의 완성도와 진행의 매끄러움에 더욱 신경을 쓴다. 아이들끼리 학예회를 하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렇게 각각의 순서에 맞게 공연을 하고 관람을 하며 학예회 시간을 가진다. 오후에 아이들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하여 과자파티를 준비한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준비한 공연을 마음껏 펼치고, 과자를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학예회를 준비하는 선생님은 정말 고생이 많다. 소외되는 아이가 없이 모두 공연을 하게 해야 하고, 학예회의 하나부터 열까지 신경을 써야 한다. 학예회 행사 계획, 기획, 소품 준비, 진행, 마무리까지. 학부모를 초청하는 학예회를 한다면 더욱더 치밀한 준비를 해야 한다. 학예회 당일이 되어 행사가 시작되면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 마지막 공연을 향해 달려간다. 학예회를 마치면 약간의 허무함과 허탈함이 몰려온다. 그렇게 또 한 고비를 넘기며 다음날 출근을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들을 챙겨주다가 마음의 상처를 입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