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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다나 Jun 04. 2023

[에세이] 지루한 일상이 지속될 수 있다는 안도감

5월 31일 오전 6시 32분에 나는 죽었다 살아났다


2023년 5월의 마지막 날, 오전 6시 32분에 위협적이면서 귀가 찢어질 듯 시끄러운 소리가 온 집안을 뒤덮었다. 그 소리에 잠든 지 2시간도 채 안 돼, 순간적으로 놀라 벌떡 누워있던 상체가 스프링처럼 튀어 올랐다. 


소리의 주범은 '재난 문자'였다. 언제부터인가 재난 문자는 하루에 수십 통이 오고, 그중 대부분은 실종과 관련된 것으로 일상생활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만큼 무시하기 일 수였다. 하지만, 최근 '종로구에서 지진'이 일어났다는 오류성 재난 문자가 왔을 때 핸드폰은 거대한 진동 소리를 냈고, 당시 놀랐던 감각이 남아있는 만큼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핸드폰을 급하게 낚아채 화면을 켰다. 


화면에 가장 먼저 들어온 단어는 "경계경보 발령"이었다. 순간 든 생각은 "이게 뭐지?"였다. 급하게 네이버에 검색을 해봤는데, 한순간에 잠이 달아나는 화면이 압도했다. 전쟁이 일어났다는 생각에 내가 가족들에게 소리 지르듯이 외친 말은 "일어나!!! 빨리 짐싸!! 옷 입어!!"였다. 손이 덜덜 떨리며 자세한 내막을 알기 위해 네이버에 다시 접속했는데, 순간 네이버 창이 먹통이 되며 와이파이와 데이터가 끊긴 듯한 상황에 마주하여 정말 전쟁이 일어났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영화나 역사책에서 봤던 전쟁이 머릿속에 그려지며 꿈에서조차 일어나리라 상상하지 못했던 현재임을 느꼈다. 바로 텔레비전을 켜고 5번, 11번, 15번, 7번을 틀어봤지만, 이것과 관련해 송출을 하는 채널은 9번이 유일했다.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집 밖에서는 확성기를 통해 사이렌이 울리고 방송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파트 단지는 조용했고, 경비실에 연락을 취했어도 정부로부터 아무런 지침을 받지 못했다는 말뿐이었다. 시끄러운 바깥과 대비되는 무서울 정도로 조용한 내부가 엄청나게 이질적이면서 공포스럽게 다가왔다. 


패닉상태가 되어,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무엇을 챙겨야 하지? 옷은 어떻게 입어야 하지? 어디로 대피해야 하지? 머릿속이 웅웅 울리며 질문만 가득할 뿐 아무것도 답할 수 없었다. 네이버 창을 계속해서 새로고침해도, 텔레비전을 봐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트위터에 접속했으나 마찬가지였다. 일단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옷만 입은 채 티비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리고 20분이 지났을까... 다시 재난 문자가 울리며 '오발송'이라는 문자가 왔다. 그 순간의 감정은 짜증과 화남도 있었지만,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 평화로운 일상을 지속해도 된다는 안도감과 감사함이었다. 곧이어 '경보해제' 문자가 왔다. 부모님은 평상시처럼 출근했고, 나는 다시 침대에 누웠다. 하지만 심장이 너무나도 쿵쾅거려 잠을 쉽사리 다시 이룰 수 없었다. 너무나도 익숙한 이불의 촉감이 너무나도 낯설게 느껴졌고, 침대 위에 누워있는 나의 육신이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학교 갈 시간이 되어 다시 눈을 떴다. 새벽에 혼비백산했던 탓인지 너무나 피곤해서 겨우 눈이 떠졌다. 샤워를 하고 운전을 해서 학교로 향하는 길. 여전히 차는 막히고 피곤해서 평상시 같았으면 짜증을 내며 갔겠지만, 오늘은 학교를 가고 내 삶을 어제와 동일하게 이어 나갈 수 있음에 단지 감사했다. 도착한 학교에는 새가 지저귀고 있었고, 사람들은 너무나도 평온했다. 마치 꿈을 꾼 것처럼 말이다. 수업 전에 당연히 언급될 줄 알았던 이 사건은 한마디 말조차 없이 시작했고 오늘 새벽 내가 느꼈던 끔찍한 감정은 어디에도 없는 듯하게 느껴졌다. 수업이 끝난 후 친구들에게 연락을 해보니, '그냥 끄고 잤다'라는 반응과 오후 5시가 되도록 상황을 인지하지 못했던 친구들로 나뉘었다. 한 친구는 내가 "오늘 진짜 전쟁 난 줄 알았다"라고 보내자 "오늘 많이 바빴구나"라고 답장이 와서 우리가 정말 일상생활에서 '전쟁'이라는 말을 휴전국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쉽사리 사용하고 있었음이 뼈저리게 느껴졌다. 


왜 이렇게 모두가 평화로운지. 마치 전쟁이 나서 피난 가는 상상까지 이어졌던 나의 감정은 너무나도 멀고 특수한 것처럼 느껴졌다. 오늘 아침 나는 나의 지루했던 일상이 다시는 이어지지 못할 줄 알았다. 그렇기에 너무나도 공포스러웠다. 그리고 그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 자신에 무력감을 느꼈다. 집에 돌아와서 재난 가방을 포함하여 재난 시 필요한 용품들을 찾아보고, 전쟁 및 재난 시 어떻게 그리고 어디로 대피해야 하는지에 관련하여 모든 것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전쟁을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고, 휴전국임을 망각하고 살아왔지만, 과연 오늘을 기점으로 내가 삶을 이전과 동일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과 깊이 내재하게 된 두려움이 나를 에워쌌다. 이제 나는 언제든지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갖고 살아가게 된 것이다. 일상이 언제든 끝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말이다. 


국가가 국민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에 대한 지침이나 교육이 부재한다면 국민은 너무나도 쉽게 무시무시한 상황 속에서 무기력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감각적으로 깨달았다. 무지로 인해 죽는 것이다. 너무 끔찍한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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